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어느 밤

4개월 전

5월에는 내 온갖 감각이 일어난다. 몸은 봄에 반응하고, 5월의 기억, 5월의 상처, 5월의 행복 등을 재생하며 내 파편화 된 정신은 제각각의 감정으로 날뛴다. 5월의 무엇이라는게, 어떤 회의론자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 지 모른다. 4월 30일과 6월 1일을 5월의 어느 날과 분리해서 구분하기 어렵듯, 단지 인간이 임의로 나눈 체계에 불과하다고 할 지 모른다. 하지만 김춘수의 꽃에서, 어린왕자에서처럼 무언가를 다른 모든 것과 구분하는 것을 시작으로 무언가는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나는 본래 몸이 아파서 정신도 따라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몸이 아프면 정신도 아프기 마련이라고. 그리고 그게 수년 전까지는 사실이기도 했다. 이제는 달라졌다. 이제는 몸이 아프지 않다. 대신 마음이 아프다. 몸이 아파서 덩달아 아플 때보다 배는 아프다. 행복하기도 하다. 내 몸이 왜 더 이상 아프지 않은지 알기에, 내 몸이 아프지 않고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감사하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5월은 내가 모자라다는 느낌을 준다. 내가 모자란 바람에, 몸은 탈출할 수 있었어도 마음은 새로운 고통에 빠져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5월의 여운에서 나는 아직 벗어나지 못 했다. 아직까지 해야 할 일을 덜 마쳤는데 까탈스러워지고만 있다. 컨디션이 조금만 나빠도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내가 모자라다는 생각은, 최상의 상태에서도 모자란 내가, 조금이라도 상태가 나쁜 상황에서 무얼 이룰 수 있겠냐는 강박으로 다가온다. 그 생각에 괴로웠지만 견디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다짐을 했었다. 마치기 전까지는 어디도 가지 않기로,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그리고 그 다짐을 오래토록 지켜내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이렇게 앉아 있는 이유는, 마친다는 감각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마지막 마침표를 거칠게 내려찍고 '끝났다!'하는 환호성을 마음 속으로 질러내는 그 감각이 그리웠다. 이제 마무리 단계인 내 일을 마무리 할 기운을 얻기 위해 그 기쁨을 상기하고, 떴는지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가늘게 뜬 눈을 꿈뻑이며 앉아서 잠시 쓴 글을 마치는 것도 즐거운데, 그렇게 긴 세월동안 마침표를 찍지 못 하던 일을 마칠 때의 기쁨은 어떨까를 상상해보고 싶었다. 거대한 기쁨의 전조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형편 없는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마친다는 감각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원래도 일기를 썩 잘 쓰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쓰게 되니 참 어렵다. 마음에 있는 걸 다 뱉어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마음 속에 있는 건 하나도 뱉어내지 못 한 것 같다. 나도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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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서 저는 김리님 일기가 재밌어요. 많이 써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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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도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께는 무언가 얻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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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