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영웅의 불편한 진실-故 심일소령 공적진위 확인-35

지난달

송인규(제7연대 3대대 인사장교) 3

송인규의 증언에 대해 국방부와 육군의 의견은 달랐다.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는 심일이 옥산포에서 적 자주포를 파괴한 근거자료로 송인규 증언을 인용했다. 하지만 육군군사연구소는 심일이 적 자주포 7대를 파괴했다는 내용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25일 14시경 자주포를 파괴했다는 기록에 비추어 17시 파괴는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그의 증언을 채택하는 것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송인규의 증언내용 중 “6월 25일 17시경 ‘해치’를 연 전차에 수류탄을 던져 7대를 파괴했다”는 증언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심일이 적 전차를 파괴한 17시경은 기록에 있는 14시에 2대라는 것과 상이하다. 당시 북괴는 SU-76M형 자주포를 투입했고 ‘해치’가 없는 개방형이다. 다만, 장비관리 또는 기타 필요시에 사용하기 위해 방수포와 같은 덮개가 있었다. 과거 증언 및 기록상에 해치나 뚜껑을 열고 육탄공격했다는 표현이 상이하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사(1968)에는 ‘포탑의 뚜껑을 열다’, 제6사단 초산전사(1987)는 ‘해치’ 속으로, 임부택은 ‘포탑 해치가 열리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육탄공격의 묘사가 상이한 것은 실제 일어나지 않는 일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말하다 보니 발생하는 것이며, 이는 목격하지 않았거나 전해 들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또한 옥산포가 개활지라는 것을 고려시 적 자주포 7대를 육탄으로 파괴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증언 시점이 1980년이어서 심일 신화가 널리진 시기이므로 심일이 육탄 5용사와 함께 적 전차를 파괴했다고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나, 전차에 뛰어 올라 수류탄을 던져 파괴했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어설프게 느껴진다. 위의 내용을 고려하여 판단할 때 25일 17시경 적 전차 7대를 파괴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심일의 육탄공격으로 적 전차를 파괴하여 북괴의 25일 당일 춘천 점령이 실패했고 26일, 27일까지 지연됐다.”는 주장에 대해 살펴본다. 전투 실상을 고려할 때, 북괴군은 6연대, 포병, 공병 등의 병력과 장비를 집중하여 5번 도로로 주타격을 지향하였다. 당시 제6사단은 제16포병대대와 제7연대 1, 3대대, 제19연대 2대대 등 다수의 병력이 5번 도로 축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심일 대전차포소대의 전투는 많은 교전 중의 하나이며 적 자주포를 몇 대를 파괴하여 북괴군의 진출을 저지했다는 것은 북괴군의 작전기도, 전투의지와 역량을 과소평가한 것이라 사료된다. 오히려, 라주바예프 6·25전쟁보고서(1권)에서는 국군 포병에 의해 북괴군이 심대한 타격을 받아 6월 25일 지내리-발산리를 연하는 선에 진출이 멈추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2005년 공간사와 이대용장군의 기록에 6월 26일 오전에 포병과 협동으로 제7연대 1대대가 옥산포 방향으로 파쇄공격을 하여 북괴군이 심대한 타격을 받고 북쪽으로 도주했다고 했다. 당시 전투실상, 우리자료와 적군자료를 토대로 판단하며 심일의 활약으로 춘천 점령이 2일간 지연됐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송인규의 증언을 다른 기록과 타 증언들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전투상보(작전교육처본, 전사부본), 심일이 적 전차(자주포)를 파괴했다는 기록이 없다. 전사부본에는 25일 14시 대전차포중대장이 적 전차에 근박하여 포격을 강행하여 적 전차 2대를 격파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수류탄으로 육박공격 했다는 내용은 없다. 25일 옥산포에서 심일의 공적은 1968년까지 육군전사(1953), 청성약사(1955) 등에 전혀 언급이 없다가 1968년 발간된 한국전쟁사에 출처도 없이 처음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춘천전투에 참가한 생존자들이 심일이 자주포를 파괴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김운한(제16포병대대 군수장교)은 포병사격에 의해 자주포가 파괴되었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자주포가 포병사격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북한자료 및 미 포로심문조서 내용과도 일치한다. 신영진(7연대 3중대 기관총분대장)은 당시 전투현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일의 자주포 파괴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하였다. 심일과 동향인 심호은(제16포병대대 지휘소대장)은 심일이 대전차포로 사격했으나 적 자주포를 파괴하지 못했고 사격 후 도망갔다고 증언했다. 오봉환(7연대 대전차포중대 사수)은 대전차포 포격으로 파괴했거나 수류탄과 화염병을 사용한 육탄 공격이 아니라 본인과 분대장이 포격으로 적 조종수가 사망하여 아군 대전차포와 충돌했고 2대가 정지했다고 증언했다. 주락한(7연대 대전차포중대 사수)은 심일의 소대원이었으나 자주포 파괴를 모른다고 했다. 또한 임부택과 『초산전사』에서 심일의 특공조로 지목됐던 주락한은 정작 본인은 특공조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전투상보(2종), 1968년 이전 공식기록, 참전자 증언은 송인규의 증언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심일이 적 전차(자주포)를 파괴했다는 증언은 ’해치‘가 없는 SU-76M에 수류 탄을 들고 뛰어 올라 던져 파괴했다는 증언 내용의 모순과 육탄으로 7대 파괴의 비현실성을 고려하고, 6사단 전투상보(2종), 1968년 이전의 공식기록, 참전자들의 증언이 심일의 공적이 없다고 입증하고 있으므로 “25일 17시경 해치를 연 전차에 수류탄을 던져 7대를 파괴했고, 이 결과로 2일 춘천 점령을 지연시켰다.” 는 송인규 증언은 심일 공적의 근거로 채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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