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생의 반추

4개월 전

젊은이는 기회가 있으면 한 마디라도 더하려 든다. 인간은 자의식 과잉이라는 질병을 안고 태어나는 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노화라는 약을 먹지 않으면 도통 치료가 어렵다.

나이가 들면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다. 필요하지 않으면 딱히 답변도 하지 않는다. 유명 만화 <데스노트>에서, 데스노트를 가진 자의 정체를 추리하는 야가미 라이토의 사유와 같다. 자가 이익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상론으로 이 노트를 사용하는 사람이 어른일 리가 없으므로, 데스노트의 주인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결국 십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이 젊은이의 것이라면 그래도 참아줄만 하겠지만 나이 든 이의 명예욕이 통상 가장 역겹다면 결국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말수를 줄여야 한다.

나는 일찍이 효율을 추구하고 말수를 줄인 덕에 삼십대치고는 꽤 선방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했고 비교적 좋은 차를 타며 수도권 변두리긴 하지만 테라스와 화장실이 각각 3개인 복층집에 산다. 젊은 시절 갈망했던 직업은 정작 되고 나자 별 볼 일 없는 타이틀로 전락했지만 반골 기질이 충만하여 회사에서 잘린 덕에 그냥 논다고 말하기 싫어 차린 사무실이 성업하여 3년 안 되어 월 매출 오천만원의 로펌 대표가 되었다. TV에도 여러 번 나왔고 모 메이저 정당에서 국회의원 출마 제의도 받아보았다. 퍽 소시민적이라거나 반대로 과시하려고 쓴 것 아니냐고 비웃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여하간 더 젊던 날에 원하던 것들이었고 그 속물적 만족이 글을 써야한다는 욕구 상위에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매일 일만 한다고 시간이 없다. 그런데 시간이 남아도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몸에 쌓이면 자연스럽게 배출하는 것이 글쓰기라면, 나는 그 메커니즘을 거의 잃어버렸다. 나 자신의 위장과 체질을 '건강'하게 개선하자 독극물이든 배설물이든 간에 몸에서 내보낼 것이 사라졌다. 실은 이 글도 소시민적 자기 만족을 내세우는 것은 아닐까, 굳이 거창한 문장으로 장문을 적는 것보다 지금 당장이라도 멈추는 게 그래도 담백하지 않나 반문해본다.

나는 원래 의미를 쫓는 사람이 아니다. 원래 인생은 의미가 없고 의미를 쫓는 것은 움직이는 물체를 쫓는 고양이의 행동처럼 인간이라는 종(種)이 가진 저급한 본능의 영역이지 고상한 사유의 영역이 아니다. 생각할수록 인생은 원래 의미가 없고 보통은 그걸 일찍 깨우친 사람일수록 품위가 있다.

나는 잡생각이 많지만 의외로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아니다. 방향치인 것은 지도를 보기 전에 먼저 걷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길 잃은 여행도 대부분 즐거웠지만 여하간 그랬다.

나는 자신을 불태울 정도로 독하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물리적으로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 적이 없었고 그래서 힘의 팔할만 쓰며 살아왔다. 멍청해서 딴 생각을 하다가 수능 듣기 평가를 3문제나 귀로 흘렸는데, 지금도 늘 바쁜 것과 별도로 여백을 쏟아부으며 살 정도의 긴장감이 없다. 좀 더 야비했으면 떼부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소시민인 탓에 굳이 남을 속여 가며 성공할 당위를 찾은 적은 없다. <장자>에 보면 하늘을 나는 대붕을 보고 도토리를 안고 있는 쥐가 자기 도토리를 뺏어갈까봐 찍 소리를 냈다고 하는데, 대붕이 보기에는 한심할지 모르지만 여하간 나는 도토리만 안고 있어도 별 불만이 없으니 하늘을 쳐다보며 목이 아플 일이 없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실은 내 진짜 욕망은, "저는 꽤 잘 나가는 사람이지만, 소설도 쓰네요? 후후"라고 말하고 다니는 게 아니었을까. 그런데 일단 나는 저 문장의 전단부인 '꽤 잘 나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관용을 베풀거나 착한 것도 강자여야 매력이 있는 것인데, 글을 쓴다는 게 멋져보이려면 뭔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내겐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골방의 가난뱅이가 될 용기는 더 없었다.

일단 '꽤 잘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 부지런히 자기의 모난 부분을 갈고 닦았더니 둥글둥글한 자갈이 되어서 이제는 계속 그 쓰임새로 쓰이게 되었다. 그건 소위 말하는 예술혼과는 전혀 다른 것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살>의 주인공인 에블린 멕헤일처럼, 본인에게는 괴롭고 끔찍한 경험이라도 외부에 발현되는 것은 아름다운 게 예술이 아닐까 싶다. 생물이 자기 목숨을 끊는 행동에 합리성이 있을 리 없지만 여하간 아름답지 않은가.

하지만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추해도 상관 없다는 게 내 관점이고, 큰 명예에는 관심도 없고 돈을 좀 편하게 벌면 좋겠지만 그 외에는 별 관심이 없으며, 이제는 자연스럽게 배출되는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삶의 지향점도 예술성이나 미학이 아니라 합리주의이라면 도대체 쓸 이유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있어 먹고 사는 문제를 헤쳐나가는 방법은 역설적으로 늘 글이었는데, 그것은 뭔가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 아 이제 다 때려치고 분수에 맞게 검소하게 살며 은둔하며 글이나 쓰자, 이런 생각을 꺼내들 때마다 그 위기는 곧 넘어갔기 때문이다. 사무실 운영이 어렵고 시간이 좀 비어 이제 소설이나 써야겠다고 결심해 소설 한 챕터 정도를 쓰면 갑자기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건이 많이 들어와 그 소설 집필은 매번 중단되어야 했다. 더 젊은 시절에도 학업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진로를 포기하고 무협지 작가가 될 생각이었으니 이 생각의 역사는 깊다. 요컨대 내가 내 진로에서 버티는 묘수는 늘 소설 집필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진심으로 내가 톨킨이나 김용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반생을 지나 반추하는 이 시점에, 나는 이제 내 삶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담담히 인정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론이다. 전생이나 내세를 믿지 않고 가뜩이나 의미는 찾지 않는데 내 삶은 한 번이니, 후대의 명예나 어떤 대의를 위해 당장의 기름진 길을 가지 않을 리 만무하며, 확률적으로 성공가능성이 더 좋은 일에 초개처럼 나를 태울 리는 없다. 심지어 요즘은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심각한 운명론자가 되어버려, 삶의 방향성을 고의로 수정하는 일에는 더욱 흥미가 없어졌다.

오래 전에는 맞춤법도 틀렸지만 마치 테러리스트 같은 감정선이 자극적으로 드러나는 글도 많이 나왔다. 예전에는 그것들을 썼지만 지금은 쓸 수 없다는 것 또한 운명 아니겠는가. 몇 가지 변수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아슬아슬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던진 동전들은 대부분 한 방향이 나왔기에 나는 그 변수들을 짓밟으며 살아낼 수 있었다. 어떤 방향성을 설정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 강원랜드 같은 도박장에서 룰렛을 돌려보면, 하루에 수억번이 돌아가는 이 지구에 자리한 룰렛들 중 하나인 내 앞의 룰렛에서, 빨강이나 검정이 열 번 스무 번 연속으로 나오는 것은 매우 흔하고 수학적으로도 설명이 쉬울 뿐더러 심지어 거기 어떤 법칙도 없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살면서 심지어 던진 동전이 선 적도 있는데 말이다. 그깟 빨강 열 번 정도야.

나는 자살하겠노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전 재산을 바카라에 걸어 열 번 게임을 했는데 설령 다 이기지는 못했을지라도 도리어 적당히 여생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땄다면 그 사람은 이제 그 돈을 지켜야 한다. 조국이나 부모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내 배우자와, 내가 월급을 주는 사람들, 내가 채무를 진 사람들은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다. 사람으로서 도리를 지킨다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을 지키는 것이다. 애시당초 선택이 늘어나고 상수가 늘어난 순간, 인생에서 "나는 자유다."와 같은 허울 뿐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이래나 저래나 어차피 삶이라는 전장터에서 누구든 시간이 지나면 죽는다면 약간의 맨박스로 폼이라도 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서 내 시간을 태우고 갈아 넣어 사람으로서 도리를 다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생각된다.

어차피 대작도 쓸 일이 없고, 유튜브나 글을 써서 성공한다고 해도 지금 버는 것보다 많이 벌 리도 없고, 행여 유명해지기라도 하면 운전을 하다가 오토바이 기사랑 쌍욕을 주고 받아도 그걸 누가 촬영해서 피곤할텐데, 그래서 무엇을 작정하고 쓸 당위가 있는가. 정말 돈이 궁해서 글로 돈을 벌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이런 잡변보다는 익명으로 젠더와 장르를 망라하는 포르노 소설이나 쓰는 게 낫지 않을까.

겸손하고 자신을 늘 돌아보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도 말은 되지만, 정말 겸손하고 싶다면 젊은 사람들과 운동이라도 하는 것이 더 낫다. 숨이 차고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못하다는 게 공개적으로 알려지면 사람은 자연스레 겸손해 진다. 내가 좀 더 건장하고 남성적인 사람이었다면, 사다리를 들고 성벽 맨 앞에 선봉에 서서, "나는 원수이기 이전에 척탄병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너희들에게 보여주마!"라고 말했던 프랑스의 장군 장 란(Jean Lannes)처럼, 뛴다는 것만으로도 자기 정체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다 망해도 공사장 막노동꾼으로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먼 나라에 용병으로 입대하는 Lone Wolf 형 남성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부류의 일에 재능이 전무하며 스파르타에서 태어났다면 바로 골짜기에 던져졌을 나로서는 몸을 쓴다는 것에서 어떤 내 정체성을 찾을 수는 없다.

딴돈을 다 잃을 수도 있었고 그렇게 될 것이 두려웠다. 너무 두려워서 미리 무엇을 할지 독백하곤 했다. 여유로운 흉내를 내고 남 앞에서는 웃는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 그 두려움과 비장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쓸 것이 없고 더 쓸 당위가 없을수록 더더욱 사골마냥 과거라도 돌아보아야 한다. 실현가능성과 동떨어졌을지 모르나 나는 여차하면 사람 뒷통수에 야구 배트로 풀 스윙을 날리고 그에 대한 책임도 그냥 저냥 지고 살아보겠다는, 젊은 날 가졌었던 그 객기 어린 결심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냥 다 때려치고 교도소에서 육필소설이나 쓰고 살아도 나는 만족할 수 있다는 그 허세는 최후의 보루로서 남겨두어야 한다.

성경대로 사람 수명을 칠십으로 잡는다면 딱 반, 요즘 수명은 그보다 높다지만 나는 썩 강골이 아닌지라 역시 보수적으로 잡아 반이 지나갔다고 말하는 반생의 반추, 불필요한 말을 삼가다 보니 쓰지 않아지던 것을 억지로 꺼내 적어낸 것은 이것이다.

  • 2021년 4월 5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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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에 쫙쫙 펼쳐지는 글나무를 심으셨군요 :)

아주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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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사실 좀 묵히고 퇴고하고 올릴까 하다가 그냥 올렸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제서야 글을 보았습니다. 깊은 맘의 고독과 내공이 느껴지네요. 저같은 범인은 쳐다볼수 없는 천상계에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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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너무 과찬이네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ㅎㅎ 잘 지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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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근처에 있기는 했지만 상처가 넘 커서 ㅋㅋ 이제 좀 해볼까 합니다 ^^

풍류님~ 돌아오신 건가요~!!
웰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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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다시 해보려고요 ㅋㅋ
오른쪽에 저 테두리는 무엇인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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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dih 형한테 말하면 꼬리말을 달아줘요~!!
kr 커뮤니티에 가입하셔야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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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시는 타이틀을 말씀해주시면 설정해드립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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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그럼 저는 <스팀잇 변호사>로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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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설정해드렸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