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영웅의 불편한 진실-故 심일소령 공적진위 확인-40

지난달

김운한(6사단 16포병대대 군수장교)

김운한은 1950년 6월 25일 당시 사단 포병대대인 16포병대대에서 군수장교로 보직되어 있었다. 그는 과거 한 차례의 증언을 했는데, 1966년 5월 20일이었다.

증언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장님께서 6.25 당시에 어디에 계셨습니까?) 춘천 제6사단 포병대대에 있었습니다. (대대? 그렇다면 중대장을 하셨습니까?) 대대 후방 지원을 했습니다. (6월 25일 당시의 참상을 말씀해 주십시오.) 휴일날이지요. 그 날 춘천에 비가 왔을 것입니다. 그때 춘천에 제7연대가 있었어요. (지금은 무엇이 있지요?)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제사 공장이 있지요. 그곳에 포병 16대대가 있었어요. 16대대에서 군수주임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시간은 기억이 안 나는데 하여튼 새벽이었어요. 25일 새벽인데 소양강에, 그때 가족은 없고 집에 있었는데 아침에 당시에는 자동차로 가고 소집하지 않아요. 그런데 보슬비가 내리는 새벽인데 비상이 났다는 것이에요. 집에서 연락이 왔더군요. 자동차가 왔어요. 그래서 쓰리코타가 하나 나왔는데 춘천 그쪽에서는 38선에서 가끔 전투가 벌어졌어요. 38선을 돌파해서 인민군이 내려온다고 해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일시적인 그 전 전투같이 그런 침투인 줄 알았어요. 이제 그것이 재미나는 것이 쭉 한 바퀴 돈 것 아니에요. 자동차 한 대 가지고 다니는데 내가 믿어지지 않는 것이 있어요. 전사에는 그것을 태워서 들어가니까 우리가 출동할 때 그때가 38선에서 4㎞쯤 나왔을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만들어 놓은 진지, 방어진지에는 우리 포가 진출도 못했습니다. (그냥 밀리는 바람에?) 네 그것이 그때 양상 그대로입니다. (그것을 자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때 양상이 보급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에게 들어서 알겠지만 그때 포병이 두들겨 맞게 생겼는데 그것보다도 나는 제일 흐뭇하게 느꼈던 것이 전선 가까이 있는 탄약 1기수 약 5,000발을 하여튼 나와 두 사람이 무조건 자동차를 불러서 실어낸 일이 있어요. 그것이 우리가 낙동강전선에 나올 때까지 포탄을 사용했다는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때 포탄 재고가 없었습니다. M3포가 멀리 가지도 않고 춘천으로 후퇴하라고 할 때에는, 그때 당시의 그 운전수들이 다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징병된 운전수들이 자동차를 탄약고 속에 들어가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포탄을 가지고 왜 그것을 끄집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인원이 5명, 춘천 사범학생까지도 그때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하여튼 적이 거기 500마일 가까이에 왔는데도 포탄을 집어 날랐으니까요. 그것을 한 사람이 심일 중위입니다. 그 사람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탱크와 부딪친 사람일 것입니다. 아마 하루 종일 아침 8시부터 저녁때까지 그곳에서 견지했을 것입니다. 그때 보병이라는 것은 없고 옥산포에서 대전차포대대에 있는 심일 중위가 있는데 그 사람이 나하고 동기생이고, 나와 같이 했습니다. 그 사람이 대전차포로 사격을 해도 탱크가 부서지지 않으니까 탱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이야다리’한 사람입니다. 나는 춘천에 있는데 우리가 포병 12명을 시켜서 두 번째 포탄을 실어내려고 돌아와서 포병대대 앞에 약 1,500 내지 2,000에서 심일이 대전차포 둘을 가지고 탱크와 대항했다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부대가 어떻게 배치되었다 그런 것은 모르지만 만일 그 때 포탄을 빼앗겼다면 춘천에서 포 한 발도 못 쐈을 것입니다.”

김운한의 과거 증언에 대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심일의 자주포 파괴 증거로 활용했으며, 심일이 포탄운반이 가능할 수 있도록 막아준 것으로 평가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육군군사연구소는 심일의 대전차포 소대는 1,500 이상의 거리에서 적 자주포와 대치하고 있었으며, 김운한의 증언은 심일의 육탄공격에 의한 자주포 파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해석했다.

김운한의 증언 중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김운한 증언에서 심일의 자주포 파괴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김운한의 증언에서는 심일 중위의 대전차포 소대가 처음으로 적 전차(자주포)와 마주쳤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다른 보병부대와 적 탱크가 맞닥뜨리지 않았고, 자신이 소속된 16포병대대의 포병과 연대 대전차포가 적 자주포를 공격했다는 의미로 보인다. 또한 심일 중위는 적 자주포가 대전차포 공격에도 전진을 계속하자 지근거리에 올 때까지 진지에 남아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심일 중위가 적 전차(자주포)를 파괴했다는 내용은 없다. 1966년 김운한 증언의 핵심은 포병대대 군수장교로서 포병탄약 5,000여발을 소양강 후방으로 운반해서 포병 전투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충분한 포병지원을 받으면서 보병이 춘천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는 1966년 김운한의 증언은 심일 중위의 대전차포 소대 전투행위를 직접 목격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운한은 심일 중위의 대전차포 소대 전투행위를 직접 목격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려우며, 그의 증언에서 심일 중위가 적 자주포를 파괴했다는 내용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증언 핵심은 자신들이 포병탄약을 안전하게 후방으로 운반해 춘천전투 승리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셋째는 심일 중위의 대전차포 소대가 1,500이상 거리에서 적 자주포와 대치했다는 내용은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는 점이다. 김운한의 증언은 포병대대 앞에 약 1,500 내지 2,000으로 언급하고 있어 포병대대로부터 1,500 내지 2,000 거리에서 심일 중위의 대전차포 소대가 적 자주포와 대치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당시 포병대대의 위치가 제사공장 인근이었기 때문에 이곳으로부터 1,500 내지 2,000 정도면 옥산포 부근으로 볼 수 있다.

넷째는 심일의 대전차포 소대가 포병탄약을 후방으로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도록 적의 전진을 저지했다는 평가에 대한 분석이다. 1966년 김운한의 증언에는 위와 같은 평가를 유추할 만한 언급이 일부 있다. 김운한의 증언 태도(이야기 전개가 다소 비논리적이고 앞뒤가 오락가락 하는 경향이 다소 있다. 이렇게 볼 때, 직접적인 증거자료로 활용하기는 곤란해 보인다. 다만 일부내용은 심일의 대전차포 소대가 적의 전진을 저지해 포탄 운반이 가능했다고 판단할 수 있어 보인다. 1980년 오봉환의 증언에도 “나와 분대장은 포1문이 파괴되어 처벌대상이 된다고 걱정했는데 이번 성과로 적이 지연(진격)되었다는 바람에 처벌받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나와 있다. 위 내용을 분석해 보면 적의 전진이 지연된 것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동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6월 25일 옥산포에서의 전투상황이 사실이라면, 심일의 대전차포 소대는 적의 자주포가 전진하는 것을 저지시킨 공적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그러나 포병이 탄약을 안전하게 후방으로 반출할 수 있었던 것은 16포병대대의 선전, 춘천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원, 7연대의 성공적인 방어(심일소대의 전투 포함)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김운한의 증언은 다른 기록이나 증언으로 보완 증명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증언을 심일 중위의 자주포 파괴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며, 심일 중위가 적 자주포로부터 1,500 내지 2,000 거리에 위치했다는 해석 또한 포병대대로부터 거리로 볼 수 있어 이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해 보인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김운한의 증언은 16포병대대 탄약운반과 관련된 증언으로 25일과 26일 소양교 부근에서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간접적인 자료로 활용가능하다. 김운한의 증언을 심일이 자주포를 파괴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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