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분화

3년 전

'감정의 씨앗들은 본능적으로 양육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정은 그렇게 양육되어야 합니다. 핵이 양육됨으로 인해 그 핵에 달라붙어 있던 생각도, 몸도, 행동도 분화되고 자라납니다.'

꽤 오랫동안 인지적 접근에 익숙했었습니다. 피상적 이해였고 제 스타일에 잘 맞았습니다. 왜곡된 인지를 발견하고 그것이 교정될 때 드러나는 모습을 보며 환호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쉽지 않을 때 그 오류의 뿌리가 되는 스키마 (반복적으로 삶의 어려움을 겪도록 하는 무의식적인 신념, 삶의 덫)를 함께 찾아가는 작업도 의미 깊었습니다. 어려운 길이었지만 함께 인내하며 결실을 함께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진료실에서건 제 개인에게건 감정의 무게가 점점 더 크게 느껴집니다. 감정은 단지 인지의 결과일 수 밖에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오히려 인지보다 감정이 먼저인 경우를 많이 보기도 합니다.

더 문제는 그 감정이 기존의 왜곡된 인지를 더욱 단단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경우의 감정은 대개 분화되거나 성장하지 못 하고 미숙한 채로 남아있던 것이란 심증입니다.

인류의 인지 진화에서 감정만큼 동력일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개인 역시 인지 발달에서 그 동인은 감정이 아니었을까요? 감정은 인간, 혹은 인류를 움직이도록 하는 그만큼 정교한 장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미숙했던 감정의 씨앗들이 어떤 연유에서건 분화하고 성장하지 못 했을 때는 문제입니다. 불행의 씨앗인 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 안의 그 미숙한 감정의 씨앗들이 자기를 키워달라며 열망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분화하고 성장하지 못 한 감정들은 아직은 여지가 무궁한 잠재적 상태인 씨앗과 닮았습니다. 다만 아직은 튼튼치가 못 합니다. 쉽게 말라버리거나 썩어버릴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잘만 가꾸면 참으로 다채롭고 풍성해진다는 것이죠.

그것들은 씨앗들처럼 본능적으로 그렇게 잘 커나가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적 인격은 컴플렉스라고도 합니다. 열등감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심적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자율성을 가진 일련의 반응 사슬입니다. 이 반응 사슬은 일단 시동이 걸리면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시작합니다. 앞의 반응이 다음 반응의 연료가 됩니다. 그것이 감정입니다. 감정은 나로 하여금 반복적으로 그것에 대한 신뢰를 강요합니다. 따라서 믿던대로 곧이 곧대로 믿으면 언제나 반응은 단선적입니다.

감정이 다채롭고 풍성해진다면, 그러니까 연료가 그렇게 다종다양해지면 기존의 단선적이고 폭발적인 사슬이 아니고 보다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새로운 사슬들이 활성화되면서 그간은 구경조차 해보지 못 한 것들이 드러납니다. 경이롭습니다.

단선적이고 폭발적인 사슬의 경험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합니다. 순식간에 벌어지긴 하지만 조금만 눈여겨보면 사슬처럼 이어지고 그 이어지는 마디마다 감정이란 연료가 부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붓는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표적으로 분노였다면 폭발해서 연기처럼 사라지거나 찍어눌러 감춰지고 썩을대로 썩습니다. 불안이라면 앞뒤 안 가리고 일단 도망부터 치고 그러고 나면 돌이켜 생각하는 것조차 몸서리쳐집니다. 우울이라면 자기연민의 늪에 빠져 땅을 파고 또 팝니다. 쉽게 말해서 아무 생각이 없어집니다. 머물고 들여다볼 것들은 사라졌거나 묻혀버렸습니다. 혹은 그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늪의 진실이 보일 수가 없습니다.

비록 아직은 미숙하지만 그 감정의 씨앗들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미숙해도 내가 느낀 감정입니다. 현재로선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드러내긴 부끄러워도 책망을 해서 될 일은 아닙니다. 감정은 그렇게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옳기 때문에가 아닙니다.

미숙하다 보니 부드럽게 다가오기 보다는 강타하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나를 강타한 감정을 그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무시하자고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닙니다. 충분히 그럴만 했다고 인정해 주되 다만 지금껏 믿어왔던 그대로 믿을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점만 기억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사실 우리는 익숙함 탓에 아무런 의심 없이 혹은 그 타격에 압도되서 차이를 보질 못 합니다.

반응의 사슬 마디마다 어떤 감정들이 부어지는지 가만히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그간 믿고있던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봐야겠습니다. 믿고있던 것들은 과거의 어떤 상황에서 느낀 것이지 지금은 아니니까요. 양도 다를 뿐더러 질적으로도 차이가 있습니다. 매번 똑같은 감정일 리가 없습니다.

그 차이가 보인다는 것은 이미 그 감정이 분화했다는 반증입니다. 그럴 때 신기하게도 단선적이던 반응은 멈추고 새로운 사슬이 활성화됩니다. 전혀 새로운 경험입니다. 이 새로운 경험은 이 작업에 또 힘을 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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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분화, 곱씹어보고픈 화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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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일어나는대로, 흘러가는대로, 무위로 지켜보고 싶습니다. 작은 차이들을 있는대로 느끼면서.

형님, 새로운 경험으로 힘이 나나 보네요.
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
이런 날에는 운동도 밤에 조금만 하시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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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의 소통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banguri 님의 말씀처럼.

정말 덥죠. 님께서도 건강 살피시구요.

감정적이다 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 부터 되게 예민하거나 부정적인 단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I am different from all the other players who think that their career is over at my age, but I want to show the others that I am different. It is very emotional for me at the club now because I am not 23, I am 33.

오늘 아침에 날두형 팬으로서 기사를 읽다가 이 부분을 봤는데 님의 글에서 이 부분이 뜬금(?) 없이 떠올랐어요.

내용을 보면 매우 감정적인 상황이라고 말하는데요. 다분히 감정적이라는 것이 나쁜게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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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감정적이란 단어가 그런 의미로 쓰이고 있었네요. 아마도 이성과 감정으로 이분하면서 감정의 가치가 이성만 못 하다고 여긴 때문인 것도 같군요.

날두형 말인가 봐요. 헌데 해석이...까막눈이라...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 감정의 연금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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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seoinseock님께서 제게 감을 주십니다.

인지보다 감정이 훨씬 파워풀하고, 말씀하신대로 감정발달이 인지발달을 견인하는 것도 같아요. 그래서 감정이 분화되는만큼 삶을 좀 더 포괄적인 견지에서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고요.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현재 상황에 무조건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알아차리고, 그럼으로써 감정-반응의 새로운 사슬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인간을 보다 고차원적으로 만들고 인간에게 더 많은 자유를 안겨주는 게 분명해 보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리스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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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전공이신 줄은 알고 있지만 글을 읽을 때마다
이해의 수준이 엄청나다는 생각을 매번 합니다. 많이 젊으신 듯 한데.

에공 전 그맘 때 왜 그리 철이 없었는지...

감사하구요. 더 많은 소통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