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감염병 1 이슬람 제국 발흥의 배후 페스트

지난달

역사를 바꾼 감염병 1 이슬람 제국 발흥의 배후 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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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수많은 감염병 유행이 있어왔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수립된 이후 팬데믹이 선언된 것은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세 번째야. 1968년 홍콩에서 발병한 홍콩 독감(바이러스 H3N2)은 강력한 전염력을 보이며 무려 1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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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팬데믹 선언은 2009년 멕시코에서 처음 발생한 신종플루(바이러스 H1N1) 때였어. 그리고 세 번째가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다. 두뇌라도 가진 듯 인간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변이와 가공할 전염력을 지닌 코로나19는 그 이전과 이후의 세상을 갈라놓는다고 할 만큼 현재 인류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영국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미래에 대한 최선의 예언자는 과거다.” 즉 오늘 일어나는 일은 과거에도 비슷하게 일어났으며, 역사를 더듬어보면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갈피를 잡을 수 있다는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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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은 그 어떤 자연재해보다 참혹하게 인류에게 타격을 입혔지. 역사 속의 쟁쟁한 감염병 가운데 첫손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페스트를 들어야 할 것 같구나. 이유는 병의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 페스트의 어원인 라틴어 ‘Pestis’는 본디 돌림병을 뜻하는 보통명사였어. 이 보통명사가 14세기 유럽을 초토화시킨 페스트 대유행으로 사람들의 뇌리 깊숙이 틀어박히면서 특정한 병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전환됐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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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4세기 유럽을 휩쓴 페스트를 주로 기억하지만 현대 과학은 그 이전에도 페스트의 대유행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어. 2014년 진화유전학자인 헨드릭 포이너 교수(캐나다 맥마스터 대학)를 비롯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학술지 〈랜싯 감염병〉에 주목할 만한 논문을 실었다. 6~7세기 소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동·서유럽을 강타하며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불가사의한 감염병,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의 병원균 유전자를 해독했다는 내용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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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은 독일 바바리아에서 당시 역병으로 죽어서 묻힌 유골 2구를 발굴했고 “최첨단 게놈 해독 기술을 이용해 1500년 된 이 시료에서 페스트균의 게놈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어.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역시 페스트균이 원인이었다는 게 밝혀진 거야(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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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니아누스는 동로마제국의 전성기를 누린 황제야. 그가 동로마제국을 다스린 지 10년째 되던 536년, 세계는 전대미문의 재앙에 휩싸였어. 화산의 폭발 또는 소행성 충돌의 결과로 보이는 거대한 먼지구름이 하늘을 뒤덮으면서 가공할 기후변화가 들이닥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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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급락해 세계 곳곳에서 가뭄, 흉작, 기근이 확산되고 중국에선 한여름에 눈이 내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당시 동로마제국의 역사가 프로코피우스는 ‘태양이 1년 내내 달처럼 밝지 않은 빛을 냈다’고 기록했다(〈한겨레〉 2018년 11월20일).” 그리고 ‘해가 빛을 내지 않는’ 5년을 보낸 후인 541년,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즉 페스트는 이집트에서 발병해 곡물 수송선을 타고 동로마제국으로 들어왔어. 그리고 교역로를 타고 유럽으로 퍼져 나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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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프로코피우스의 기록이야. “학식이 높은 이들이라면 하늘이 내리는 그 어떤 재앙에 대해서든 적절한 설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재난에 대해서만은 신이 직접 주관했다는 말 외에 그 어떤 말이나 생각으로도 설명을 찾을 수 없다.”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하루에 무려 1만명이 쓰러져 숨을 거뒀다고 해. 도시 인구의 40%가 사라진 참사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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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은 당시 절정기를 맞고 있던 동로마제국에 돌이킬 수 없는 인구 감소를 가져왔고 동로마제국의 영향 아래 있던 지중해 세계는 물론, 유럽 대륙 전체와 당시로서는 머나먼 서쪽의 섬 아이슬란드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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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유스티니아누스 역시 역병에 걸려 죽다 살아났지만 국민들의 사정을 돌보아주지 않고 악착같이 세금을 뜯어냈단다. “황제는 파산한 자유민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는 개인별로 매긴 세금뿐 아니라 사망한 이웃이 책임져야 할 세금까지 납부할 것을 요구했다(프로코피우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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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542년 유스티니아누스는 오늘날의 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칙령을 발표한다. 페스트로 인해 사망자가 폭증하자 상속 관련 소송이 줄을 이었고 그를 해결하려는 목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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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속인의 유언으로 법정상속인이 상속에서 제외되는 경우 그 유언은 무효가 되고, 법정상속인이 상속인으로 지정되었어도 피상속인으로부터 받은 재산이 의무분에 미달하면 그 미달액의 보충을 청구할 수 있다.” 즉, 죽은 사람이 한 유언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상속받을 사람의 법적 권리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상속유류분(相續遺留分)의 원형에 해당하는 법률이었지. 그렇게 상속자의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세금을 받아낼 수 있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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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니아누스 이후 동로마제국은 이전의 국세를 회복하지 못했고 동로마제국을 허물어버리다시피 한 페스트는 공평(?)하게도 동로마제국의 숙적 사산조 페르시아에도 상륙했어. 메소포타미아 인구 네 명 중 한 명은 사라지고 페르시아의 샤한샤(왕 중 왕이라는 뜻의 칭호) 카바드 2세의 목숨까지 앗아갔다(슈라와이흐 역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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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거대 제국의 몰락과 시련이 어떤 민족에게는 ‘신의 축복’으로 작용하기도 했어. 바로 아라비아 사람들이었지. 유일신 알라를 섬기는 새로운 종교로 무장한 아랍 무슬림들은 페스트의 전염원인 곰쥐가 살기 힘든 사막에서 생활했고, 쥐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대도시 생활과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페스트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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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역병으로 기진맥진한 동로마제국과 페르시아를 압박하며 영토 확장에 나섰다. 아라비아반도를 벗어난 지 기십 년도 안 되어, 그들은 스페인에서 당나라 서쪽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었지. “이슬람권이 그토록 신속하게 많은 나라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역병이 이미 그 나라들을 물리적, 심리적, 문화적으로 두들겨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아노 카렌, 〈전염병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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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든 위기는 닥친다. 그런데 그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조건과 의지에 따라 위기는 위기로 남을 수도, 기회로 탈바꿈할 수도 있단다. 탐욕을 꺾지 않은 유스티니아누스는 으레 하던 대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등골을 빼려다가 거의 복원했던 대제국을 놓쳐버렸고, 아랍 사람들은 세계 역사의 한 축이 될 무슬림의 초승달 깃발을 광대한 땅에 내거는 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1500년쯤 뒤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우리가 곰곰 곱씹어봐야 할 지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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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내용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