호국 영웅의 불편한 진실-故 심일소령 공적진위 확인-25

지난달

김명익(7연대 3중대장) 2

두 번째 증언은 1982년 7월 8일 김명익의 자택에서 실시되었다. 당시 증언내용은 다음과 같다. “(1대대의 최초배치?) 6월 25일 비가 왔다. 우리 대대는 예비대로서 07:00~08:00 사이에 164고지에 투입되었다. ※제3중대가 가장 먼저 투입되었다. 6•25전 내가 대대 S-3 있을 때 춘천지방 학생들을 동원하여 우두산 - 164고지 일대에는 예비진지가 구축되어 있었다. 이것이 큰 도움을 주었다. 대대에서 여우고개까지는 차량으로. 여기서는 도보배치 배치상황 :대대 관측소 : 164고지(CS8997), 제1중대 : 한계울(CS885995) - 샘두락(CS900897), 제2중대 : 한계울-164고지, 제3중대 : 샘두락-164고지 동편, 25일 11:00경부터 고탄리-□산리 일대에서 1개 대대 규모의 적이 분산 □□하여 접근해 왔다. 3중대 정면에 그들의 대부분이 달라 붙었으나 그들의 공격 발판은 90고지(CT908003)였으므로 아군이 지□ 유리했다. 적은 교전 초기에 □□ 당하며 조직적인 전□를 하지 못했다. 대대 81mm 박격포는 탄약의 재보급이 없어서 교전초기 몇분간 사격후 탄약이 떨어졌다. 이날 밤(25일) 대대장이 우리중대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 아마 방어배치를 변경할 계획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대대 관측소로 가는데 다시 철수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 중대 방어진지 앞에는 민가 두채가 있었는데 가보니까 벌써 적이 들어와 휴식하고 있었다. 즉시 소탕하여 7~8정의 장총을 노획했다. ※ 적 1개 분대 규모, 첫 성과. 그 때가 2400경이었고, 아군의 손실은 없었음. (파쇄공격?) 26일 아침 우리 중대 정면의 적을 □□했다. 그후 적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대대에서는 우리중대를 164고지 서편으로 재배치했다. 즉 1, 3중대를 인설에 2중대를 예비로 확보했다. 그리고 옥산포-춘천으로 공격하는 적 주공의 측방을 위협했다. 이날 1000~11:00경 현 방어진지 앞 도로를 LD로 하여 1,3중대가 옥산포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우리 중대가 좌일선 이었을 것이다. 한참 뛰다가 보니깐 논두렁에 자주포 승무원이 권총만 휴대하고 전투광경을 구경하고 있기에 7~8명을 사살하고 권총을 노획하였다. 옥산포 부근 나무 숲속에는 위장된 자주포 3대가 있었다. 나는 그 내부에 수류탄을 집어넣게 하였더니 안에 있는 포탄이 폭발하여 파괴되었다. 얼마 후 도로를 따라 자주포 5대가 접근했다. 그런데 그들은 자주포 앞에 나무 판대기 같은 것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우리는 신□초등학교 북쪽 개울둑에 산개하였다. (1,2중 모두가) 나는 2.36“ 3문을 초등학교 담벼락으로 추진하여 사격시켰더니 자주포의 위장물이 땅에 떨어지고, 그때부터 그들은 자주포를 사격했다. 이리하여 우리가 배치된 둑이 끊어지고(큰 구멍) 물이 우리가 배치된 곳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 보다 앞서 자주포 5대가 출현하기 직전에 19연대 2대대(우두산에 배치)가 마전리 쪽(2km 남쪽)에서 공격을 개시했으므로 까닥하다가는 아군끼리 교전할 위험이 있기에 나는 연락을 취하여 공격을 중단시키느라고 진땀을 뺐었다. 적의 자주포의 집중포격과 □□을 받아 견딜 수 없게 되어 18:00~19:00경에 원 진지로 철수했다. (대대장의 명령) (철수?) 방어진지에서 잠시 재편성을 한 다음 곧장 할미여울(C914976)을 경유 춘천 사범학교에서 재편성하고 여기서 숙영했다. 6.27일 새벽 우리 대대는 소양교 우측 봉의산 기슭과 소양강□ 그리고 153고지(CS909951)일대에 준비된 진지를 점령했다. 이 때 우리 중대는 우두산에서 하일마을로 통하는 나루(CS298962) ※내다리 여울을 제압하는 153고지 일대에 배치되었다.(우일선) 그리고 봉의산 우측에 후평리 일대에는 57mm 대전차포가 배치되어 있었다. 소양교 좌측은 19연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소양강□의 배치?) 27일 새벽 우리 대대는 소양교 우측 봉의산 기슭과 소양강□ 그리고 153고지(CS909951)일대에 준비된 진지를 점령했다. 이 때 우리 중대는 우두산에서 하일마을로 통하는 나루(CS298962) ※내다리 여울을 제압하는 153고지 일대에 배치되었다.(우일선) 그리고 봉의산 우측에 후평리 일대에는 57mm 대전차포가 배치되어 있었다. 소양교 좌측은 19연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적의 최후 공격?) (중략)”

김명익의 증언에 대해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에서는 활용하고 있지 않다. 다만 육군군사연구소는 6월 26일 재반격(파쇄공격)을 했고 전차에서 나와 쉬고 있던 전차병을 사살하였으며, 1대의 전차를 파괴했다는 증언은 이대용의 주장과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김명익의 증언은 26일 164고지에서 옥산포 방향으로 파쇄공격 간 적 자주포 승무원을 사살하고, 자주포 내부에 수류탄을 투척해 파괴했다는 내용으로 이대용의 증언과 유사하다. 그러나 다른 자료에는 이 증언을 뒷받침할 만한 내용이 현재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김명익의 두 차례에 걸친 증언에서 적 자주포를 파괴한 정황은 거의 유사하게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김명익의 증언은 완전한 증거자료로 채택하기보다는 간접적인 자료로 채택하되 이후 김명익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자료 발굴시 직접자료로 채택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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