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영웅의 불편한 진실-故 심일소령 공적진위 확인-38

27일 전

이우상(제7연대 3중대 3소대장) 3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에서는 이우상의 증언을 심일이 옥산포에서 적 자주포를 파괴한 근거자료로 인용했다. 그러나 육군군사연구소에서는 전차가 불이 붙어 새카맣게 탔다는 내용에 주목하며 그의 증언은 ‘적 승무원이 자주포에 불을 질렀다’는 이대용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주장하며, 그의 증언은 심일이 옥산포에서 적 자주포를 파괴한 증거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우상의 증언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심일이 25일 15시경 적 전차(자주포)를 단신으로 파괴했다는 것이다. 15시경에 1대대는 164고지 일대에서 방어를 하고 있었으며 1중대는 한계울-샘두락, 3중대는 샘두락-164고지 동편, 2중대는 한계울-164고지일대에 배치되었다(김명익 증언). 최초 164고지를 점령할 때 1중대는 164고지 좌측방 한계울 일대를 점령했다. 그렇다면 164고지 우측방일대의 3중대 3소대장이 그 시각에 심일이 단신으로 적 자주포를 파괴했고 부딪쳤다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은 당시 상황과 맞지 않는다. 또한 증언 말미에 “심일이 적 전차 2대를 육탄으로 파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라고 하자 “그때 눈으로 못 보았으니까 모르지요.” 라고 하여 앞의 증언을 부인했다. 이는 증언 자체의 모순을 보여 주고 있으며 보지도 않은 사건을 마치 본 것처럼 속이고 있다. 게다가 “심일이 대전차포를 가지고 탱크하고 부딪치고 그 후에 전사를 했다.” 하는 증언에서 ‘그 후’라는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만약 옥산포에서 적 전차와 교전 후 전사했다는 의미라면 증언 자체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공식적인 기록은 1951년 1월 21일 영월에서 ‘실종중 전사’로 처리되었으며, 안태석의 증언은 1950년 10월 중공군 공세시 철수 중 묘향산에서 중공군에게 죽은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우상 위치는 164고지 우측방으로 옥산포의 심일을 볼 수 없었으며, 심일이 자주포 파괴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다음은 적 자주포 한 대가 불에 탔다는 것이다. 이우상 증언에서 “한 대를 파괴한 것을 보았고 불이 붙어가지고 새까맣게 탔어요.” 했는데, 이는 이대용이 26일 오전 제7연대 1대대가 옥산포 일대로 파쇄공격시 당황한 북괴군이 자주포 스스로 불을 질렀다는 것과 유사하다. 이우상이 증언한 상황이 25일임을 고려할 때 25일, 26일 상황이 혼재되어 있으며, 결국 본인이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않는 일을 말하게 됨으로써 생기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우상이 “적 자주포 한 대가 불에 탔다.”는 것을 보았다고 한 것은 이대용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이우상의 증언을 다른 사람들의 증언이나 타 기록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6사단 전투상보 작전교육처본과 전사부본에는 심일이 적 전차(자주포)를 파괴했다는 기록이 없다. 다만, 전사부본에 25일 14시 대전차포중대장이 포격으로 적 전차 2대를 격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단신으로 공격했다는 내용은 없다. 심일의 공적은 1968년 이전까지 발간된 공식기록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1968년 발간된 공간사부터 심일의 공적을 기록하고 있으나 파괴주체, 파괴방법의 내용이 조금씩 상이하다. 춘천전투의 생존자들은 모두 심일이 자주포를 파괴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김운한(제16포병대대 군수장교)은 심일이 탱크와 부딪친 사람이라고 표현했지만 전차를 파괴했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포병사격에 의해 자주포 가 파괴되었다고 주장했다. 신영진(7연대 3중대 기관총분대장)은 당시 전투현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일의 자주포 파괴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심일과 동향인 심호은(제16포병대대 지휘소대장)은 심일이 대전차포로 사격했으나 적 자주포를 파괴하지 못했고 사격 후 도망갔다고 증언했다. 오봉환(7연대 대전차포중대 사수)은 대전차포 포격으로 파괴했거나 수류탄과 화염병을 사용한 육탄 공격이 아니라 본인과 분대장이 포격으로 적 조종수가 사망하여 아군 대전차포와 충돌했고 2대가 정지했다고 증언했다. 이는 심일이 적 전차(자주포)를 파괴했다는 것과 거리가 멀다. 심일이 적 자주포 파괴 공적을 증언한 과거 증언자들의 대부분은 당시 옥산포 부근에 위치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증언의 신뢰성이 떨어지며, 파괴 장소 및 방법, 대수 등의 증언이 상이하다. 1차 사료, 1968년 이전 공식기록, 생존자 증언 등이 심일이 적 자주포를 파괴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볼 때, “심일이 25일 15시경 적 전차(자주포)를 단신으로 파괴했다.”는 이우상의 증언내용은 증언 자체의 모순, 사료, 공식기록, 생존자 증언 등을 종합할 때 신뢰성이 떨어지므로 채택할 수 없다. 오히려 25일 “적 자주포 한 대가 불에 탔다.”는 증언은 26일 적이 스스로 자주포에 불을 질렀다는 이대용 증언을 방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한 접근과 채택여부가 숙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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