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영웅의 불편한 진실-故 심일소령 공적진위 확인-42

22일 전

무르찐보고서

무르찐보고서는 1950년 6.25전쟁 당시 소련군이 한국군의 통신을 감청해서 작성한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는 아군의 작전상황과 관련된 내용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서 당시의 정황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보고서 내용 중 춘천전투와 관련된 내용에 대한 번역본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6월 25일 11시 수신: 총참모장 전투보고서 한 개 연대 규모의 적이 정원, 담산리, 천리, 창령 방향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2개 대대는 구와가리로 쇄도해 들어와서 현재는 목동 방향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제7연대는 수촌리와 월곡리를 공격하고 있는 적을 저지하고 있습니다. 제7연대는 2개 중대 병력으로 목동에서 가평에 이르는 길목의 진지들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목동에 도착한 제8연대를 이용하여 적의 침투병력을 포위 섬멸할 계획입니다. 제7연대의 2개 중대를 지원하기 위해 목동에 도착한 제8연대 제1대대장에게 마지막 한사람까지 이 지점을 지키고 적을 차단하고 섬멸하도록 명령했습니다.제8연대 제1대대장에게 목동의 2개 중대의 지휘를 맡으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1개의 기갑부대가 현재 춘천으로 향하고 있습니다.(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귀관은 작전부대장으로부터 명령을 받게 될 것이다. 부대에 도착하게 되면 지휘관을 만나 전투 상황을 보고하라. 사령부는 석사동에 위치할 것이다. 사단장 대령 김종(김종오)

"수신: ? 제1대대는 포위되었음으로 대대본부는 우두동으로 옮겼음. (7보병사단 2000부(정보부)) 발신: 제1대대장 수신: 제7연대장 (번역자 주: 1, 2번 항목은 없음) (3) 대전차포 1문이 파괴되었음. (4) 2개 중대 규모의 적 중대가 현재 아군 제1, 제2중대와 교전하고 있음. (5) 제7연대 제2대대 제7중대는 현재 내평을 공격하고 있음. 발신: 유 중위 6월 26일 08시 50분 수신: ? .....를 점령한 후 적은 춘천 방향으로 집결하고자 한다. 사단장님은 26일 10시에 춘천의 보조지휘소를 떠나기로 결심하셨다. 6월 26일 01시에 (적) 제2보병사단 제4보병연대는 천평동, 고섭동 방향으로 진출하고자 한다. 6월 25일 12시부터 6월 26일 03시까지 사단과의 통신이 끊겼다. 6월 26일 07시에 통신은 다시 소통 상태이다. 발신: ? 6월 26일 11시 수신: ? 춘천 선을 따라 병력 선이 형성되고 있고 명령 없이 퇴각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붙잡아 혹독하게 벌해야 한다. 발신: 작전참모"

"6월 26일 12시(춘천) 구체적으로 철수 지점을 결정해 달라. 현재 사단은 연대본부 지역에서 방어 위치에 있다. 19시 50분에 다시 보고할 것이다. 발신: “100” 6월 26일 수신: 부대장 보고합니다. 적 탱크가 쳐들어 왔습니다. 당 지점에서 사격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전투에 돌입했습니다. 사단은 철수 중에 있습니다. 우리 포병은 통신이 두절되어서 사격을 할 수 없습니다. 발신: 제19연대장 6월 26일 16시 15분 수신: 제19연대장 (1) 적 포병 대포의 위치와 수량을 보고하라. (2) 적 포병이 들어왔는가? 학교 주변지역에 돌파가 발생했는가? (3) 상황을 보고하라. 발신: 춘천에서 사단장"

"6월 26일 18시(1800) 수신: 제6보병사단 정보참모부 (1) 사단 지휘소를 20시 35분부로 석사리로부터 협곡으로 이동한다. (2) 적은 춘천에 중포격을 가하고 있다. 일부 시가지가 파괴되었다. 장병들의 사기는 높다. 6월 26일 21시 수신: 제6보병사단 인사참모 (1) 인사참모 김 소령은 의무대장, 작전장교, 경찰서장, 공병, 전투공병 2개 소대를 공병장비와 함께 사령부로 즉시 오라. (2) 사령부의 현재 위치는 석사리 전방 2㎞ 지점이다. 발신: 부대장 6월 26일 21시 수신: 정보국장 (1) 금일 22시에 춘천 전방의 적은 춘천을 점령할 준비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단은 이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2) 현리의 제2연대 제3대대는 적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적에게 심각한 손실을 안겨주며 철수하고 있습니다. (3) 금일 전투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용동으로 들어온 적 전차 한 대가 파괴되었습니다.(제7연대 제1대대 병력에 의해) 약 80명의 적병들이 주산의 19보병연대 전면에서 살상 당했습니다. 발신: 제6보병사단 정보참모"

"6월 27일 22시 30분 수신: 육군본부 통신학교장 교육을 위해 당신의 학교로 보낸 통신요원을 즉시 돌려보내라. 발신: 제6보병사단장 6월 27일 24시 수신: ? (적) 제17연대의 2개 대대와 15대의 적 전차가 춘천 북동의 송리 마을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약 1개 대대의 (적)경비대대가 야변에서부터 소양강을 따라 춘천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제4보병연대와 제2포병대, 3대의 탱크와 200명의 빨치산은 청면에서부터 자일리에 있는 우리 제2보병연대 방향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무르찐보고서를 해석하는 양기관의 의견은 달랐다.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는 국군 7연대는 1950년 6월 26일 소양강교를 중심으로 한 소양강변 일대에서 자주포와 각종 포를 앞세운 북한군 제2사단의 공격을 받고 치열한 교전을 전개한 증거로 활용했다.「무르찐보고서」에 나오는 내용 중 6월 26일 상황을 “북한군의 공격을 받은 국군 제7연대의 급박한 전황이 생생하게 기록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육군군사연구소는 특별히 「무르찐보고서」를 활용하고 있지 않다.

「무르찐보고서」에 나오는 내용 중 6월 26일 상황을 “북한군의 공격을 받은 국군 제7연대의 급박한 전황이 생생하게 기록된”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으로 보인다. 날짜와 시간, 부대가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대전차포 1문 파괴는 25일 옥산포 지역에서 발생한 아군 대전차포 망실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내용은 채택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6월 26일 전투결과는 용동지역에서 적 전차(자주포) 1대를 파괴했고, 주산지역의 19연대 전방에서 7연대 1대대 병력에 의해 적병 약 80명이 사살되었다.”는 내용은 7연대 1대대의 26일 파쇄공격의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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