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

3년 전

우리들의 의식은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미지의 깊은 곳에서 솟아나온 것이다. 그 의식은 어린이일 때 점차적으로 깨어나고, 매일 아침 무의식 상태의 깊은 잠으로부터 깨어난다. 의식은 매일 무의식의 모성적인 근원으로부터 태어나는 어린아이 같다... 중략... 그러므로 태양과 물에 대한 명상은 정신의 근원, 바로 무의식 그 자체로 하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융 기본저작집 9, 인간과 문화, p216~217)

며칠 전, 일찍 잠이 깨선 무거운 몸을 끌고 홀린 듯 숙소를 나섰습니다. 또 나도 모르게 바다를 뚫고 떠오르는 태양을 찍었습니다. 여행 중에도 여간해선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 저인데도요.

마음 구석에선 '석양이 더 끌리는데...' 하는 생각도 어김 없이 올라왔구요.

잠에서 깬, 그러니까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이행하자마자 다시 무의식으로의 하강. 그보다는 낮동안의 의식에서 서서히 석양으로 가는 때, 그렇게 서서히 무의식으로 잠기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서 일까요.

저자의 말처럼 태양과 물은 정말 정신의 근원이란 생각입니다. 그저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 경우는 저를 보내준 무의식보다는 제가 갈 무의식이 끌립니다. 제가 왔던 그곳보다는 제가 갈 곳이 더 끌립니다. 막연한 기대가 있어서일 수도 있구요. 지나온 길에 대한 실망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더 문제는 이미 본 것에는 매번 실망하고 또 아직 보지 못 한 것에 막연한 기대를 품는 제 성정일 수도 있습니다. 해서 비록 그곳엔 생각지도 못 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가보고야 마는, 그리곤 또 실망하고 바로 새로운 기대를 품는, 같은 것들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저를 보내준 무의식은 기억하지 못 하는 기억 속의 고향입니다. 제가 가고자 하는 곳도 그 곳일 겁니다. 어쩌면 잊혀졌던 기억들이 되살아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지 잊혀졌던 기억만 살아날 것으로 생각되진 않습니다. 의식과 함께 했던 여정 때문입니다. 한 때는 적으로, 또 한 때는 동반자로 동고동락한 의식과의 그 기억들이 다시 찾은 고향을 새롭게 할 것이란 기대 때문입니다.

명상은 그래서 그 새로운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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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멍하게 가만 있으면 명상이 되려나요?
힘들고 피곤해서 가만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아차 내가 머하지 라는 생각에 깨어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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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에 빠진 것 같은 순간, 깨어나기 직전 순간, 그리고 분명 깨어났는데 다소 의식과는 다른 순간, 그 순간에 잠깐이나마 삼매는 아니었나 싶은 때가 있지요.

저도 어제 꿈을 꾸다가 무의식의 깊은 심연에 끌렸습니다. 처음엔 어떤 인물같았는데, 검은 심연으로 바뀌더군요. 그 검은 색에 끌림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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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꿈을 기대하며 자는 날이 많습니다. 제가 미쳐 의식하지 못 하는, 무의식이 하는 일을 알고싶어서요. 심연으로 끌려가 보고 싶군요.

명상,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
제목이 이미 명상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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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요. 전 그럼 칭찬처럼 듣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서구의 철학자들이 불교에 심취한 경우가 많다는 건 많이 들었지만 심리 연구의 대가 융이 명상을 했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어쩐지 논리적으로 '분류'하려는 시도와 명상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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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기론 융은 병리에 대한 분류보다는 내담자 개인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했던 것같고 심층심리의 이해를 위해 꿈과 적극적 명상을 많이 활용했던 것 같습니다.

명상을 하다보면
말씀대로
새로운 기억들이 많이 떠오르더라고요.

근데 융도 직접 명상을 한 건가요?

·

넵. 융은 당신 말로 하면 적극적 명상을 했다고 합니다. 첨엔 명상인 줄도 모르고 하다가 한 번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만다라를 명상 중에 만나고 평정을 찾았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본인이 만난 것이 만다라인 줄도 나중에 알았다고 하구요.

여기의 인용문도 사실 '동양적 명상의 심리학에 관하여'란 소제목의 논문에서 인용한 것이구요. 다음 논문은 '역경 서문'인데 본인이 쓴 서문이 있는 역경의 번역본이 나오기 전에 독학으로 역경을 공부했더군요. 대단하단 말 밖에 안 나오는 분입니다.

오랫만에 새로운 기억을 찾아 떠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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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꾸준하기가 참 어려워요. 그래도 생각날 때마다.

명상,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
제목이 이미 명상이네요 ^^

이 마을에서 드물게 명상을 이야기해주셨네요.
태양의 솟음도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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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fulness 태그에선 드믈지 않게 보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