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근황들 3

2년 전
in kr

오늘은 지인의 공연을 보러 강원도에 왔다. 겸사겸사 당일치기 여행으로 일찍 올라와 이곳저곳을 다녔다. 너무 추워 카페로 피신한 내 핸드폰엔 방금 '한파주의보' 알림이 울렸다. 강원도에 와 미리 겨울을 만나고 간다.


레슨을 늘리면서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대폭 늘었다. 대개 내 레슨생은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적어도 재수생 이상이었는데, 어린아이들을 만나게 되면서 삶이 또 한 번 변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좋아하는 곡들이 최소 7년씩은 된 곡이라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가요를 듣지 않게 되었고, 마치 그것이 고상한 취향인 양 행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들은 당연스레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수업 때 가져왔고,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애들과 수업을 하고 돌아와 내가 했던 말을 생각해보면 온통 꼰대스러운 것들뿐이라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하반기 나의 목표 중 하나는 '꼰대 되지 않기'였다. 부단한 노력으로 하고 싶은 말은 어찌저찌 참을 수 있었지만, 생각까지는 참을 수 없었다.


게임을 하고, 방에 누워 컵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는 내 모습을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선생님이라면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늘 연습을 해야 할 것 같고, 곡 작업으로 하루하루 바쁜 날들을 보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한참 게임에 빠져있던 때에(그러니까 요즘) 나는 애들에게 넌지시 게임을 한다고 이야기하게 되었고, 내 생각보다 더 아이들이 그 사실을 반가워한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들은 내게 아이디를 묻기도 하고, 티어를 묻기도 하고, 시험이 끝나면 게임에서 만나자는 이야기를 건네기도 한다.

스스로를 가두던 틀을 깼더니 무척이나 가벼워진다. 아이들은 거리낄 것이 없고, 그래서 상상 이상으로 더 자유롭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도 선입견도, 거리낌도 없다. 잔뜩 날을 세우고 있는 나와는 달리,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준다.

요즘은 또래의 지인보다, '급식'에게서 더 많은 연락을 받는다. 시험을 망친 얘기, 엄마와 싸운 얘기, 좋아하는 이성 얘기, 게임 등 다양한 대화를 나눈다. 때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영상을 보내주기도 한다. 그걸 보고 있으면 역시 내 정서와 맞진 않지만, 적어도 눈살을 찌푸리진 않으려 노력한다. 나도 요즘 유행하는 말을 쓰면서 애들과 함께 깔깔거린다.

내가 그토록 열심히 찾아다니던 '꼰대되지 않기'는 생각보다 무척 간단했다. 그냥 같이 즐겁게 노는 것. 내가 더 낫다거나, 이미 해봤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이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


며칠 전 끝낸 작업은 '주업'의 범주에 드는 것이었다. 의뢰부터 미팅, 제작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실제 만남 없이 전화와 메일로만 이루어졌다. 전화로 얘기를 나누고, 가이드를 보내고, 녹음본을 받고 믹싱과 마스터링을 맡겼다.

이런 방식이 더 좋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내게는 조금 더 번거롭더라도 각자의 공간에서 진행되는 작업 과정이 더 마음에 들었다. 계속 이렇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어쨌건 나는 의리를 앞세워 공연을 보겠다고 이 추운 날 강원도에 와서 벌벌 떨고 있지만, 세상이 모니터 속으로 들어가고, 우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고도 그 속에서 만날 수 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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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어'라는 한 단어에 5년도 더 훌쩍 지난 어느날,
기타 레슨을 해주던 중학생 아이들이 시도때도 없이 꺼내는 게임 이야기에 호기심이 일어 친해질 겸 함께 피씨방을 향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당시 선생님 게임 못한다며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현재까지도 아무생각없이 머리를 쉬고 싶을때면 즐겨하는 유일한 게임이 되었죠. ㅎㅎ

오랫만이에요 나루님^^
꼬대되지 않기 저는 울 애들부터 시작해야 겠네요.
추운 겨울 감기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