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감정] 07 나의 무기력

작년

이유가 있어 무기력한 건 아니다.


어제부터 무기력한 기분이 나를 짓눌렀다. 보통, 우울한 감정과 무기력한 감정은 실과 반짇고리처럼 함께 다닌다. 그런데 최근에는 부정적이거나 우울한 감정이 없는데도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어쩌면 우울해져 봤자 소용이 없다 생각해 우울해지지 말자라고 다짐을 한 후 우울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을 소거해버려서 무기력함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지난주 토요일 처음으로 집단 상담에 참여했다. 4시간가량 15명쯤 되는 사람들과 어색하면서도 친밀한 이야기를 제한적으로 얕고도 깊게 공유하는 이상한 경험이었다. 전반적으로는 좋았지만 내게 잘 맞진 않았다. 다시 참여할 마음은 아직 없다. 나는 완전히 지쳐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바람이 제법 차갑단 걸 집에 도착해서야 느꼈다.

저녁식사로 양배추, 미리 잘라놓은 파인애플, 요거트를 먹었다. 셋 중 무엇이 문제였을까?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요거트? 덜덜 떨다 들어온 주제 겁도 없이 온통 차가운 식단이 문제였을까? 빨래를 널고 한 시간쯤 지나자 머리가 바늘로 찌르듯이 아파왔다. 누워있는데도 통증이 낫질 않는다. 결국 참다 참다 변기를 잡고 구토를 했다. 30분 간격으로 3-4회쯤 했다. 여전히 머리도 아프고 배도 아팠다. 다 비워낸 것 같은데 아닌가 보다. 콧물도 나왔다. 따뜻한 침상에 누워 요새 들어 유독 자주 아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일요일은 친척 오빠의 결혼식이었다. 가기로 약속했었다. 몸은 회복되었지만 도저히 가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화장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모르는 사람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코트를 입고 밖에 나갔다가 감기에 걸릴 게 분명했다.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낮잠을 자다가 부모님의 불호령이 떨어진 묘한 꿈을 꾸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 엄마에게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남기니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알았다고 몸조리 잘하라고 했다.

아프다고 하니 남자친구가 집으로 왔다. 정말이지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잠만 잤다. 오전까진 아파서 그랬는데 오후부터는 아프지 않았다. 그냥 무력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기력, 기력이 없다. 의욕이 없다.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전혀 없다. 내 미래도 취미도 당장의 쾌락도 대화까지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스팀잇도 귀찮고 책도 읽기 싫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싫지만 막상 나가는 것도 내키지 않는 답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

무기력한 나는 두 가지 상태로 나뉜다. 사소한 모든 게 두려워지거나 중대한 일도 한 없이 가볍다 못해 어떤 의미도 없이 느껴진다. 며칠 전까지는 모든 게 다 귀찮았다. 상견례 장소를 정하는 것도 여행 계획을 세우고 이직을 하는 것도 스팀잇에 연재글을 쓰는 것마저도 귀찮고 어려워서 손도 대고 싶지 않았다. 그야말로 어린애처럼 그저 주저앉아 울고 싶어 진다. 그럴 순 없으니 그저 외면하고 회피할 뿐이다.

어느덧 주말을 기점으로 나의 무기력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냥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다 의미가 없어지는 거다. 해야 할 일은 관성에 따라 한다. 모든 적극성이 사라지고 생명력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설레거나 기쁘지 않고 슬프지도 절망적이지도 않다. 안정이나 평화는 아니다. 결핍이다.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와 다를 바 없다. 활기, 명랑함, 열정은 모두 식어버렸다. 마땅히 누려왔던 충만함과도 마음을 쏟을 에너지도 모두 잃었다.

나는 오늘 어린 시절, 학창 시절, 처음 일을 시작하고 사람을 만났던 기억 여행에 다녀온 일 등 내 생애 전반을 조금씩 되짚어봤다. 그 어느 것도 중요하게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나를 만든 건 뭐지? 이 전부가 나를 구성하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모르진 않다. 그러나 그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떤 날엔 내가 이과를 가지 않고 문과를 왔고 이사를 한 번 하고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했다는 사실이 지금의 내 삶에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또 오늘 같은 날에는 내가 무얼 공부했고 누구를 만났고 어떤 직업을 가졌든 그런 사실이 지금의 나와 하등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당시 중요하고 절박하고 강렬했던 모든 과거의 고민과 고통은 대부분 사라졌다. 어렴풋이 잔상과 해석에 가까운 그 온전치 못한 기억은 그저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이 모든 방식이 담아 나란 사람이 완성되었을까? 정말일까?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삶이 그냥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되는 대로 살아도 다르지 않을 것 같은 기분. 무얼 선택해도 괜찮을 것 같다. 여기서 애쓰고 고민해도 하루 동안의 고통과 괴로움 즐거움이 결국 나와는 크게 상관없지 않을까 싶었다. 무언가 기억과 내가 별개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월요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 역시 월요병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월요일이 무기력에 꽤나 도움이 된다 사실을 깨달았다. 한 주가 시작되었고 습관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처리해나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그냥 보통의 나로 돌아와 있었다. 일을 하듯이 사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을 처리해야 했고 처리하다 보니 어느 정도 열의가 생겼다. 다시 마음 속에 에너지가 느껴졌다. 스팀잇의 글도 읽고 싶어 졌고 책도 읽고 싶어 지고 이런 글도 쓰고 싶었다.


P.S. 시간이 없어서 퇴고를 못했다. 앞으로 수정하게 될 지 아닐 지 모르겠다. 거의 일기 쓰듯이 본능에 의해서 써내려갔다.


[안녕, 감정] 시리즈
01 입장 정리
02 감정을 드러내는 거리
03 평화의 날
04 다름에서 피어나는 감정
05 아플 때 드는 감정
06 열등감 -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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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였습니다.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는 것.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무겁고 어렵게 느껴졌던 것들이 한없이 가볍게 대해지는 것... 어쩌면 주변은 가만히 있는데 스스로의 감정이 그렇게 바뀌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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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jsquare님 무기력한 글을 읽고 무기력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 심심찮은 사과말씀 올립니다-
이상하죠 변한 건 하나도 없는데 혼자 이랬다 저랬다 ㅎㅎ 제겐 감정의 힘이 이리도 셉니다요 ^_^

  ·  작년

현타 오신거네요~ 쉽게 풀어 보자면 음 주말내내 고물님 스스로가 휴일이라는 시간에 아무것도 안해도 되고 틀에 박힌 시간(출근/퇴근)에 얽메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아서 무의미한 시간 보다 정말 몸은 쉬고픈데 소화도 안되고 정신적으로 몸이 아프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월요일)이 가까워 질 수록 무기력함이 몰려온 현타 입니다.내일 오후 되시면 돌아 오실거에요^^ 엔돌핀이 팍팍 도는 빵빵터지는 드라마나 영화나 tv프로를 보시면 도움이 될거라 생각 됩니다~~속이 지금도 불편하시면 죽 보다 미음으로 배만 채우시고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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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현타 ㅋㅋ 그런걸까요? 최근 답도 없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어요. 퓨즈가 나간걸지도 ㅋ

안그래도 jtbc리갈하이 보고 나혼자산다도 보고 좀 하이텐션되서 방금 샤워하면서 춤추다왔습니당 ㅋㅋㅋㅋ

속은 완전 다 나았는데 이젠 살기위해 천천히 오래 씹어야겠다는 반성을 합니다 ㅠ ㅋㅋ

그럴 때가 있어요. 나를 필요로 하는 곳, 사람, 일 그런 것들에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다가 어느 것 하나가 삐그덕 거리는 어느날 문득 밀려오는 무기력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무기력의 극복은 다시금 위의 것들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하고요. 이런 것들이 아니더라도 밀려오기도 하고요. 일단 다 놓고 가만히 있다보면 뭔가 하고싶어 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뒤돌아보는 것 보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미래를 들여다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않을까하고 생각해봅니다.^^ 힘내세요. 그래도 내일은 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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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님 양심선언을 하자면 그다지 열심히 앞으로 가지 않았는데도 종종 이럴 때가 생긴답니다;; ㅎㅎㅎㅎ

무기력의 원인이 곧 해결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단 말엔 공감이 가요-

저는 주로 애쓰지 않는 편이에요. 툭 던져놓느면 어느새 또 괜찮아질때가 많아요. 앞으론 애써야하나 고민중인데 이 시리즈를 쓰면서 점점 놓게 되네요 ㅋㅋ

저는 이미 괜찮아졌어요 레이븐님! 걱정해주셔서 감사하고 부끄럽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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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좋아지셨다니 기쁠 따름입니다.😊 행복한 밤 되세요~

월요병이 무기력증보다 힘이 세군요ㅎㅎ
무기력 덕에 이 글을 쓰게 되었으니, 무기력도 글쓰기의 조력자라고 봐야 할까요. 활력 돋는 한주 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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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순기능을 처음으로 발견했답니다! ㅋㅋㅋ 그러게요. 무기력덕분에 글 하나를 쓰게되었네요.; 고맙다고 해야할까요. 솔메님도 활기차고 생생한 한 주 되시길^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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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너지 뿜뿜!! 하는 하루 보내시길요. 아자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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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당. 아침부터 눈이 제법 많이 내리네요. 참 오랜인 것 같아요 - 길은 미끄럽겠지만 포근한 마음이 들어좋아요 나하님도 아자! >_<!!

가끔 대책없는 무기력함이 올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고물님 말씀처럼 꼭 해야할 일들을 기계적으로 하다보면 어느 정도 없어지기도 하고요. 물론 근본적인 대책(그게 뭘까요?)은 세워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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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불이님 댓글 발견!
저도 아직 찾지 못했어요 근본적인 대책 ㅎㅎㅎ 운동을 꾸준히 하면 그런 생각이 잘 오지 않을까란 생각을 최근에 해봤어요^_^ 찾으면 공유해주시길!!

마음이 허해지면 몸도 허해지는 것 같아요ㅠㅠ
지금 이 순간 마음 건강 잘챙기세요!! 라고 말하면 이 미친놈이 한달이나 지났는데 왜이래? 라는 생각이 들것 같아서 썼다 지웁니다 ㅎㅎ
여하튼 하루하루 즐거운 일 가득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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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웃겨요. 굉장히 무기력과 친밀해서 언제 또 녀석이 덥찰지 모르지만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하고 그럭저럭 의욕이 넘치고 있답니다! 피치아모님듀 활기차고 즐거운 나날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