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경기 최고의 골키퍼

지난달

최악의 경기, 최고의 골키퍼, 그리고 격세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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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팀 11명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포지션은 없습니다. 하지만 역할을 대신할 수 없는 포지션은 하나죠. 골키퍼입니다. 센터포드도 급하면 수비수 노릇을 해야 하고 수비수도 공격에 나설 수도 있지만 골키퍼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 한 명 골키퍼는 골키퍼여야 하고 골키퍼일 수 밖에 없고 골키퍼가 이니면 안됩니다. 이렇듯 골키퍼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포지션이며, 골게터만큼이나 중요한 자리이면서도 영광은 골게터의 절반, 부담은 두 배를 가져가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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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골키퍼의 역사를 지금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세계 대회 최초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룬 2019 청소년 축구팀 이광연은 골키퍼 빛광연으로,2018년 월드컵에서 신들린 선방을 펼친 조현우는 ‘God’현우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대표팀의 ‘터줏대감’ 자리에 오르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한국 골대의 마지막 터주대감이라면 역시 이운재 선수겠죠. 2002 월드컵의 영웅이자 1994년 대학생 때부터 10년이 넘게 한국 골문을 지켰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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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재 이전의 터주대감은 누구냐. 여러 이름들이 떠오르긴 합니다. 이운재와 쌍벽을 이룬 꽁지머리 김병지, 1983년 청소년 축구대회 4강 신화 이후 좋은 활약을 보였던 김풍주, 터프한 인상으로 한국 골문을 잘 지켰던 최인영.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잘 나가다가 우즈벡의 평범한 롱슛 하나를 알까기하면서 두고두고 한을 곱씹었던 차상광,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3경기 모두 출전했지만 결정적인 실수를 범해 ‘공공의 적’ 수준으로 욕을 먹었던 오연교 골키퍼 등등.... 하지만 이운재 이전의 최장수 골문 터주대감이라면 조병득 골키퍼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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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축구팀 골키퍼로서 승부차기나 페널티킥을 맞이하면 어김없이 간절한 기도 후 두 팔을 벌려 상대의 킥을 기다렸던 그는 1980년 아시안컵에서 사상 최초로 북한을 꺾을 때,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딸 때,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했을 때 한국 골문을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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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킥이 좋아서 그가 찬 공이 그대로 상대방 골대로 빨려 들어간 적도 있었죠. 그의 데뷔 무대라 할 80년 아시안컵 북한전에서 글자 그대로 몸을 상대방 발 앞에 내던지며 필사적으로 막아서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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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가 조병득의 시대였다면 60년대말 7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대의 터주대감은 단연 이세연이었습니다. 그는 날렵한 수비와 더불어 거친(?) 플레이로 유명했습니다. 특히 그의 자랑 중 하나는 자신이 출전했던 17번쯤 되는 한일전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것이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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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연이 활약하던 시기는 일본 축구의 전성기입니다. 가마모도를 앞세운 일본 축구팀이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는 개가를 한국 사람들은 배를 움켜쥐고 지켜봐야 했죠. 그런데 이 가마모도가 한국전에서는 맥을 쓰지 못했습니다. 헤딩하겠다고 솟구쳤다가 이세연의 펀칭을 빙자한 ‘펀치’ 맛을 몇 번 봤기 때문입니다. 펀칭하는 척 하면서 가마모도의 머리통을 퍽! 갈겼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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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세연에 앞선 터주대감은 함흥철입니다. 한국 대표팀 감독을 오래 지내신 분이고 위에 말한 조병득을 훈련시킬 때 배탈이 나서 설사를 주룩주룩 하는 조병득을 붙들고 끝까지 훈련을 시켰던 독한 골키퍼 코치이기도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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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골문을 지킬 때 한국은 1956년과 1960년 아시안컵 우승을 두 번 차지합니다. 그로부터 60년이 넘도록 한국은 아시안컵에서는 우승해 본 적이 없죠. 이분 역시 여러 시련을 겪지만 그 중 최악은 1964년 동경 올림픽이었을 겁니다. 동경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은 통일아랍, 당시 이집트 팀에게 10대 0의 참극을 겪는데 그때 골키퍼셨거든요. 장소가 일본이다 보니 재일교포가 2천명이나 몰려와 꽹과리를 치며 응원을 했건만 아주 망신을 제대로 당한 경기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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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기 열 골을 먹긴 했지만 함흥철은 그 선배 터주대감에 비하면 운이 좋은 편이었지요. 1948년 런던 올림픽부터 한국 골문을 지키고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도 출전했던 홍덕영은 올림픽과 월드컵 네 경기에서 무려 서른 세 골을 먹는 동네축구같은 악몽을 경험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하고도 홍덕영 골키퍼는 ‘천재적 골키퍼’라는 칭찬을 받습니다. 대체 어떤 상황이었길래. 그리고 1964년 6월 17일 헝가리에게 9대 0으로 깨질 때 한국은 어떤 팀이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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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확인해 보셔요 . "최악의 경기 최고의 골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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