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잭 소비뇽 블랑(Russian Jack, Sauvignon Blanc 2020) 리뷰

2개월 전

처음 마셨을 때 맛은 강렬하면서도 매력적이었지만 두번째는 영 별로였던 화이트 와인.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길에 먹은 묵이라는 생선이 너무 맛있어서 은어(恩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하는데, 나중에 궁궐에 복귀해 다시 먹어보니 영 그 맛이 아니라 '도루묵'이 되었다는 그 일화처럼, 처음 마셨을 때 허기진 상태에서 야근을 하다 밤 늦게 마셔서 맛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날 공교롭게 평소 가던 '재수 없는' 와인 아울렛 앞 푸드 트럭에서 새우 튀김을 팔고 있었고, 와인 아울렛에서는 행인들에게 러시안 잭 소비뇽 블랑 시음을 콜라보 마냥 권하고 있었다. 첫 느낌은 환상적이었다. 수준 낮은 표현으로 말하자면 분명 신 맛인데, 향긋하고 강하게 맛있더라. 나중에 와인 시음의 전문적 미사여구를 알아보고 이 맛을 미네랄 맛! 풀 맛!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인터넷에서는 은은한 과일향도 난다는데 비전문가인 내가 판단했을 때 미각에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은 은은하다는 표현은 결코 할 수 없다.

바로 앞 푸드트럭의 새우 튀김과 궁합이 잘 맞았다. 햄버거와 콜라나, 삼겹살과 소주, 치킨에 맥주에 감히 비견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지난 번 비교적 유명한 레드 와인을 품평하였으니 이번에는 여러 모로 상반되는 와인을 쓰는 게 맞을 것 같아 그때 기억을 살려 한 병 더 마셔보기로 했다. 구대륙 와인에 대비되는 신대륙 와인, 레드 와인이 아닌 화이트 와인, 고가 와인에 대비된 저가 와인, 무난하고 전통적인 맛이 아닌 새롭고 강렬한 맛! 이런 대구를 넣으며 나는 후자가 더 맞소이다라고 적어보려고 했는데... 처음 와인 리뷰 같은 건 생각도 안 하고 시음한 맛이 좋아서 샀을 때와 달리 다시 사서 마신 맛은 영 별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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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둘째가 먼저 등장.

작정하고 사마셨는데 왜 맛이 없을까. 실은 착한 가격의 접근성 좋은 와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같이 등장시킨 요리가 무식할 만큼 형편 없는 것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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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맥주만큼 편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쓸 생각으로 저렇게 디피를 해보았는데 끔찍하게 맛이 없었다. 문화 테러 행위였을지도.

통상 화이트 와인은 해산물과 어울린다고 하고 처음 먹은 것도 새우 튀김이었으니 다시 한 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다만 푸드 트럭은 요즘 오지 않아서 와이프에게 새우 요리를 해달라고 하고 다시 이 와인을 사러 갔다. 공교롭게 똑같은 와인을 3번이나 사 마신 셈이다.

사마신 곳은 지난 번 아울렛으로 동일하다. 서비스 마인드는 전혀 없는데 너무 없어서 혹 이런 지적 허세가 와인 판매의 기술은 아닐까 의심될 지경이다. 러시안 잭이라고 적혔지만 찾던 화이트 와인이 아닌 레드 와인도 있자 무심코, "어 러시안 잭이 레드 와인도 있네요?"라고 묻자, 마치 대한민국에서 인터넷이 잘 터지냐고 묻는 외국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답하는 한국 사람처럼, "네 당연하죠. 여기 피노 누아라고 적혀 있잖아요."라고 답했다.

내가 씨발 피노 누아가 포도의 재배품종이고 그 품종이 검정색 레드와인 품종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 장담컨대 지금 이 글 읽는 사람도 대부분 모를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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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러시안 잭에 적힌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도 포도의 품종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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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올 때마다 내 기준에서 한 건씩 터뜨리는 이 종업원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와인을 계산하며 씹던 껌을 뱉어 쓰레기통에 버려달라고 특별히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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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물론 이랬다는 것은 아니다. 매너 있게 휴지에 싸서 주었다. 나는 종업원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과는 비즈니스를 하지 않는다는 이론의 신봉자고 평소에는 안 이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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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첫째 고양이가 말하길 와인은 와인이고 새우는 새우라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대망의 3번째 시음을 해보게 되었다. 일단 첫번째와 두번째 맛 차이가 무엇인가 검색해서 알아보던 중,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은 디캔팅을 해야 한다고 해서 해보려고 했으나 적절한 도구가 없어 첫 잔은 버리고 두 번째 잔을 한 시간 정도 방치해두는 식으로 갈음하였다. 믹서기에 갈면 좋다던데 마실 때는 그 방법을 몰랐다.

여하간 마셔보았는데 음...... 내가 문화 테러 행위를 자행한 두번째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첫번째보다는 못했다. 혹 내가 첫번째 마셨던 것이 한국 와인 시음회에서 1등을 했다는 2018년 산이고 두번째 마신 것은 2020년 산이었을까? 그 병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아니면 단순히 그때의 배고픔과 푸드트럭 음식 특유의 감칠 맛나는 기름 맛과 잘 조화가 되어 있던 것일까? 당도는 드라이(dry)하고, 타닌은 강하며(hard), 산도는 시큼(tart)하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다른 리뷰어들이 쓴 것 같은 "조화롭다"는 표현은 쓰기 어렵다. 그냥 내 식대로 표현하면 개성이 강하지만 4번째로 사 마실 것 같지는 않다.

자 이제 최종 평가를 해보고자 한다. 원래라면 이 와인에 지난 번 리뷰한 샤또 딸보보다 좋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그냥 어떤 가격대나 전통, 브랜드에 따른 가치 판단보다는 가치 있는 물건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심리도 있었기 때문이다만...... 조금 빨리 물렸다는 점에서 그러기는 어렵다. 과일 소주나 허니 버터칩, 꼬꼬면과 같이 처음 한 번 먹으면 맛있지만 지속적으로 마시기에는 약간 부족한 것 아닐까?

다만 향이 강한 해산물 튀김과 먹으면 꽤 잘 어울린다는 것은 명확하다. 어쩌면 와이프가 해준 새우 튀김 요리가 집에서 만든 집밥이라 조금 더 향신료를 많이 쓰는 바깥 음식보다 덜 어울렸을지도.

이대로 바로 점수를 주면 좀 야박할 것 같으니 이 와인이 뉴질랜드 산인데 왜 이름이 <러시안 잭>인지 그 어원이나 좀 밝히고자 한다. 러시안 잭(1878-1968)은 뉴질랜드에 거주하던 라트비아 인으로 아래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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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수확기마다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며 포도도 따고 그러면서 또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거리의 시나라고 불렸다고 한다. 존경을 받았고 사후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 와인 이름에 <러시안 잭>이 붙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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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맛이 강하고 신선하다는 장점과, 금방 물린다는 단점을 고려하여 원래는 별 ★★★★★☆☆☆☆☆ 정도 줄까 했지만 해산물과 잘 어울리고 와인 이름과 디자인은 괜찮다고 판단하여 ★★★★★★★☆☆☆로 올림.

이상 비전문가의 두번째 와인 리뷰를 끝낸다. 마무리는 우리집 둘째 자는 사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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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또 딸보(Chateau Talbot. 2018)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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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 순간, 그때 그사람,
바로 그곳이어야 딱 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원히 그 맛은 느끼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참 우울한 일이죠...

푸드트럭 새우튀김과 러시안 잭...
꼭 먹어보고 싶네요, 그때 그맛과는 다르겠지만서도
저는 또 저의 맛을 느끼겠지요 ㅎㅎ

피노 누아가 포도의 재배품종이고
그 품종이 검정색 레드와인 품종이라는 걸...
진정 몰랐단 말입니까... 정말 실망입니다... ㅠㅠ
누군가 제게 이렇게 말하면 요즘처럼 비오는 날 먼지나게 패주겠습니다.

근데 눈 뜨고 자나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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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영원히 그 맛을 느낄 수 없다라는 게 포인트가 아닐지 ㅋㅋ 그 경험이라는 것도 처음이어야 의미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적어도 그떄는 환상적인 맛이었습니다

먼지나게 패주면 벌금을 내야 할 것 같아서 씹던 껌을 휴지에 싸서 주는 찌질한 복수로 갈음했습니다 ㅋㅋ 실눈 뜨는 거예요 ㅋㅋㅋ 사진 찍다 들킴

술 리뷰 글이라니... 술 커뮤니티에도 좀 올려주십쇼.
Not an alcoholic(알콜 중독은 아니라고요.)
https://steemit.com/trending/hive-143025
작성자가 없어서 말라가는 커뮤니티입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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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별도로 태그를 달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네요 ㅋㅋ 다음부터는 여기에 올리겠습니다 ㅋㅋ

약속대로 고양이 사진을 올려주셨군요.
와인은 아날로그적인 물성을 지니고 있군요. 먹을 때마다 맛이 변한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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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와인의 매력이 아닐까 싶네요 ㅋㅋㅋ 앞으로도 자주 올리겠습니당

판관님의 술리뷰라니 재밌습니다! 와인은 잘 모르나 꽤 까다로운 아이라 생산년도나,,,보관 상태나 먹는 온도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가 보더라고요! 가성비 와인을 찾아 헤매는 사람으로 한 번 먹어봐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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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성비는 환상이죠 ㅋㅋㅋㅋ 뭔가 깐풍새우 이런 것과 잘 어울릴 맛입니다 :)

러시안 잭이 레드 와인도 있네요?"라고 묻자, 마치 대한민국에서 인터넷이 잘 터지냐고 묻는 외국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답하는 한국 사람처럼, "네 당연하죠. 여기 피노 누아라고 적혀 있잖아요."라고 답했다.
내가 씨발 피노 누아가 포도의 재배품종이고 그 품종이 검정색 레드와인 품종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

ㅋㅋ 종업원 마음에 드는 캐릭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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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때마다 글 소재거리 하나 던져주십니다 ㅋㅋㅋ

아는 와인이 있어서 반갑네요. 이 와인 처음 마셨을 때 향이 진짜 좋더라구요. 저는 아직도 그 감정 그대로 좋아하긴 합니다만 :)

저 종업원 저랑 비슷한 과 군요. 정말 피노누아를 모르셨다고요...??? ㅋㅋㅋ 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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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 맹세컨데 대부분 모를 겁니다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