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의 한계

작년

한국 정치에 대해 토론을 하면 항상 느끼는것이지만 본인의 생각과 가치관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정당의 선택에 따라 모든것이 바뀐다. 참으로 불쌍하다.

내가 배운 바로는 좌파는 전체를 강조하며 혁신을 주도한다. 우파는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며 가치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것이 제퍼슨과 해밀턴의 차이다.
내가 말하는 좌파와 우파는 자유민주주의 안에서의 좌우고 중국같은 사회주의는 나에겐 급진세력 radical이다.

경제 정책을 봐도 케인즈(좌파)는 국가의 강력한 정책 (큰정부)을 중요하시는 반면 프리드먼(우파)는 간접적인 통화정책(작은정부)을 중요시한다.

1930년 민주당의 상징 루즈벨트는 강력한 정부의 정책 "뉴딜"로 1930년 대공황을 극복하였고 ( 세계대전이란 변수도 존재했기에 오로지 뉴딜로써의 극복이 아닐 수도 있다) 1970년 오일쇼크는 레이건의 "정부는 시장에 참여하지 않겠다" 라는 작은 정부 정책으로 극복하였다.

좌파정부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없애고 정부가 더 강력한 힘을 가지는 정부고 우파정부는 개인에게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주고 정부의 힘을 약하게 유지하는 정부이다.

여기서 정치로 넘어가면 자유와 책임의 관계이다. 페이스북에서 글을 쓰는것 그리고 그 책임은 모두 페이스북 유저에게 존재한다. 하지만 만약 미정부가 페이스북에 개인이 올린 글의 책임을 페이스북이 지도록 한다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바로 검열이다. 개인의 자유는 페이스북의 검열로 인해 침해당할것이다.

켈리포니아의 AB5 법안이 있다. 우버 운전자들을 프리랜서로 볼껀지 아니면 우버의 직원으로 볼건지를 정의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은 우버의 운전자들을 우버의 직원으로 본다고 적혀있고 그로인해 우버는 더 큰 책임을 가지게되 우버 운전자의 자유를 억압한다, 즉 우버 운전자는 본인이 희망하는 시간에 퇴근 혹은 출근을 할 수 없을 뿐더러 많은 우버 운전자들이 해고를 당하였다.

내가 보는 정치는 바로 자유와 책임의 관계에서 비릇된다.

본인이 자유를 더 가지고 싶으면 책임도 져야한다.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정치판은 참 이상하다. 우파정권일때 큰정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좌파정당이 지금에서는 큰정부의 자유만 누리고 책임은 신천지에게 넘겨버리고 있으며, 자유를 중시해야하는 우파정당은 국정교과서를 지필해서 사상을 강요하질 않나 그 우파정당을 비난하던 좌파정당은 어떤 사람의 회고록을 검열하고 5-18에서 대해서 입도 뻥끗 하지 못하게한다.

내 시선은 항상 일관되어있다. 가짜뉴스든 진짜 뉴스든 그것을 판단하는것은 나고 뉴스를 보고 걸러들어야 하는 사람도 나다, 즉 책임도 나에게 있다. 정부가 이것에 대해서 검열을 하면 안된다는 주의다. 하지만 정작 현시점 나와 국정교과서를 욕하던 사람은 이러한 가짜뉴스의 검열을 찬성하고 있다.

반대로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고 책임을 개인이 지는것에 대하여 찬성하던 사람은 지금 신천지를 욕하는것이 아닌 정부를 욕하고 있다. 왜 그당시에는 그러면 박근혜를 욕하지 않고 세월호 선장을 욕했던 것일까? 그 당시에 정부를 욕했던 사람들은 지금은 정부가 아닌 신천지를 욕하고 있는것일까?

도대체 상황은 전혀 바뀐게 없고 대통령만 바뀌었는데 왜 본인의 가치관 자체가 바뀌는걸까?

정답은 하나다: 정당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본인의 사고의 틀에서 절대 나올 수 없다.

누가 대통령에 되는지에 따라 좌파는 우파가되고 우파는 좌파가 된다. 이런 사람들이 정치를 논하고 있으니 소크라테스가 웃을일이다.

밀은 말했다.

  1. 틀렸다거나 해롭다는 이유로 의견의 표명을 가로막으면 안 된다,
  2. 표현의 자유를 일부만 제한하게 되면 곧 모든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만다,
  3. 표현의 자유가 무제한 허용되어야 사회는 진보할 수 있다,
  4. 표현하는 내용에는 제한이 없어야 하지만, 표현하는 방식에는 제한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의 판단기준을 어따두고 정당만 쫒아서 본인의 정치적 선택을 잃어버렸는지 참 안타깝다. 박정희같은 전형적인 좌파성향의 대통령을 보고 우파라고 생각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과 토론할 수 없다. 도대체 어디를 봐서 중국처럼 전체주의적이고 자유를 억압하고 정부주도 발전을 행하던 사람보고 우파라고 할 수 있는지 내 논리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민주주의란 자유를 뜻하는게 아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이루기위해 우리는 다수결의 원칙인 투표를 행한다. 서로 다른 의견의 대립이 있을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프로세스다. 민주주의 안에서 투표는 남의 의견을 듣고 굴복시키는게 아니라 서로의 강한 철학이 부딪혔을때 평화롭게 사회의 결정을 하는 민주적 절차이다. 즉, 이미 투표를 한다는것은 서로의 철학과 신념이 강하게 부딪힌다는 뜻이고 여기서의 옳고 그름은 존재 할 수 없다. 그저 선택만 있을 뿐이다.

문재인이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막지 않는것에 대한 비판도 많다. 하지만 나라도 그런 선택을 했을것이다. 우리는 경제와 안전중에 무언가를 선택해야하는 상황이 였고 그 누구도 미래와 결과를 알지 못한다. 고로 나는 욕하지 않는다. 나도 경제를 먼저 선택하는게 맞다고 여겨졌으니까

하지만 정말 무서운점은 나와 항상 의견을 대립하고 경제 보단 안전을 먼저 중요시하던 친구,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도 명예와 안위를 위해 경제를 포기해야한다고 한 친구가, 문재인이 경제를 선택했다는거에 본인의 선택이 바뀌어서 경제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헛소리를 들으면 참 안타깝고 불쌍하다. 본인이 여지껏 주장해오던 가치는 문재인의 한마디로 이미 싹 바뀌어버렸다. 그 친구에 대한 내 존중도 싹 사라졌다.

경제라는 학문을 배울때 가장 먼저 배우는것은 희소성이다 즉, 모든것을 선택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무언가를 선택하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한다.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우리는 기회 비용을 따져야하는 것이다. 어떠한 정부가 오든 어떠한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가 되든 나의 가치관인 "경제 발전 진보"의 사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을 위해 나는 다른 가치관들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다. 절대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정책도 없고 모든 산업의 요구를 다 들어줄수는 없다. 그것이 희소성의 사회이다. 나는 나의 잣대로 나의 철학으로 정부와 대통령을 판단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모든 사람의 정치적 선택이다. 하지만 요즘 그러한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는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본인이 가중치를 둔 가치에 따른 선택이 아닌 정당에 따른 선택이 대부분이다.

미국에서 이번에 2천조원 재정정책의 방향을 두고 토론하는것을 보면 저것이 정치라는것을 다시 한번 느꼇다.

공화당은 "경제는 자전거와 같아서 멈추면 안된다. 희생이 생기더라도 우리는 자전거를 굴려서 앞으로 나가야한다고 주장했다." 4월 12일 부활절 이후에 모든 사람이 다시 일하러 나가 경제를 굴려야한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민주당은 "경제보다는 우리의 안전이 우선이다. 다우지수도 미국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경제보다 사람을 우선시해야한다"

둘다 맞는 말이다. 그저 미국을 사랑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도 관점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이 바뀌는 경우도 많지만 한국처럼 매번 바뀌지 않고 그 흐름을 유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들이 나와 다른 어떠한 결정을 한다고해도 존중하고 이해한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을 보라... 참담하다

민식이법은 두개의 가치관이 부딪혀서 생긴 법이다
" 아이의 잘못은 어른의 잘못이고 아이가 100%잘못해도 어른의 잘못이다 vs 아이또한 본인의 잘못이 있고 그것을 어른이 대신 책임질 필요는 없다" 의 가치관 싸움이다.

두 견해를 나는 모두 공감하고 정답이 없다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투표를 하고 우리만의 정답을 만들 뿐이다. 하지만 지금 민식이법을 폐지해야한다는 의견이 또 나오고있다.

자신에게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책임 또한 주어진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자유에 대한 선택을 고려하고 생각하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그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 민식이 법을 legislate 할때 결과를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은 민식이 법을 폐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요즘은 뼈저리게 느낀다. 이렇게 생각을 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으며 본인의 생각이 아닌 그저 정당에 따라 투표를 하는 사람들에 자유를 우리가 존중해줘야하는 이유가 있을까?

예전에는 자유를 가지니까 책임을 져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행동했으면 요즘은 책임을 지지 않을거면 자유를 주지 말아야했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사토시를 만나 무정부적이고 극우파적인 자유에 집착하던 생각이 점점 자유를 억압해야하는 이유를 보게되고 자유만 가지고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 구성원들을 볼때마다 점점 좌파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사람은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해 모두에게 자유를 줘야한다던 내 생각이 점점 사람은 우둔한 동물로 변해감에 따라 자유를 주지 말고 강력한 정부가 통치해야한다로 변해가고 있다.

요즘은 딜레마다

미국의 산업을 발달시키고 현대 미국 금융의 아버지인 해밀턴을 보고 강력한 중앙정부 ,연방제, 의 위대함을 어렸을때 느꼇지만 지금은 중앙은행의 횡포에 모두가 죽어가는 이 상황을 예견한 제퍼슨이 대단해보인다.

해밀턴이 옳은지 제퍼슨이 옳은지 정답은없다. 그저 본인의 선택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이 선택의 결과를 끝없이 고민해야한다. 팀 프로젝트를 해도 선택에 대해 고민하지 않던 사람이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경우를 본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오랜만에 들어와서 정말 이상한 정치글들을 많이본다. 그들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이 본인의 철학과 신념에서 나오지 않았다고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상황마다 선택이 바뀐다는것 자체가 이미 본인들의 생각이 없음을 증명하고 있으니까. 그러한 본인의 철학과 신념이 없으면 내가 그 사람들을 존중해줘야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만약 그 사람들이 철학과 신념이 있다면 그 생각이 인류애에 반대되는 철학이여도 나는 존중해줄거다 "타노스 처럼"

나는 해겔에 변증법을 참 좋아한다. 내가 믿는 A 가 영원 불변할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내 A를 격파 할 수 있는 B를 찾아 새로운 철학인 C를 만들어내고 C가 곧 A가 된다. 그리고 또 내 생각을 격파 할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을 내 스스로 생각한다. 이것을 통해 내 자신을 알고 내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은 사람들은 그러지 않은것 같다.

/// 이런 힘든시기에 스팀잇에 남아 스팀잇의 발전에 이바지하시는 분들에게 높은 존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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