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연재소설) [PANic Song -chapter 5] SIGN(1)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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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같이 근무하던 사람 중에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다는 건가요?”

놀라움. 아니 혜원의 얼굴에 비친 건 놀라움이 아니라 기쁨이었다.

“아, 아직 의심된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고요. 그냥 그런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확실한 물증이라도 잡은 것처럼 말씀하실 것까지는….”

신일이 우물쭈물 말을 흐리는 사이, 혜원은 이미 일전의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있었다.

“아니요. 그 정도로도 충분해요. 고마워요, 신일 씨.”

신일은 혜원의 단정적인 말투가 마음에 걸렸다. 당장 범인이라도 잡은 듯 상기된 얼굴에 마음이 불편하다. 내게 쏠린 의심의 눈을 피하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내세우는 꼴이라니, 이래서야 은전 몇 닢에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와 다를 게 무언가. 쉴 새 없이 적어 내려가는 그녀의 능갈스러운 펜 놀림에 신일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럼, 이제 말씀해 보시죠. 아까 준이의 사고와 관련해서 뭔가 이상한 편지가 발견되었다고 말씀하셨죠?”

“예, 엊그제 헌병 수사대 쪽에서 접수됐다 저희 쪽으로 이첩되어 온 건이에요. 류준 대위의 사고가 한 대령 살인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입증할 자료가 될 것 같아서…. 잠깐만요, 가만 있자 내가 그걸 아까 어디다 뒀더라?”

혜원이 테이블 위에 핸드백을 올려놓는다. 그건 여성용이라기엔 터무니없게 큰 가방이었다. 빠끔히 열린 가방 사이로 보이는 서류뭉치와 자료들, 저건 얼핏 보기에도 상당한 무게다.

“류 대위랑은 몇 년 정도 같이 근무하신 건가요?”

그녀는 한 손으로 느긋이 가방을 뒤지며 별스럽지 않게 질문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동창의 안부라도 묻는 듯한 말투로군. 그녀의 발랄한 물음은 잽처럼 날랬지만, 거기 실린 펀치감은 훅보다 묵직했다.

예상대로다. 역시 그녀에게 오늘 만남은 심문의 목적을 겸하고 있었던 거다. 신일은 애써 태연한 척 목청을 가다듬었다.

딱히 그녀의 일처리 방식에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녀에게 난 그저 검증되지 않은, 또 하나의 용의자에 불과할 테니까.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그녀의 능수능란한 유도심문에 휘말려들지도 모른다.

“중위 진급하기 직전부터 제대할 때까지니까 대략 2년 조금 넘는 기간이었겠네요.”

“제법 오래 같이 근무하신 사이네요?”

“그런 셈이죠.”

“교통사고 얘기를 전해 듣지 못하신 걸 보니 전역 이후까지 계속 연락하고 지낸 사이는 아닌 것 같고…”

툭툭 쏟아내는 질문 사이, 보이지 않는 발톱이 숨겨져 있다. 신일은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이미 그의 얼굴은 귓불까지 발갛게 달아오른 채였다.

“그게 류 대위가 기수는 저보다 1년 빠른데, 나이는 두 살 어려서 조금, 애매한 관계였거든요.”

“기수가 꼬였다는 거네요.”

“예, 게다가 저랑 워낙 성격도 잘 안 맞았고…”

“성격이 잘 안 맞았다고요?”

그 말이 지금 상황에서 얼마나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지 신일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는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자신의 실수를 후회했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순 없었다.

“그, 글쎄요. 류 대위 그 친구가 같이 일하기 썩 편한 성격은 아니었거든요.”

“같이 일하기 편한 성격이 아니었다고요? 어떤 면에서 그랬다는 거죠?”

“그러니까 류 대위는 뭐랄까.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라고 해야 할까, 괴팍하다고 해야 할까.”

“자기중심적이고 괴팍하다?”

“아, 이걸 어떻게 설명 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니에요. 최대한 편하게, 신일 씨가 느낀 그대로를 말씀해주시면 되요. 피해자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평판 역시 수사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저로서는 최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런… 가요.”

“물론이죠. 신일 씨는 본인이 느낀 점을 있는 그대로 말씀해주시면 되요. 류준 씨의 어떤 점을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어했고, 싫어했는지, 솔직히 말씀해 주시기만 하면 된다고요.”

취조하듯 날선 질문공세를 퍼붓던 그녀가 어느새 조곤조곤, 상대를 어르고 있다. 신일은 하마터면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녀의 저 보드라운 말투는 분명 내게서 더 많은 정보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일 게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미끼인 셈이다. 캐러멜 발린 사탕처럼 달콤하지만 목구멍 뒤로 넘기는 순간, 식도를 타고 맹렬하게 위장에 박힐 예리한 칼날.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사실을 머리로 이해하는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상대를 쥐락펴락하는 그녀의 감각적인 화술 앞에 신일은 그저 꼼짝없이 휘둘리며 농락당할 뿐이었다.

“그럼 그냥…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예, 천천히 말씀하셔도 되요. 이건 어차피 신일 씨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니까요.”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어 한 류 대위의 모습이라면 아무래도…”

“아무래도?”

“상당히 히스테릭한 성격이었거든요, 그 친구가….”

“히스테릭한 성격이었다.”

“예, 일이 자기 뜻대로 안 풀린다 싶으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짜증을 부리곤 했어요. 거의 매일 같이.”

“짜증도 자주 부리고…”

“쉴 새 없이 부하들을 볶아대는 타입이었죠. 특히 저랑은 꽤나 서먹한 사이였어요. 전역하는 순간까지 절 한시도 편하게 놔두질 않던 친구라….”

“신일 씨하고는 꽤 악연이었던 모양이네요.”

“딱히… 저하고만 악연, 이라 말하기도 힘들어요.”

“하하, 알았어요. 민감하게 느껴질 질문은 피하도록 하죠. 유도심문처럼 느껴졌다면 죄송해요.”

“아뇨, 뭐.”

“어쨌거나 류 대위가 같이 일하던 사람들과 그다지 원만한 편은 아니었다, 그 말씀이시죠?”

“음, 고인이 된 사람한테 이런 얘기까지 하면 좀 미안하지만, 솔직히… 그렇다고… 봐야죠.”

“그럼 그런 것들을 다 감안할 때 이게 뭘 의미하는 것 같아요? 잠깐만요. 아, 찾았다. 여기 있네요.”

뒤엉킨 파일 틈, 마침내 그녀의 손에 구겨진 종이 한 장이 들려있다. 누렇게 바랜 종이 위로 춤추는 문자 배열. 잡지와 신문에서 한 글자씩 오려붙인 조악한 편지. 그건 얼핏, 80년대 B급 할리우드 영화에 나올 소품 같았다. 신일은 제 멋대로 흩어진 글자를 하나씩, 찬찬히 추슬러 읽었다.

단서2.jpg

“이건?”

“무슨 내용인지 아시겠어요?”

“글쎄요. 그보다 이건 뭔가요, 대체?”

“바로 이 편지가 류 대위의 사고가 있은 얼마 후 발신인 불명으로 배달됐다고 해요. 장례가 끝나고 류 대위의 미망인께서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좀 이상한데요.”

“뭐가요?”

“이걸 만든 사람 말이에요. 굳이 이런 식으로 글자를 오려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컴퓨터로 출력하면 누구나 필체를 감출 수 있을 텐데 굳이 이런 방법을.”

“음, 아마 자신의 메시지가 보다 확실히 전달되길 원했던 게 아닐까요?”

“보다 확실히?”

“예, 수신자가 류 대위의 미망인이셨잖아요. 생각해 보세요.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별 뜻 없어 보이는 발신인 불명의 편지 따위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요? 만약 이 편지가 평범한 종이에 적힌, 평범한 출력물이었다면 말이죠.”

“평범한 출력물이었다면….”

“하지만, 발신인 불명의 편지가 잡지를 오려 붙인, 수수께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이라면 얘기가 다르죠. 이건 누군가의 메시지다, 내 남편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의심이 들지 않겠어요? 이런 식으로 글자를 오려 붙여 협박 편지를 보내는 건 전형적인 클리셰(Cliche)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성글게 말꼬리를 돌리고 있지만, 이미 혜원은 이 편지를 범인의 두 번째 메시지로 인지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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