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집의 자존심

지난달

초가집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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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 찾았던 동인천역 근처 신포동은 인천의 대표적인 번화가였습니다. 깨끗한 유리창 너머 형형색색의 옷들을 걸친 미끈한 마네킨들과 세련되고 우아한 레스토랑의 네온사인,그리고 대문짝 간판의 페스트 푸드점들이 젊은이들의 발길을 재촉하는, 서울 도심에 비해 손색이 없는 곳이었죠. 하지만 그 일대를 조금만 벗어나 길병원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다 보면 일제 시대쯤에나 쓰여졌을 법한 폐 건물의 몸뚱이를 담쟁이덩굴이 타고 오르고, 우중충하고 작달막한 건물들이 줄지어 선 동네가 불쑥 나타나더군요. 행정구역을 따지면 인천광역시 중구 용동이라는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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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회색 느낌의 거리 한켠에 누런 타일 벽을 둘러치고 ‘초가집’이라는 허름한 간판 하나를 매단 식당이 수십 년째 한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초가집'이란 상호가 이 집이 원래는 진짜 초가집이었기에 붙은 이름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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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무소에서 자꾸 나와서 초가집 헐라고 아우성을 쳤어. 우리는 시원하고 좋은데, 동회에서 안절부절을 못하더라고. 동인천 바닥에 초가집이 있어서 되겠느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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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의 시절, 당시로서는 인천에서 알아주는 번화가였다는 이 동네에 초가집이 떡 하니 들어앉은 것은 동사무소로는 도저히 참아 주기 어려운 풍경이었다는 게지요. 공무원이 상주하다시피 집 고치라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결국 초가집 자체는 2층 양옥으로 바뀌고 가게 이름으로만 남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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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메뉴는 바지락 칼국수와 만두 정도였는데요. 둥그런 테이블에 밀가루 반죽을 놓고 홍두깨로 이리 치대고 저리 치대면 곧 널따란 테이블보가 되어 얇고 넓게 테이블 위에 드리워지게 됩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요즘은 구하기 힘든 양은 주전자 뚜껑으로 둥그런 만두피를 쾅쾅 찍어내기 시작합니다. 나이 일흔 가까운 아주머니의 힘겨운 팔품을 팔아가며, 주전자 뚜껑은 수백 개의 둥그런 만두피를 만들어 냈지요. 그러다보니 이 집에 있는 많은 양은 주전자들은 대개 그 뚜껑이 없었습니다. 본래의 용도 아닌 만두피 제조기로서 수명을 다하고 몸통보다 먼저 버려진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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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그렇게 만두피를 만드시는 걸 지켜보면서 "옛날 할머니(즉 지금 주인의 시어머니) 저 뚜껑 가지고 쿵쾅거리던 시절"을 이야기하며 킬킬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 초가집 시절부터 이 집에 드나들던 단골들이지요. 그들은 이 집의 과거를 얘기해 달라는 청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추억의 수문을 열었습니다.

"이 홀이 대청마루였구요. 돌아가신 할머니가 저쯤 부뚜막에서 주전자 뚜껑 가지고 쿵쾅거리고 있었어요. 만둣국이나 칼국수 한 사발 하고 그 열무김치...... 참 사장님 요즘 왜 열무김치 안해요? 아.... 여름에만 하나?"
"많이 두드려 맞았어요? 왜 맞았냐구? 뭐 담배 피우다가도 맞고, 술 먹고 꼬장부리다가도 맞고......"
"욕쟁이.... 그런 욕쟁이가 없었어요. 문 밖에 아는 사람 지나가면 야 이 자식아 국수 한 그릇 먹고 가! 이러면서......."

동인천 마지막 초가집 지붕 아래에서 할머니의 욕설로 속을 채운 만두와, 가끔은 몽둥이로 탈바꿈했던 홍두깨로 반죽한 칼국수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들 중 대다수는 이 일대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전에는 내로라 하는 인천 시내 번화가였다는 이 동네가 개발의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다른 곳으로 떠나 살다가 시간이 허락하고 뜻이 맞으면 끼리끼리 원정을 오시는 분들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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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가 한참 지나 한 아주머니가 다섯 살쯤 된 귀여운 아들의 손을 잡고 가게를 들어섰습니다. 칼국수와 만두 한 접시 앞에 놓고 배고파 아는 아이에게 연방 국수가락과 만두를 집어 주면서 그녀는 뭔가 놀랍다는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난로지가에서 아이의 먹는 양을 웃으며 지켜보던 할머니에게 말을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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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10년 전하고 똑같네요. 연애할 때 이 집에 많이 왔었는데......"
“그랬어요?”
“네. 바깥은 참 많이 변했는데..... 꼭 타임머신 타고 온 것 같아요.”
그리고는 정말 미래로부터의 방문자처럼 테이블을 더듬고 난로 위의 주전자를 더듬습니다. “어머...... 그때도 주전자 뚜껑이 하나같이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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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고 할머니는 알아 주어 고맙다는 듯 박수를 치며 활짝 웃었습니다. 그리고 상기된 어조로 말했지요. “옛날 그대로 하려고 해요. 음식도,재료도...... 뭐랄까 자존심이랄까?"
저는 불현듯 내세우는 할머니의 '자존심', 40년 역사의 초가집에 서린 자존심의 정체가 궁금해졌습니다. 할머니가 냉장고 위에 놓여 있던 시어머니의 초상화를 힐끗 쳐다보며 말을 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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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처음 시작할 때 어머니가 그랬지요. 사람을 돈으로 보지 마라. 그러다 보면 모든 게 돈으로밖에 안 보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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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 뜻을 몰랐답니다. 하지만 언젠가 만두를 빚으면서 이거 다 팔면 얼마나 남을까? 라고 혼잣말을 했을 때, 시어머니는 이렇게 쏘아붙이셨다지요.
“난 지금까지 이 만두를 몇 명이 먹을지만 계산했지 이게 다 얼마일까 계산한 적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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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할머니는 시어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동시에 툭하면 욕을 퍼붓고 수틀리면 홍두깨로 손님의 등짝을 노리던 시어머니의 욕질과 매질을 당하면서도 손님들이 할머니를 찾고 그 음식을 즐기는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고, 그 이유는 그녀가 손상하지 않아야 할 자존심으로 남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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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퇴락한 과거의 번화가, 사람들의 번다한 발길이 잦아든 초가집의 오후는 적적했습니다. 손님 몇 팀 더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다리쉼을 하다 보니 말없이 테이블에 손짚고 서서 여닫이 현관문을 응시하고 계신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안경 너머 눈을 껌벅거리면서 할머니는 그렇게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 가게를 보아 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습니다. 시어머니 이래 자신이 지켜가는 자존심을 눈으로 보고, 그 맛을 즐겨 줄 사람들을 소리없이 부르고 있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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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 집인 사람에게 초가집의 존속 여부를 물었더니 얼마 전까지는 분명히 있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제가 만나 뵈었던 며느님은 돌아가신 것 같다고 들었습니다. 허긴 제가 그곳을 찾을 때가 20년 전이었으니까...... 흘러 듣기로는 또 그 분의 며느님이 가게를 물려받아 한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주전자 뚜껑으로 만두피 만들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이거 다 팔면 얼마 남을지에 앞서서 몇 명이 먹을지”를 먼저 계산하는 법을 물려받으셨기를 바라 봅니다. 그런 게 자존심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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