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생각나는 부대찌개

2개월 전

요즘은 해야 너 본 지 오래구나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언제 퍼부을지 모르는 비 폭탄을 머금은 구름 아래에서 근 스무날 살다보니 (자전거 타고 다닌 게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음 속에도 빗금이 갑니다. 그런데 억수같은 비가 올 때마다 생각나는 곳이 하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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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여름 휴가때 거제도의 포로수용소 공원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전시 생활’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진열품들이 눈에 띄더군요. 군복을 고쳐 만든 두루마기, 수류탄으로 만든 등잔, 탄피로 만든 물건들, 철모로 만든 바가지 등등,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이들의 '생활의 지혜'를 넘은 '생존의 지혜'가 담긴 물건들이었지요. 무심히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홀연 음식 하나가 떠올라 군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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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 시절 전란통에서만 발휘되는‘생존의 지혜'의 창조물이며, 요즘에도 버젓한 메뉴의 하나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이름, 우리나라 최초의 퓨전 요리로서 한때 미군부대의 쓰레기들을 긁어모아 끓였던, '꿀꿀이죽'에서 진화한 음식, 바로 부대찌개였습니다. 그렇게 허접한(?) 연원을 가지고 있다 하여 얕잡아 볼 것은 아닙니다. 여느 음식점의 잡다한 메뉴판 한 귀퉁이에서 부대찌개를 찾아내 주문하다가는 '멀건 김치찌개에 햄 썰어놓고 라면 푼' 기묘한 음식과 대면하기 일쑤지요. 그래서 부대찌개는 냉면이나 메밀국수처럼 이른바 '전문점'에 가서 먹어야 음식 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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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이맘때 제가 찾아갔던 곳은 꽤 오래된 전통의 부대찌개 전문집이었습니다. 의정부는 아니고 송탄도 아니고 동두천도 아닌 미아리에 있는 집이었지요. 미아리까지 가는 길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비가 그야말로 폭탄처럼 퍼부었거든요. 미아삼거리역에서 내려서 가게를 찾는 10여분 동안 그야말로 속옷까지 젖어 버렸습니다. 카메라는 수건으로 싸고 해서 다행히 수해를 면했지만 PD가 한동안 ‘정비’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망가져 버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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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물에 빠진 생쥐가 돼 찾아든 부대찌개집은 스물 네시간 하는 평이한 식당이었는데 흠칫 놀랐습니다. 손님이 별로 없을 열 시 정도에 꽤 많은 이들이 홀을 채우고 있었던 겁니다. 말들을 걸어보니 자연스런 인터뷰들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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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미아리에 일 보러 왔는데, 요즘은 이 부대찌개 먹을라고 일을 만들어요."
"난 의정부 사람인데 이거 먹으러 여기로 와요 더 말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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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의정부 오뎅집에 갔다가 뭔가 바뀐 맛에 실망을 금치 못했거니와 저는 부대찌개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맛을 반만이라도 흉내내서 손수 끓여 먹어 보려는 욕심에 아주머니의 비밀을 캐물었습니다. 취재가 아니라 그저 식탐으로 육수는 뭘로 하는지, 고추장 양념은 뭐가 중요한지, 햄은 뭘 써야 하는지....... 그러나 아주머니는 그저 허허롭게 웃을 뿐입니다. 오기가 나서 더욱 캐물으니 누군가 제 등을 치더군요. 주방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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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결은 재료야. 다른 식당에선 재료 납품하는 사람들한테 외상 거래를 하는 수가 많아. 납품하는 사람들이야 거래 안 끊으려면 식당 비위 맞춰야 되고. 그런데 우리 사장님은 무조건 현금 결제야. 심지어 먼저 주기도 해. 그러니 이 집엔 최상등품만 오더라고. 고기든 야채든 햄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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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구나. 역시 오고 가는 현금 속에 싹트는 우정.....이 아니라 현금이라는 이름의 배려였겠지요. 그래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 아주머니의 부대찌개는 유난히 색상이 화려하고 푸짐했습니다. 새빨간 양념과 김치 위로 다양한 붉은 빛을 띤 햄과 소시지. 그리고 갈색의 고기가 깔리고, 온갖 푸른 야채에 뿌연 회색의 육수를 붓고, 다시 노란 치즈 한 쪽에 흰색 마카로니와 라면사리가 사르르 감겨드는 속에는 얼핏 프랑스 요리같은 색깔의 조화가 있었고 거짓말 좀 보태서 뚜껑을 닫기 어려울만큼 냄비에 차고 넘치는 한국식 풍성함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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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블로거님의 그 집 음식 사진 소개 합니다.... 워터마크는 사진 속에

그 절경(?)에 경탄을 하고 있는데 아주머니의 혼잣말이 제 귀에 들어 왔습니다. "내가 밥 주고 외상 받기 싫은데 어떻게 남 외상을 주나. 내가 먹고 살기 힘든 만큼 남도 힘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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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아주머니는 25년 전 지방에서 남편과 함께 적수공권으로 무작정 상경했습니다. 딸린 자식들은 넷, 먼저 올라와 있던 친구에게 저녁 대접을 받은 것이 이 '부대찌개'였고 그 맛에 반해 버린 아주머니는 목숨을 걸고 이 부대찌개에 매달렸답니다. 꿀꿀이죽이 부대찌개라는 음식으로 진화되는데 서양 음식인 소시지와 햄, 부대고기와 김치, 양념장, 육수의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졌듯, 아주머니는 자신이 반했던 부대찌개에서 "한 숟갈 부족한" 뭔가를 찾아냈고 마침내 자신만의 부대찌개를 완성시켰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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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얘기를 듣고 있는데 예의 참견 좋아하는 종업원 아주머니가 또 토를 달았습니다. 주인 언니는 참 징그러운 사람이랍니다. 그건 또 왜냐고 반문을 하고 그 답이 돌아왔을 때 저는 입을 쩍 벌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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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언니 이 가게 열고 15년 동안 하루도 안쉬었어. 추석이고 설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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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 얼굴로 주인 아주머니에게 재우쳐 물으니 아주머니는 쑥스러운 듯 손을 꼽아 봅니다. 설날도 쉰 적 없고, 애들 결혼식날도 끝나고 가게 나왔고, 초상을 치르면서도 가게에 출근을 했으니 결국은 하루도 안 쉰 셈이랍니다. 일요일도 여름 휴가도 하다못해 부부동반 계모임 여행도 해당사항 없이 아주머니는 15년간 자신의 온전한 시간을 부대찌개 냄비에만 퍼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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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려고 그랬을까? 돈 때문에 그런 거 같진 않아요. 억척 부리려고 그런 게 아닌데 그렇게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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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주머니의 얼굴은 '15년 무휴일 주방장'의 자랑스러운 빛깔이 아니었습니다. 지나온 세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제 감탄사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 낯색이 어두워졌고 급기야 카운터에서 눈물을 떨구셨지요. 크게 당황한 제가 영문을 알아보니 15년을 아주머니와 함께 이 식당에서 동고동락했던 남편이 중병에 걸려 병상에 누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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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레 카운터로 다가갔을 때 아주머니는 병상의 남편과 통화를 하고 계셨습니다. 밥은 먹었는지, 반찬은 뭐가 나왔는지 자상하게 묻던 아주머니는 "빨리 나아야 어디든 같이 가지."라며 다시 굵은 눈물을 떨굽니다. 그 눈물이 떨어진 곳은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어느 여행지에서 찍은 듯한 동그란 원판의 기념 사진이었습니다. 그때 참으로 주책없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PD는 큰 발견이라도 했다는 듯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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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디 관광 가셨으면 이날은 가게 문 닫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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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눈물이 채 가시지 않은 눈으로 저를 한동안 응시하던 아주머니가 원판 아래를 가리켰습니다. 그것은...... 63빌딩 관광 기념 사진이었습니다. 결혼식인지 회갑연인지를 잠깐 들렀다가 마치 63빌딩 구경 온 촌로들처럼 들떠서 사진 촬영을 했다더군요. 방정맞은 제 입을 여러 차례 쥐어 박으면서 저는 15년간 쉼없이 계속된 아주머니의 전쟁같은 삶, 그리고 삶과의 전쟁이 몸서리치게 다가서는 것을 느꼈습니다. 곧 눈물을 행주로 닦아부치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서서 햄과 소시지와 부대고기를 썰고, 김치와 야채와 양념을 가다듬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저는 부대찌개라는 음식이 처음 만들어졌던 때를 상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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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칼바람 속에서 수많은 어머니들, 아내들, 아주머니들의 눈물이 꿀꿀이죽에 흘렀을 것이고, 어떻게든 그 엉성한 잡탕으로 식구들의 배를 불리고 입에 맞춰 보려던 노력이 밤낮없이 이루어졌겠지요. 눈물을 삼키며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다듬는 미아리의 한 부대찌개 주인 아주머니의 야무진 손놀림처럼 말입니다. 그날 주인 아주머니가 끓여 주신 부대찌개를 먹으면서 그 맛보다는 그 맛을 내기 위해 들어갔을 그 많은 양념(고추장 같은 양념 말고요)에 죄송스러워 저는 국물 하나 햄 한 조각까지 말끔히 먹어 치웠었습니다. 웬지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절대로 식탐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로부터 몇년이 흐른 뒤 저는 미아리 근처에서 다른 프로그램 촬영을 끝내고 지나는 길에 부대찌개집을 들른 적이 있습니다. 그날도 비가 억수같이 왔었습니다. 그래서 이 집은 ‘비가 오면 생각나는’ 집이 됐습니다. 반가워하는 아주머니께 던진 첫 질문은 남편은 괜찮으시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아주머니가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제게 답을 주신 것이 새삼 입가에 미소를 드리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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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수술 받고 말끔히 나았어요. 이제는 가게 문 닫고 좀 놀러 다녀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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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까지 가기는 머나먼 길인데 한 번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찾아가 볼까도 합니다. 아직까지 장사를 하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오뎅집처럼 어 이거 뭐야 하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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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코리아> PD가 저였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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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침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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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안가본지 20년인데.. 함 가 보십쇼 https://band.us/band/57789293/post/45816

맛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