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정학의 포로들 ; 뼈를 때리는 국제질서의 현실론

2개월 전




지정학(Geopolitics)의 사전적 의미는 지리적 위치와 관계가 정치, 군사,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을 공부해서 미래 경제가 어떻게 될지 예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지정학은 미래의 국제 정세를 예측하는 힘이 있다.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인간 활동의 궤적은 상당부분 지리적 위치와 특성, 인구와 토지생산성 같은 물리적 특성에 의해 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 저자는 학자가 아니라 저널리스트이다. 저자가 저널리스트이기 때문에 가능한 간결하고 객관적인 문장이 돋보인다. 짧은 책도 아니고 가벼운 내용도 아니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술술 넘어간다.



위 책은 지정학적 관점에서 근대 이후의 세계사를 조망한다. 이런 지정학적 관점은 역사를 사건의 나열로 보는 시각이나 한국사에 관점에서 세계사를 편집하여 이해하는 방식보다 역사를 훨씬 입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근대사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대결로 규정하는 방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진부하거나 형식론적이라고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근대사, 특히 한반도 주변의 근대사는 이런 틀로 볼 때 많은 것이 설명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것이 국익일지 예상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대륙세력은 깊은 종심과 생산성을 바탕으로 주변으로 뻣어나가려 한다. 해양세력은 바다가 제공하는 방어와 교역의 유리함을 바탕으로 대륙세력을 포위하려 한다. 이런 두 세력의 충돌은 마찰이 일어나는 지점에서 지정학적 충돌을 일으킨다.

영국과 러시아가 충돌한 일차 그레이트게임은 영국이 러시아를 포위한 크림반도, 아프가니스탄, 이란에서 충돌을 일으켰고 190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영국의 대리자인 일본에 패배하면서 마무리되었다.

미국과 소련이 충돌한 이차 그레이트게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냉전을 말한다. 이 대결은 한반도에서 한국전쟁이 시작되면서 본격화하여 1990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일단락 되었다. 냉전기간 동안 미국은 해양세력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소련을 바다에서 차단하고 고립시켰다. 소련은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제 3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방법으로 포위망을 돌파하려 막대한 출혈을 강요당하다 패배했다. 



지금은 삼차 그레이트게임이 시작되고 있다.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이를 좌절시키려는 미국의 대결이다. 위 책이 쓰여진 것이 2018년 초이니 글을 쓰고 있었을 때는 2017년 정도로 봐야 한다. 아직은 중국과 미국의 심각한 갈등이 일어난 때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정학적 관점에서 이 둘의 충돌은 예정된 것이었다. 이 책은 이를 이미 2017년에 예상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은 한반도에 관한 것이다. 490쪽이 넘는 내용의 앞쪽 450쪽은 마지막 에필로그를 위한 서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에 주장은 이렇다.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좌파의 민족통일론이나 북한을 자유로운 한국이 주도적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흡수통일론 모두 비현실적이고 위험한 이상론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강대국간의 지정학적 갈등이 만들어낸 완충시스템이다. 완충시스템이 사라지면 오히려 위험한 충돌이 유발된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지정학적 평형상태를 평화롭게 관리하는 것이 한국의 최선의 이익이다. 지금의 분단이 강대국의 힘의 균형이 유발한 것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분단을 극복하는 시작점이다.

뼈를 때리는듯한 내용이지만 부정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갑자기 북한이 내부문제 때문에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위험한 지정학적 충돌을 일으킬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이라는 위치는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양보할 수 없는 지정학적 이익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당분간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설치다 미국의 공격을 받거나 내부 문제 때문에 급작스럽게 붕괴하는 것은 한국에 위험하다.



2020년 가을에 이 책을 읽으면 가슴이 서늘해 지는 것을 금할 수 없다. 오늘 트럼프는 틱톡과 위챗의 미국내 사용을 금지했다. 어제는 미국 차관급 인사가 대만을 방문했고 미국은 대만에 정밀무기의 판매를 승인했다. 경제 전쟁은 이미 선을 넘었고, 미국은 중국이 물러설 수 없는 대만문제를 슬슬 건드리고 있다.

미국은 소련에게 썻던 방법을 중국에게 쓰려고 하는 듯 하다. 주변 동맹국을 조직하여 경제적으로 포위한 다음 자멸을 기다리는 것이다. 중국도 냉전 당시 소련이 썼던 "접근차단/지역거부" 방식을 쓰고 있다. 중국의 핵심 이익이 걸려있는 남중국해와 대만지역에 미국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전력을 집중하여 미국이 해당지역에 군사력을 투사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 전략이 먹힌다면 중국은 이런 범위를 자신들이 제2 도련선이라 부르는 괌 지역까지 넓혀갈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책이 예상하는 것과 내 판단은 같다. 시간은 미국편이 아니다. 그리고 중국은 소련이 아니다.

소련은 북극해를 제외하고 바다에서 완전히 격리된 상황이었다. 중국은 황해부터 남중국해까지 넓은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남중국해와 대만은 중국의 코 앞고 미국은 수천킬로 떨어져 있다. 

중국 지도층은 지정학적으로 사고하며 길게 기다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다. 어떤 시점에서 일사분란하고 단호하게 국민을 동원할 능력도 있다. 미국은 소련과 상대할 때보다 더 분열되어 있고 정권에 따라 일관된 대중정책을 취하지 못할수도 있다. 그리고 이 대결에서 피를 흘릴 각오가 있는지 확실치 않다.

소련은 90년대 공중분해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쇠퇴하고 있었다. 중국이 현재 정점을 지나 정치-경제적으로 쇠퇴하고 있다는 근거는 없다. 이미 PPP기준으로는 미국의 총생산을 넘었고 늦어도 2030년에는 명목 GDP로 따져도 미국을 넘어선다.




정말 미국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미국에 필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의지일지도 모른다. 어떤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현 상황의 변화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 말이다. 이 의지를 중국은 시간을 두고 인내하며 시험할 것이다. 만약 중국의 인내가 통한다면 세계는 진정한 G2체제를 보게 될 것이다. 아니면 대륙세력이 해양세력을 구축해버린 새로운 세계질서를 보게될지도 모른다.

한국은 해양세력이 만들어낸 정치-경제체제에서 번성한 나라이다. 사실 지금 말하는 해양세력이란 인류 문명을 지금 수준으로 끌어올린 서구와 영-미권을 말한다. 해양세력의 쇠퇴는 어찌보면 인류가 지금까지 일궈온 문화와 정치-경제 시스템의 쇠퇴를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머리는 맑아졌지만 가슴은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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