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비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앞으로의 예상 1편 ; 흔들리는 미국의 패권

4개월 전


나는 이미 1월에 쓴  이전 글에서 러시아가 2월 안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국제관계 전문가를 포함해 거의 모든 매체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푸틴이 미국에 양보를 얻으려고 벼랑끝 전술을 쓰고 있다고 보거나 러시아 국내용 선전극일 것이라고 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해는 간다.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강대국의 군사력에 의해 한 나라의 독립과 영토의 완전성이 침해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단순히 우크라이나 동부 일부를 편입하는 것이 러시아의 목표일리 없다. 도네츠크지역에서의 러시아군의 직접적인 피해를 빌미로 우크라이나 전역에 파쇄공격과 점령을 감행할 것이다. 미국 이외의 국가가 다른 나라에 정규군을 동원해 파쇄공격을 감행한다는 것도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적이다. 

하지만 한 국가에는 어떤 상황에서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선이 있다. 이를 지정학적 용어로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이라고 한다. 어떤 나라든 이를 위해 모든 손익분석을 멈추고 무력에 호소해서라도 무언가를 지켜야 하는 순간이 있다. 이른바 전문가라는 자들의 안이한 상황 판단은 장기간 동안 이런 러시아의 사활적 이익이 침해되었을 때 러시아가 얼마나 단호하게 행동했는지를 간과한 것이다.


나토의 동진에 따른 지정학적 갈등에서 푸틴이 지금까지 보여줬던 태도는 매우 일관성이 있었다. 러시아의 사활적 이익을 침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러시아의 사활적 이익은 러시아의 서부와 남서부의 완충지대를 유지하는 것이다. 

2008년 루마니아에서 미국의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은 푸틴의 면전에서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을 약속했다. 이른바 부쿠레슈티 선언이다. 미국은 아예 이 두 나라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가입한다는 로드맵을 확정하려 했다. 이런 시도는 너무 나간 것이라 여겼는지 독일과 다른 나토 국가들이 간신히 뜯어 말렸다.

코카서스산맥(캅카스산맥)은 러시아와 서남부를 보호하는 자연 장벽이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를 연결하는 3~4,000 m가 넘는 산맥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천혜의 요새이다. 이 산맥을 국경으로 그 남쪽을 완충지역으로 유지해야 하는 것은 러시아의 사활적 이익이다. 이 때문에 캅카스 산맥 북쪽 산등성이의 체첸 자치국이 독립하려 했을 때 러시아는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고 이를 좌절시켰다. 

이 산맥 고지를 양분하는 남쪽에 위치하는 나라가 조지아이다. 여긴 러시아 서남부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곳이다. 조지아가 나토에 가입하면 캅카스 산맥이라는 러시아의 자연적 방벽이 무력화된다.

부쿠레슈티 선언이 있고 조지아의 친서방 정권이 나토를 믿고 러시아에 도전했던 2008년 그 해에 러시아는 머뭇거림 없이 조지아를 전격적으로 침공하여 조지아 내의 친러 자치주인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를 사실상 독립시켰다. 나토와 미국, 그리고 조지아에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 후로 조지아가 나토에 가입할 길은 사실상 좌절되었다. 이 지역에서 조지아를 무력화하고 아르메니아를 친러국가로 유지하는 것이 러시아의 사활적 이익이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는 물론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곳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다면 미국의 중거리미사일만 배치해도 모스크바는 물론 러시아의 종심 모든 지역의 방어가 매우 힘들어진다. 지상군이나 항공기가 러시아 종심에 도달하는 거리도 대폭 줄어든다. 

한마디로 쿠바에 러시아의 중거리 미사일기지와 공군기지, 상륙 목적의 해병대 기지가 건설될 때 미국이 느낄 위협에 비견된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60년대 쿠바위기가 미국이 터키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려다 발생한 것이다. 터키와 우크라이나의 위치를 보면 러시아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우크라이나가 서방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는지 알 수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친러정권이 무너지자마자 러시아는 그 해 즉시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동부지역 분리독립 운동을 조직하고 지원했다. 조지아 사태와 완전히 동일한 대응이고 이런 대응이 나오는 데 단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여기에도 한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문제는 이 사건 이후에도 우크라이나는 더욱 집요하게 나토 가입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걸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결국 2020년 6월에 우크라이나는 나토와 확대된 기회의 파트너(EOP)가 된다. 코미디언 출신 현재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말했듯, 이는 나토의 가입 대기실에 앉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일이 있고 2021년 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이 넘는 병력을 동원해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했다. 그리고 철수하지 않고 한참 동안 무력 시위를 했다. 

무력시위 후 봄이 와서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의 땅이 녹아 군사작전이 곤란해지는 라스푸티차가 발생하는 시기에 병력을 일시 철수했다. 그리고 겨울이 돌아와서 땅이 다시 단단해 지자 더 많은 병력과 본격적인 준비를 갖추고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한 것이 세 달 전까지의 상황이다. 푸틴이 뭔가 각오를 하지 않고 단순히 무력시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국가에는 피를 흘려서라도 지켜야 하는 사활적 이익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간과한 것이고 지금까지 러시아의 행동과 의지를 얕잡아본 것이다.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임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1990년 걸프전쟁이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를 움직여 명분을 쌓고, 여러 나라를 동원해 연합군을 조직했으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압도적인 전쟁 수행 능력과 기술력을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보여줬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춰 중동의 질서를 재편하는 일에 유엔과 동맹국을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 주었다. 

30년 뒤 지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지금의 미국 영향력이 무너지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적대적인 지역 강국이 미국의 의도와 국익에 반하여 독립국가를 전면적으로 침공해도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수치스럽게 드러났다. 

단순히 미국의 힘이 한계가 있다는 걸 수치스럽다고 하는 게 아니다. 유럽의 주요 나토 가입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밀어붙인 대-러시아 포위망에 말(馬)로 사용한 나라가 작살이 나는데도 입으로만 싸우는 미국의 상황이 수치스러운 것이다. 

만약 한국이 북한에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만약 북한이 서해 5도를 점령한다면 한국은 강력한 경제 제제를 할 것이다." 이 말은 북한에 서해 5도를 점령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대의 군사적 모험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우리의 전략적 모호성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행동이 군사적으로 좌절되거나 돌이킬 수 없는 물리적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없다고 확인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두 달 동안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에 대해 돌이킬 수 없는 "경제적" 대가를 치룰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수십 번 들었다. 군사적 개입 가능성을 강하게 부정하는 말도 수십 번 들었다. 미국과 서방은 차라리 입을 닫고 있는 것이 우크라이나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냉전이 종식되었을 때 미국이 자만심을 억누르고 소련에 했던 동진 금지 약속을 지키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아니 최소한 러시아의 사활적 이익을 존중하는 척이라도 했다면, 하다 못해 냉전 종식 후 힘빠진 러시아를 그렇게 노골적으로 적대시 하지만 않았어도 우크라이나는 이렇게 전면적인 침공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든 일이 일어난 뒤에도 미국과 영국이(군사동맹에 따라 궁극적으로 나토가) 우크라이나 핵 포기의 대가로 안전을 보장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내용의 비슷한 것을 혹시라도 지킬 의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전략적 모호성만 유지했다면 러시아가 이렇게 마음 놓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결과를 불러온 30년 동안의 미국과 서방의 지정학적 게임은 지지부진하고, 목적이 불분명하며, 자기파괴적이고, 수치스럽다. 


미국 이전에 전 세계적 패권을 행사한 나라가 영국이다. 세계 최초의 초강대국 영국도 이권이 있는 모든 지역에 개입할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국은 압도적인 힘이 아니라 정교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패권을 유지했다. 이를 위해 여러번 유럽 대륙에 개입하여 유럽을 분열된 상태로 유지했다. 미국과는 우호관계를 유지해 대서양을 안정시켰다. 식민지의 자원과 네트워크를 시의적절하게 활용하고 필요한 경우 일본 같은 지역강국과 동맹도 맺었다.

영국은 이런 균형을 유지하며 나폴레옹을 옥사(獄死)시키고,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했으며, 독일의 부상을 두 번이나 막았다. 

미국은 안타깝게도 태생부터 이런 정교한 힘의 균형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경우에는 불필요하게 힘을  한계를 넘어 과도하게 투사하다가(overstretching) 어느 순간에는 북미 대륙에 틀어 밖혀 고립주의를 택하는 것을 반복한다. 현실적이지 않는 숙명론적 역할론에 사로잡히기도 일쑤이다. 이런 한계는 쓸데 없는 위기를 일으키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기회를 차버리기도 한다. 

위에 말했듯 소련 해체 이후 무분별하게 나토를 확장한 것은 자신의 한계를 망각한 과도한 힘의 투사이다. 반대로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는 유서 깊은 미국 고립주의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인권이라는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대다 제발로 찾아온 미얀마를 중국 쪽으로 내몬 것은 실리적으로 힘의 균형을 이용하지 못한 것이다. 덕분에 중국은 인도양에 직접 진출할 수 있는 출구를 확보했다. 환경 보호, 기후변화 도그마에 갇혀 막대한 셰일가스를 전략적으로 유리하게 사용하지도 못하고 있다.

미국이 음양으로 지원한 것이 확실한 색깔혁명은 그나마 세속적이던 독재정부를 반미 성향의 이슬람 원리주의자에게 넘겨주거나 시리아에서와 같이 완전한 무정부상태로 만들어 대량의 난민만 양산했다. 게다가 중동의 친미적 왕정국가마저 각자도생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패권에는 섬세함과 일관성이 부족하다. 이런 미숙함은 사막의 폭풍 작전을 이끌었던 1990년의 미국에게는 몰라도 여러 곳에서 다양한 도전을 받고 있는 지금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지금까지 상황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앞으로 이 사건이 미칠 파장은 단순하지 않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 "쿵"하고 무너지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번 사건의 군사적, 경제적, 사회적 파장을 단기와 장기에 따라 예상해 보려고 한다.



위 글과 다른 글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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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있게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