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이지 라이더(1969)

지난달
20세기 소년에서 '20세기의 가을'을 장식할 '20세기 영화제'가 10월부터 열린다. 앞의 문장에서 20이라는 숫자가 세 번이나 반복됐다시피 20세기 소년에게 '20'은 의미 있는 숫자다. 그래서 이번 영화제를 위해 모두 20편의 영화를 선정했다. 모두 영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 작품들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선정 기준은 전적으로 20세기 소년의 기억과 관련이 있다. 어디 영화사 책에서 뽑혀져 나온 리스트가 아니라는 얘기다. 20세기에 생물학적, 사회학적, 인류학적 성장을 거쳐온 '나, 최광희'라는 인물의 개인사적 목록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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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은 20세기의 기념비적인 해다.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 에드윈 올드린 주니어가 탄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1969년 8월 15일부터 사흘간 미국 뉴욕주의 베델 평원에서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열렸다. 그해 데니스 호퍼가 연출한 미국영화 ‘이지 라이더’가 개봉했다. 무엇보다 1969년이 기념비적인 이유는 서울 강북구 삼양동의 한 허름한 집에서 나, 20세기 소년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앞선 문단의 마지막 문장은 농담이자 진담이다. 개인사에 있어서 스스로의 탄생만큼 놀라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그해 수억분의 1의 확률로 이 광대한 우주의 지능을 갖춘 생명체로 태어나는 기적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아무튼 이 영화 ‘이지 라이더’는 내가 태어난 해 탄생했다는 점에서 내겐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영화의 개봉 즈음에 달 착륙이라는 인류 과학사의 개가와 히피 운동의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 받는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열린 것은 그해 태어난 내 운명을 미리 암시하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우주로 뻗어나가려는 인간의 욕망이 과학에 힘입어 달에 닿은 것은, 지구라는 행성에 갇힌 인류의 인식론적 지평을 해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인류사 이후로 늘 매일밤 어둔 하늘에 떠 있던 달이 미신이나 숭배의 미스터리한 대상에서 벗어나 인간의 발에 밟히는, 구체적인 물질 세계에 편입 되었다는 것은 당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베트남전과 인종 차별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존 질서의 온갖 모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히피 운동은 우드스톡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증명했다. 두 이벤트 모두 구습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혁명적 사건이었다. 과학은 과학대로, 청춘은 청춘대로 불가능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야심의 정점을 맞이한 것이다.

그래서 1969년의 영화 ‘이지 라이더’에는 1969년을 전후한 시대 정신이 스며 들어 있다. 사회는 전진하려는 동력과 멈춰 세우려는 관성 사이의 아슬아슬한 혼돈 속에 있었고, 할리데이비슨에 몸을 실은 빌리(데니스 호퍼)와 와이어트(피터 폰다), 두 청춘이 캘리포니아에서 뉴올리언스까지 달리는 여행은, 바로 그 혼돈과 갈등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여정에 다름 아니었다.

둘은 처음에 히피들의 코뮌을 만난다. 자유롭고도 평화롭고 매혹적인 시공간이다. 그러나 공동체가 넉넉하게 먹고 살기에 꽤나 척박해 보이는 이곳을 그들은 쉽게 안식처로 정하지 못한다. 게다가 여기에도 낯선 자들에 대한 경계와 벽은 있다. 하여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 어쩌면 이것은 주류 사회의 질서에 정면으로 대항하지 않은 히피들의 자족적, 수동적 운동의 한계를 은유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두 사람이 퍼레이드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주정뱅이 변호사 조지 핸슨(잭 니콜슨)은 사회의 억압적 굴레를 답답해 하지만 그걸 규명할 ‘언어’를 갖지 못한 두 사람에게 나름의 명쾌한 해답을 안겨주는 인물이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두 장면, 세 사람이 들판에서 잠을 청하는 두 개의 밤에, 영화는 조지 핸슨의 입을 빌어 당대 사회의 단면을 묘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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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의 첫날밤, 빌리는 밤하늘에서 갑자기 섬광이 나타나 지그재그로 움직이다가 사라져 버리는 걸 봤다고 말한다. 조지는 그게 UFO라고 말하고 과학자들이 달에 레이더 빔을 쏜 1946년부터 그들은 이미 인류 사이에 살고 있다고, 자못 진지하게 덧붙인다.

“그들도 태양계에 있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야. 단지 사회가 우리보다 고도로 진화해 있지. 그들에겐 전쟁이 없어. 통화 체계도 없지. 지도자도 없어. 왜냐면 모든 이들이 지도자이기 때문이야. 그들의 기술 때문이지. 의식주와 교통까지 모든 것을 별 노력 없이 동등하게 스스로 조달하지.”

달 착륙을 전후해 과학 기술의 발전에 대한 낙관론이 현실 세계의 모순을 타파할 이상 사회에 대한 상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이 대사는 보여준다. 조지 핸슨의 말을 ‘미친 궤변’이라고 일축한 빌리는 묻는다.

“그렇다면 그 똑똑한 이들은 왜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거지?”

“그들이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만약 그랬다간 패닉이 일어나기 때문이지. 우린 아직 지도자가 있고, 그들에게 정보를 의존하고 있어. 그리고 지도자들은 정보를 억제하기로 결정한 거지. 우리의 미개한 시스템에 엄청난 충격을 야기할테니까.”

조지가 미개한 시스템이라고 말한대로, 다음날 세 사람은 보수적인 마을의 식당에 들어갔다가 UFO 대접을 받는다. 가죽 바지, 오토바이, 장발, 행색만으로도 사람들은 그들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세 사람은 그날밤 그들이 받은 대우에 대해 토론한다.

빌리: 삼류 모텔도, 이발소도 우리를 거부하다니. 우리한테 겁 먹은 거 같아.
조지: 그들은 너한테 겁먹은 게 아냐. 네가 대표하는 바에 겁 먹은 거지.
빌리: 우리가 대표하는 바는 머리를 깎아야 할 사람이 있다는 거야.
조지: 아니야. 네가 그들에게 대표하는 바는 자유야,
빌리: 자유가 뭐 어때서?
조지: 그래, 그건 문제 없어. 하지만 자유에 대해 말하는 것과 자유롭게 행동하는 건 큰 차이가 있어. 네가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신세가 됐을 때 자유롭긴 힘들지. 사람들한테 당신은 왜 자유롭지 않냐고 말하지 마. 만약 그랬다가 그들은 죽기 살기로 달려 들어서 떠들고 또 떠들어 댈거야. 개인의 자유에 대해서...하지만 그들은 자유로운 사람을 보면 겁을 먹을거야.
빌리: 그럼 겁주면 안되겠군.
조지: 그래. 위협을 느끼거든.

자유에 대해 말하는 것과 실제로 자유로운 것 사이의 간극을 논하는 조지의 통찰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미국의 억압적 공기를 잘 설명해준다. 물론 그의 통찰은 지금도 유효하다. 사람들은 논리적으로는 자유를 알지만, 실제로 자유로운 사람들을 보면 적개심을 드러낸다. 자유는 필연적으로 ‘다름’을 동반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주류적 가치관과 다른 길을 택하는 이들을 흔쾌히 관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냥 관용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예 혐오하고 더 나아가 제거하고 싶어한다.

‘이지 라이더’는 자유를 향한 행보가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실제로 폭력적으로 제거되는 과정을 담은 우화다. 그러나 이 영화가 21세기의 지금까지도 의미를 갖는 건, 그 과정이 1969년의 미국에만 유효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는, 인터넷을 타고 초고속으로 확대재생산되는 '혐오'라는 집단 병증에 시달리고 있다. 혐오가 일상적으로 만개하면,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자신들의 적의가 타당하다고까지 믿는다. 타당하다고 믿어지는 적의가 만개하면,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비겁함은 아주 합리적인 처세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21세기의 대한민국처럼 말이다. 여기는 비겁한 게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사회다.

1969년생인 나는 인류가 달에 착륙한 에너지를 받아 몽상가이고, 히피들처럼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주류적 질서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반항아의 기운을 안고 태어난 것 같다. 그래서 극소수로부터 오는 찬사와 다수로부터 오는 혐오 두 가지를 동시에 받으며 살아 왔는지도. 그게 내 숙명이다. 나는 하필 1969년에 일어났던 나의 우주적 탄생 기적이 저주임과 동시에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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