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당이 다른 진보정당의 영역을 침범한다?

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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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식 _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간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다. 지역정당도 마찬가지다.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림이 명확하게 그려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걸 하자고? 당연히 의문과 회의와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엄습한다. 전국적 통합정당이 불가능하다고? 전국적 통합정당은 불가능하다면서 지역정당은 가능하다고? 도대체 뭘 근거로? 불안과 회의는 당연하다. 하지만 넘어서야 한다. 넘어서려면 몇 가지 질문에 답변이 필요하다.

“지역정당이 기존 진보정당의 대중적 기반을 잠식하지 않을까?”

지역정당운동을 제안할 때 가장 먼저 받는 질문이 이거다. 예컨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기존 전국정당형 진보정당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이 지역에 거의 같은 기조의 이념과 정책지향을 가진 지역정당이 창당한다. 그렇게 되면 연대해야 할 정치세력 간 경쟁이 일어난다. 같은 영역 안에서 같은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분열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좌파의 대단결을 요구하는 시대적 정신에 반하는 일이 아닌가?

전국정당의 활동이 가지는 효과를 살펴보자. 최근 빈민들의 연이은 극단적 선택으로 불거진 당면 사회적 문제는 복지의 후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기존 전국정당의 중앙조직은 사안을 전국화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가의 복지제도를 더 강하게 만들도록 추동한다. 한편 지역조직은 개별적 사건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응하면서 지역의 직접적인 관심과 해결을 선도한다. 가장 교과서적인 전국정당의 활동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효과적인 역할분담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국정당의 중앙당과 지역조직의 관점과 이해가 다를 때는 어떻게 할까? 어떤 사안들은 중앙당의 방침과 지역의 현안이 충돌하기도 한다. 이 경우 중앙당의 방침과 배치되는 사안에서 지역조직의 활동은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된다. 이때 조금은 다른 방향에서 지역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치조직의 역할이 부각된다. 바로 이 역할을 지역정당이 수행할 수 있다.

정당 내부에서 발생하는 중앙과 지역의 갈등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고 하자. 보수 양당이 득세하는 지역에서 진보정당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진보정당의 지역조직을 만들기 곤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간난신고를 거쳐 진보정당의 지역조직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지만, 지역 사안에 고유한 진보적 대응을 내세운 지역 독자의 정당을 조직하는 것이 보다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진보적 지역정당과 진보적 전국정당은 적대적 경쟁대상으로만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라 시너지를 유발할 수 있는 연대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전국정당인 진보정당과 지역정당의 공조가 더 많은 효과를 유발할 가능성은 보수양당의 지역할거구도에서 나온다. 전국정당인 보수양당은 지역문제에 있어서는 개별 의원의 독자적 역량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이 과정에서 중앙과 지역의 불협화음이 다수 발생한다. 보수정당 내부에서 발생하는 이 부조화의 틈을 파고드는 정치조직은 다양할수록 좋다. 전국적 진보정당과 지역정당이 연대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투쟁의 단일대오가 오로지 하나의 조직체로만 가능하다는 환상만 벗어던지면 된다.

또 다른 경우도 상정해 보자. 현재 진보정당의 조직이 없거나 영향력이 미미한 지역이나 현장에서 노동정치를 고민하는 주체들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기존 전국정당인 진보정당의 당협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존 진보정당의 지역조직 또는 현장조직을 만드는 것이 부담될 수도 있고, 또는 주체들 사이에서 기존 정치 방향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해당 지역 또는 조직에 적절한 지역정당을 만드는 것이 용이하고 효율적일 수 있다. 또한 지역의 유관 조직이나 단체들이 기존 정당의 영향 아래 있는 걸 주저할 때 지역정당은 이들을 중심주체로 하는 조직화가 가능하다.

이렇게 건설된 지역정당은 주요한 의제에 따라 전국정당과 공조할 수 있다. 또한 지역 차원의 문제를 전국정당과 연대하여 전국적 사안으로 승화시키기도 쉽다. 상호 역할분담을 통해 확장성 있는 정치활동을 함으로써 서로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다. 주요 선거 시기에는 선거연합을 구성할 수도 있다. 각자의 지역 및 현장에서 상호의 선거운동도 가능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간의 신뢰가 확보되고 공조하는 사안이 늘어가면 더 심화된 조직적 결합도 전망해볼 수 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다. 칼럼 7편에서 다룬 이중당적 제한 같은 규제가 지역정당과 전국정당의 연대연합을 가로막는 문제 중 하나다. 앞서 살핀 것처럼 이중당적을 금지하는 나라는 꽤 많다. 구소련연방에 속하던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이라크, 캄보디아 같은 나라들이다. 그런데 이 나라들이 왜 이렇게 이중당적을 금지하는 것일까?

구소련연방의 각국은 러시아의 팽창주의를 경계하며, 특히 자국 내 친 러시아세력이 정치적 프락션을 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이라크와 캄보디아 역시 마찬가지다. 이라크는 반정부세력이, 캄보디아는 베트남이나 중국을 위시한 주변부 세력의 영향이 정치적으로 준동하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이들 특수한 국가들을 제외하고, 특히 정치적으로 선진국이라고 평가되는 나라 중 정당법과 같은 정치관계법에 이중당적 금지규정을 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활동의 자유를 국가가 관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전국정당의 당원인 동시에 지역정당의 당원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정당의 당원은 관심이 있는 전국사안에 부응하는 전국정당의 당원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실 본인 의사에 따라서는 전국정당 간에 이중당적을 가져도 무방하다.

제도개선과 지역정당의 건설은 앞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과제다. 당장 어떤 사례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과연 가능할지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아직 이런 경험이 없기에 주저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방향이 현재 노정 중인 진보정치/노동정치의 답보상태를 해소할 하나의 방편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운동은 그러한 인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전국정당으로서 진보정당과 영역이 겹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 말고도 지역정당을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는 또 있다. 또 어떤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지는 다음에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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