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의 모험 The Adventures of Duri │제21화 Episode 21│ 코로만델 탐험기 (3) ─ '진짜'를 만나다: 피티앙아의 피피 듄 비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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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dventures of Duri




두리의 모험











제21화 코로만델 탐험기 (3)


'진짜'를 만나다 ─ 피티앙아의 피피 듄 비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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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room, Pipi Dune B&B / ⓒchaelinjane, 2018





 뉴질랜드 마오리의 전설 중에는, 원래 그들이 살고 있었던 폴리네시아 하와이키 섬의 대족장 쿠페(Kupe)가 아내와 배를 타고 낚시를 하던 중 우연히 뉴질랜드를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뉴질랜드의 또 다른 이름인 '아오테아로아(Aotearoa)'는 그때 배 위에 함께 있던 쿠페의 아내가 뉴질랜드 땅을 보고 저건 땅이 아니라 기다란(roa) 흰 구름(Aotea)이라며 남편의 상륙을 말렸다는 전설에서 나왔다.


 피티앙아라는 이름은 쿠페가 서기 950년 경 이 땅에 상륙하면서 이름 붙인 '테-피티앙아-아-쿠페(Te-Whitianga-A-Kupe)'에서 유래되었다. '쿠페가 지나간 곳'이라는 뜻이다. 뉴질랜드 북섬 와이카토 지방의 코로만델 반도에 있는 피티앙아는 2018년 5월 기준으로 5천여 명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이다. 키위들의 여름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한낮의 겨울에는 딱 적당한 수의 관광객들이 마을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피피 듄(Pipi Dune)'이라는 숙소 이름을 처음 보았을 때는 호스트들이 꽤 귀여운 감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이 비앤비가 있는 조그만 거리의 이름이 피피 듄이었다. 마오리어로 피피가 '조개'라는 뜻이니 건조하게 말하자면 여기는 '조개 언덕길에 있는 조개 언덕 비앤비' 정도 되려나.

아까 블루 진저에 있었죠?



 세바스찬이 챙겨 준 당근 케이크를 먹기 위해 포크를 가지러 주방으로 가는 길,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한 중년의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아, 맞아요! 아까 거기 계셨나 봐요. 음식 참 괜찮았지요?


정말 맛있었어요.



 우리가 블루 진저에 있던 유일한 아시아인이었으니 눈에 띄었을 수밖에. 바에 앉아 있었던 손님이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의 이름을 물어 듣긴 들었는데 이국적인 데다가 너무 길어서 외우지 못했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20년 전에 이민을 와 뉴질랜드에서 카펫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중저음의 목소리와 전체적인 이미지가 짙은 보라색 같은 여인이었다. 얼마간 대화를 이어가다가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해드리고 싶지 않아 포크를 챙겨 들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테라스 문을 열어 달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사진을 옮기고 일기를 쓰다가 잠이 들었다.




피피 듄 비앤비의 섬세함




[아침을 먹을 시간과 메뉴를 적어주세요]



 주방의 냉장고에는 언제나 작은 쪽지가 붙어 있다. 이름과 아침 먹을 시간, 메뉴를 한 가지 선택해 너무 늦지 않은 저녁 시간까지 적어 놓으면 된다. 피피 듄 비앤비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 메뉴는 다음과 같다.

  • 달걀(스크램블, 수란, 프라이 중 선택)과 베이컨, 토마토, 버섯 요리
  • 아라비아 살구와 구운 무슬리, 그릭 요구르트
  • 바나나 베리 스무디: 과일 믹스와 요구르트, 꿀로 단맛을 낸 오렌지 주스


     우리는 아침 9시 반에서 10시 사이에 스크램블 에그와 베이컨, 토마토, 버섯 요리, 그리고 바나나 베리 스무디를 먹고 싶다고 적었다. 어제 거실에서 만났던 짙은 보랏빛의 여인이 아침 식사 시간을 구체적으로 물어보기에 겹치지 않기를 원하는 것 같아서 한 시간 뒤로 적었다. 보통 비앤비에서 주는 아침 식사는 토스트나 커피, 차 정도 셀프서비스로 제공되는 게 다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먹고 싶은 요리를 선택해 시간까지 적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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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쪽에서 본 피피 듄 비앤비와 각 방마다 마련된 테라스 / ⓒPipi Dune Bed & Breakfast





     다음 날 아침, 여행지에서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있는 나는 겨우 잠을 이어 자다가 아침 7시쯤 일어났다. 테라스 문을 열었다. 밝고 고요한 공기가 감각을 깨웠다. 명상과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프랑스에서 온 여인이 먼저 아침을 먹었는데 리젯과 오랜 시간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목소리가 격해지는가 싶더니 조금 흐느껴 우는 것도 같았다. 리젯은 평온한 목소리로 그녀를 달래주었다. 그 여인에게서 짙은 보랏빛을 느꼈던 건, 은연중에 그녀의 슬픔이 밖으로 흘러나와서였을까. 9시가 넘어가자 거실이 다시 조용해졌고 약속한 아침 식사 시간이 되어 방을 나섰다.

좋은 아침이에요!



 피피 듄 비앤비의 호스트 할아버지인 웨인과 할머니 리젯이 분주히 움직이다가 우리를 보고는 따뜻하게 인사해주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갈하게 세팅이 완료된 테이블이었다. 요리는 포일에 감싸져 식지 않도록 되어 있었고 바나나 베리 스무디는 도자기 용기에 깔끔하게 담겨 있었다. 우리가 선택한 요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뉴질랜드 잼과 스프레드, 시리얼, 빵이 식탁에 올려져 있었다. 리젯이 '과일 주스 줄까요?' ' 커피 내려드릴까요?' '키위 좀 먹어봐요.' 할 때마다 거절하지 않았더니 커다란 6인용 테이블 절반이 가득 차 버렸다.


 스크램블 에그와 베이컨, 토마토, 버섯 요리는 (솔직히 조식 뷔페의 단골 메뉴인만큼 맛이 없기 힘든 음식이었지만) 호밀 식빵과 버터, 바나나 베리 스무디와의 조합과 찰떡 같이 잘 어울렸다. 웨인과 리젯은 주변의 여행지에 대해 상세하고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는 필요한 게 더 있으면 불러달라는 말을 남기고 2층으로 올라갔다.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다거나 함께 앉아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공간으로 빠져준 것이다. 거의 10년 가까이 여행객들을 맞은 노부부에게는 어떤 손님이 본인들과 긴 대화를 원하고 어떤 손님이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는지, 혹은 어느 정도의 대화량이 적당한지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고작 아침 시간의 경험이었지만 우리가 누려야 할 시간을 존중받고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여행의 모든 시간대가 중요하겠지만 아침을 온전하게 보내면 그날 하루의 컨디션이 연쇄적으로 괜찮을 확률이 높다. 만족스러운 아침을 만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식탁 위에 있던 냅킨 한 장에 'Best Breakfast Ever!'라고 적어 놓고 나왔다. 외출하기 직전,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웨인이 우리 방을 정리해 주었으면 좋겠는지 물었다. 어차피 하루 더 머물 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방에 도착하니 침구는 처음 왔을 때처럼 말끔히 정돈되어 있고 우리 짐도 최소한으로 치워져 있었다. 나의 강아지 인형 쮸는 잘 개어진 이불과 베개 사이에 예쁘게 놓여 있었다. 내가 냅킨에 썼던 메모처럼, 이불 위에서 글씨가 적힌 종이를 발견했다.


[당신이 이곳에서 더욱 편안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가 냅킨에 그린 스마일 표정이 따라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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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간 은신처가 되어준 피피 듄 비앤비의 방 / ⓒPipi Dune Bed & Breakfast





 이곳에서 만난 또 하나의 섬세함은 화장실에 있다. 샤워실에 있는 불투명한 정사각형의 창문에서 빛이 환하게 들어와 좁은 화장실이라도 답답함이 덜하다. 햇살 덕분에 산뜻한 샤워를 즐길 수 있고 샤워가 끝나면 창문을 열어 습기를 재빨리 없애는 데에도 탁월하다. 이곳저곳 다녀본 경험으로는 샤워부스 안에 창문이 나 있는 게 흔하지 않았다. 설령 창문이 있어도 투명한 유리라 커튼을 쳐서 빛은 다 가리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차라리 여기처럼 커튼을 없애고 불투명한 유리를 사용해 프라이버시와 햇살 모두 확보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항공 안전 요원으로 15년을 일하고 현재 22년째 원예가로 활동하고 있는 웨인과 15년 동안 재활·통증 관리 전문 간호사로 일한 리젯은 자신의 집을 특급 호텔처럼 여기고 관리한다. 그리고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스럽게 대접한다. 두 사람은 Bed & Breakfast 중에 어느 것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세 가지의 한정된 요리 중에 하나를 고르면 그 요리와 함께 빵이나 시리얼, 음료수, 커피, 차 등등을 정성을 다해 준비해준다. 웨인과 리젯이 침구류까지 세심하게 고른 덕분에 편안한 가정집에서 호텔 같은 편안함을 누릴 수 있다. 호텔 다이닝룸에 마련된 수 십 수 백 개의 냅킨과 포크, 나이프의 행렬은 어딘가 '정성의 소품종 대량 생산' 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내가 느끼는 정성이 n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수 인원을 위해 마련된 정성은 그 시간대에 아침 식사를 하는 손님 한 테이블에만 집중된다. 커다란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마지막 날 아침은 첫 번째 요리와 함께 바나나 베리 스무디를 '아라비아 살구와 구운 무슬리, 그릭 요구르트'로 바꾸어 먹었다. 모든 재료가 따로따로 담겨 나와서 기호에 맞게 섞어 먹을 수 있다. 아침을 마무리하고서는 내가 느낀 만큼의 편안함과 만족스러움을 방명록에 기록했다. 진한 포옹을 나누며 떠나기 싫다고 얘기하자 두두에게 '혼자 가. 제인은 여기 묶어놔야겠어!'라고 껄껄 웃던 웨인과 리젯. 공간과 서비스에 대해 영감을 가득 받았던 2박 3일이었다. 피티앙아에서의 포근한 기억을 새기며 야자수가 높게 서 있는 출입구를 나섰다. 한낮의 겨울 태양이 웨인과 리젯의 미소처럼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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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du & Riri are the ones who develop each desire in each place. Dudu wants to live as a builder and Riri as a creator. Though there are a lot of different things between them, Dudu & Riri pursue the same values: living an independent life, fulfillment of a dream, learning & reading about things, living a future-oriented life, and the value of BEING TOGETHER.


목수로 살고 싶은 두두와 기록자로 살고 싶은 리리. 둘은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격도, 하고 있는 일도 다르지만 같은 가치관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주체적인 삶, 꿈의 실현, 배움에 대한 애정, 미래 지향적인 삶, 그리고 함께 하는 것의 가치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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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와레 푸카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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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코로만델 탐험기 (1) ─ 온천을 즐길 수 있는 해변, 핫 워터 비치(Hot Water Beach)
│제20화│ 코로만델 탐험기 (2) ─ 작은 아시안 퓨전 레스토랑에서 삶의 태도를 배우다





│by @chaelinj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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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오~ 언젠가 뉴질랜드에 간다면 꼭 묵어보고 싶은 느낌이 드는 곳이네요:> 섬세한 친절함이 보이는 것 같아요~

  ·  작년

당장 피피듄비엔비 노부부의 거실로가보고싶네요

주체적인 삶, 꿈의 실현, 배움에 대한 애정, 미래 지향적인 삶, 그리고 함께 하는 것의 가치를 꿈꿉니다.

chaelinjane 님이 살고 싶은 삶 아닌가요^^
잘 읽었습니다 삐삐 듄 ㅎ~~

  ·  작년

김치 먹고 싶겠다.. ㅎㅎㅎ 새해복 마니 받으세요

리리님은 지금도 힘차게 모험을하고 계시겠지요~ 저도 현실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다보니 글도 스팀잇도 잘 못하게 되네요ㅎㅎ 언젠가는 리리님의 환상적인 작업물을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 힘내시고 항상 즐거운 모험이 되시기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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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아아_ 토랙슈님...! :))) 저 다시 돌아왔답니다..!!!!!!!! ㅠㅠ 기다려주셔서, 또 이렇게 안부 남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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