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영상'이란 윤희숙 의원 연설에 대한 비판

7개월 전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의 연설을 보수 언론들이 '레전드 영상'이라며 공유하길래, 당연히 믿진 않았지만, 그래도 저 정도의 평가면 들을만한 논리가 있을거란 기대를 하며 봤다. 본 결과는... 아까운 내 오 분..(연설 영상은 따로 공유하진 않겠습니다)

윤 의원의 핵심 주장은 임차인 권리를 강화하면 임대인은 비용을 전가하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서민이 선호하는 전세가 빠르게 소멸한다는 것이다. 이게 틀린 얘기냐고? 아니, 경제학에 정통한 국회의원이 하는 말인데 틀린 말일리가. 그렇다면 임대차법이 아니어도 이 저금리 시대에 전세는 감소하는 중이란 주장도 틀린 말이냐? 당연히 그것도 아니지. 전세보다 월세 수익률이 좋으니, 목돈이 절실하지 않은 집주인은 점점 월세로 바꿔가겠지.

윤희숙 의원의 말이 거짓말이 아닌데도 저 영상을 보는 시간이 아까운 이유는 새로운 논리가 없고,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소모적인 논쟁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일단 윤 의원의 주장대로 '임대차법 개정이 전세 공급을 줄인다'는 참일 가능성이 높은 명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세 공급을 줄이는 결정적인 요인이 임대차법 개정인지는 쉽게 답하긴 어렵다. 전세가 줄어드는 요인 중에 저금리가 차지하는 비중,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하는 임대차법 개정안이 차지하는 비중, 부동산 가격 전망이 차지하는 비중, 또 다른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 등이 각각 얼마나 될까. 이런 계량적인 계산을 하기는 무척 어렵다. 하지만 모두 전세 공급에는 영향을 미친다. 정직하지 않은 선동가들은 하나의 결과에 미치는 여러 요인들 가운데 특정 요인을 강조하거나 과장한다. 윤희숙 의원의 주장이 대표적인 이런 사례다.(경제학은 그래도 수학을 다룬다. 특히 편미분을 많이 활용하는 학문이다. 편미분은 결과값 y에 미치는 여러 요인들 중에 하나의 변수가 y값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방법론이다.경제학에 정통한 윤 의원이 왜 변수들과 결과 간의 인과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지 의아할 뿐이다.)

정직한 토론을 하려면 두 가지를 따져봐야 한다. 하나는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을 보장하고, 임대료 증가율을 제한하는 입법이 일부 부작용을 감수할 만큼 시행할 가치가 있는가이다. 사실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정책의 대부분은 시장의 효율을 저해하는 것을 감수하면서 도입된다. 이번에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이나 임대료 증가율 통제는 아주 새롭지 않고, 오히려 많은 국가들에서 오래 전에 도입된 정책이라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다른 하나는 윤 의원의 우려대로 실제 부작용을 완화하는 방안에 대한 고려다. 1989년 임대차법 개정으로 최소 임대차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을 때도 전세값 급등 현상이 있었다. 정부는 전세와 월세 가격, 월세 전환율 등의 통계를 면밀히 살피면서 여러 보완 정책들을 내야한다. 예를 들어 갭투자한 다주택자에게 대출 규제를 하면 이미 임대를 내준 전세 물량을 월세로 전환할 수 없다. 전세라는 사금융을 공금융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전세 안정에 효과적인지를 따져보려면 전체 전세 물량 중에서 다주택자가 공급한 물량의 비중부터 알아봐야 한다. 그리고 직계존비속 입주시킬 때 계약갱신청구권 거부할 수 있는 조건이 악용될까 우려된다면 그런 조건을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윤 의원은 연설 말미에 부작용에 대한 대안의 단초로 '임대인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줄 것인가', '임대 소득만으로 사는 고령 임대인을 어떻게 배려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시한다. 나는 이 부분이 제일 이해가 안 간다. 도대체 이번 임대차법으로 임대 소득만으로 사는 고령 임대인이 어떤 피해를 입는걸까. 2년 뒤에 임대료를 5% 이내로 밖에 못 올려서? 그게 피해인가? 우리 정치가 그렇게 막아줘야 하는 피해인가? 그리고 윤 의원은 임대인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줘야한다고 보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혹시나 윤희숙 의원이 발의한 주택 임대차 관련 법안이 있는지를 살펴봤는데 단 하나도 없다. 나는 굳이 인센티브를 임대인에게 주려면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정상화로 차라리 임대인이 월세보다 전세를 공급하도록 하는 게 낫다고 본다.

이번 임대차법은 정부가 임차인에게 일종의 무기를 준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임차인과 임대인의 힘의 격차가 있는 상황에서 이런 무기로 힘의 균형을 회복할 수 있을까. 당연히 단기간엔 오히려 혼란이 많을 것이고, 역효과의 사례도 적지 않을 것이다. "왜 무기를 임차인에게만 주느냐"고 정부에게, "왜 정부가 주는 무기를 받아서 행사하려 하느냐"고 임차인에게 화 내는 임대인이 있을 것이고, 오히려 금방 무기를 빼앗겨 칼끝이 임차인에게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윤 의원이 그가 밝힌대로 정말 임차인 보호에 동의한다면, 또 '정책의 의도지 않은 효과'를 우려한다면 이번 정책을 어떻게 보완할지, 아니면 대체할 대안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하지 않을까.

저런 연설이 레전드 영상이라니.. 전혀 동의할 수 없고, 솔직히 김종인 대표도 윤희숙 의원과 동일한 생각인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나도 윤 의원의 '정책의 배신'을 읽어봐야겠다. 이번 일로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진 정치인인지는 궁금해졌다.

덧/저는 윤희숙 의원이 임차인인지, 임대인인지, 다주택자인지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저는 그가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인지는 궁금합니다. "나도 임차인"이란 말 뒤에 숨지 말고, 정직하게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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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보진 않았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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