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영웅의 불편한 진실-故 심일소령 공적진위 확인-23

2개월 전

임부택(7연대장) 2

임부택의 증언을 둘러싸고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와 육군군사연구소의 해석은 달랐다. 우선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는 심일의 자주포 파괴 증거로 임부택의 증언을 채택(1, 4차 증언)했으며, 특히 그의 회고록은 사실관계를 뒷받침하는 자료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육군군사연구소는 임부택의 과거 4차례의 증언 중 두 차례(1977, 1982)의 증언에서 심일의 자주포 파괴 증언은 나오지 않는다는 입장이다.(1, 4차 증언에서만 언급되어 있음) 특히 두 번째 증언에서 김명익(3중대장)이 자주포는 심일이 아니라 본인이 파괴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자리에서 임부택은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음에 주목했다. 그 밖에도 회고록에는 육탄 5용사 등 사실관계가 검증되지 않은 내용들이 포함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추가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임부택의 증언을 평가해 보면 1차 증언(1964년)은 질문자가 심일 공적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확인 답변을 얻는 형식의 증언청취였다. 예를 들면 “심일 소위가 전차를 두 대 파괴했다는데 어느 곳입니까, 심소위가 휘발유병과 수류탄을 가지고 했다는데요 등”의 식이었다. 이렇게 볼 때 1차 증언은 시기적으로 근접하지만, 내용은 결정된 사실에 대한 확인으로 그 신빙성은 다소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2차 증언(1977년)은 춘천지구전투 참가자 종합면담이었다. 임부택의 2차 증언에는 심일의 자주포 파괴와 관련된 언급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으며 오히려 김명익이 본인이 자주포를 파괴했다는 주장에 임부택은 그 자리에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이를 반대하지 않았다. 그가 왜 김명익의 주장에 대해 침묵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생전에 이대용은 김명익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며, 그의 잘못된 공적 부풀리기 행위에 대해 불편한 입장을 드러낸 적이 있다.

3차 증언(1982년)은 임부택 단독증언이다. 임부택의 3차 증언에도 심일의 자주포 파괴와 관련된 언급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는다. 4차 증언에서는 심일의 자주포 파괴행위를 6월 26일로 언급해서 기존 전사기록이나 증언과 배치되는 증언을 했다.

한편, 1964년, 1977년 증언과 1982년 증언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1964년 증언(1차)은 새로운 내용을 얻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 이미 결정된 내용을 설명하고 답변하는 형식을 취해 그 신뢰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1977년 증언과 1982년 증언은 채록 중점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차 증언은 부대배치, 전투준비 등과 관련된 내용이며, 3차 증언은 19연대 배속문제, 춘천방어 성공요소 등(장교들의 보수교육을 통한 작전지휘 능력 향상이 춘천전투의 성공요소였다는 점은 두 증언에서 모두 언급되고 있는 등 증언의 일관성 있음)에 관련되어 있었다. 두 증언(2,3차) 모두 심일의 자주포 파괴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없다. 다만, 김명익이 자주포를 자신이 파괴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임부택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4차 증언에서 심일의 자주포 파괴일자를 6.26일로 언급해 다른 증언과 달랐다.

이렇게 볼 때 임부택의 증언은 1차 증언(1964년)은 증언청취 방식에 문제가 있어 보여 그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4차 증언(1985년)은 기존 자료와 자주포 파괴일자가 상이하고, 임부택의 증언(2,3차)은 춘천전투와 관련된 중요한 자료로 병력배치, 전투준비, 철수문제, 등을 중심으로 채택하고, 심일 중위 자주포 파괴와는 관계가 없는 증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회고록에 나오는 내용은 추가 검증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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