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9

2개월 전

내가 10대 후반이었던 때부터 인터넷이 급속도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학교 친구를 찾아주는 다모임이라는 것도 유행했고 지금은 네이버가 거의 장악하지만 그때는 다음 사이트가 제일 유명해서 대부분 사람들의 메일주소는 한메일이었던 것 같다.

세이클럽이라는 채팅 사이트도 유행했었는데 나는 대학에 합격하고 그 대학 예비 입학자들끼리 채팅을 하곤 했었다.

나의 대화명은 ‘멋진여자’였는데 나중에 내 과동기와 친해졌는데 그 친구의 대화명은 ‘상큼소녀’ 였어서 지금 애기엄마가 우리들은 “넌 역시 대화명대로 멋진 여자가 됐구나” “넌 여전히 상큼해!” 이러면서 유치하게(?) 놀곤 한다..
(멋진여자 시절 학교 친구와 채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쪽지가 날라와 확인해보니

“너 정말 멋져?” (안 멋지면 어쩔래..)

암튼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 PC통신이던 그 시절 나는 그 당시 고등학생이던 한살 연하남과 채팅을 하고 썸 아닌 썸을 타며 영화 ‘접속’을 재연했다.

경상도 남자이던 그와 통화를 자주 했는데 나의 서울말씨(?)가 깍쟁이(요즘은 잘 안 쓰는 말..)같다며 나의 서울말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는 저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 그 당시 ‘봄날은 간다’로 유명했던 유지태를 연상시켰는데 그는 유지태 못 생겼다며 자기를 욕 하는 거냐고 발끈했지만 그와 결국 만남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기에 내가 그를 욕 한건지 유지태를 욕 보인건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대학을 합격하고 다른 대학교에 다니던 오빠와 (나는 이제 왜 오빠란 말이 이리 어색한지 모르겠다.. 나는 이미 이토록 늙어버린 것인가..) 벙개 (그 당시 말로 만남을 뜻하는 ‘번개’)를 했으나 서로 만나보니 서로가 서로의 스타일이 아니었으므로 (ㅋㅋ) 채팅에선 썸을 타고 만나서는 너무나 건전한(?) 아는 오빠동생 사이로 급전환하더니 결국은 우리는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또 한번은 동갑이던 다른 대학교 남학생을 알게 되어(그의 이름은 한국의 어느 유명한 ‘강’이름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의 학교 남학생과 우리 학교 여학생끼리 Join하여 미팅을 주선하기도 했다.

(별밤(‘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오래된 라디오 프로그램)의 가요제에 나가 주장원까지 탔던 노래 실력이 출중하고 얼굴까지 단아했던 나의 대학친구는 플라이 투더 스카이의 환희를 닮았던 ‘강’이름의 내친구의 친구를 마음에 두었으나 역시 얼굴값을 하는건지 환희는 쉽게 내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당연히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무튼 이렇게 채팅을 하고 벙개를 하고 미팅을 주선했던(나는 고등학교 때는 꿀먹은 벙어리였으나 대학 때 갑자기 작정하고 이렇게 터무니없이(?) 활발하게 변했다)대학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는 채팅을 맡을테니 메가 너는 벙개를 전담해라 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렇게 PC통신 시절부터 채팅으로 사람을 알아가고 또 거기에서 의외의 즐거움을 느끼고 색다른 경험을 했던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다른 종류의 채팅을 했었는데 예를 들면,

나는 중국인들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강사이기에 한국어 강사 카페에 가입하여 그 사람들과 댓글을 주고 받다가 채팅으로 발전하기도 했는데 어떤 한 남자회원분이 정보도 많이 올려주시고 상냥(?)하셔서 그 분과 채팅을 즐겁게 하고 있었는데

그 분이 갑자기 너무도 정중하게(?)
“혹시 원하신다면.....” 하면서 갑자기 뜬금없이 19금 화제를 꺼내서 진짜 순간 멍~했던 적이 있다..(그의 태도가 너무나 정중해서 더 당황스러웠다..채팅 시간이 밤이었던게 나의 불찰이었던 것 같다)

이 외에도,
‘영어가 안 되면 시원스쿨~닷컴!’의 수많은 광고에 영어가 안 되는 나도 역시 시원스쿨닷컴에 등록을 하고 생각보다 쉽고 괜찮은 강의에 나름 몇달동안 영어공부에 열을 올렸는데

영어회화 실력을 늘리고 싶어하는 한국 사람들끼리 영어로 채팅하는 곳을 지인으로부터 추천 받았고 영어가 안 되는 나도 매강마다 익히게 된 문법 지식만(?)을 이용하여 딱히 관심없는데도 그 문법을 이용하여 말을 하기 위해 그들의 안부를 종종 묻곤 했다..ㅋㅋ

그런데 어느 날, 집 근처의 체육관 운동장을 혼자 한바퀴 돌면서 심심할 때마다 매강의 문법지식을 이용하여 채팅을 한두마디씩 주고 받았는데 역시나 상냥하고 정중했던 나와 꽤 오랫동안 영어로 대화를 나눴던 어떤 남자분이 갑자기 뜬근없이 아주 정중하게 나의 속옷 색깔을 영어로(?) 물어봐 진짜 날밤에 운동장 뛰다가 황당해 미끄러질 뻔 했다..

(그 분에게 나도 최대한 정중하게 역시나 영어로(ㅋㅋ)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 그런 데에 관심이 있는 여자분을 찾아 대화를 나누시면 좋을 것 같다고 추천해드렸다)

암튼 PC통신 시절부터 거즌 20년동안 여러 곳을 전전하며 댓글과 채팅으로 사람들과의 소통을 시도해왔는데 요즘엔 인터넷에서 댓글 소통으로 사람 사는 맛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20년 경력의 댓글, 채팅 경험을 돌이켜보면 정말 너무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사람, 그 많은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생각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감탄하게 된다.

내가 똑같은 글을 써서 올려도 사람마다 감동과 재미를 느낀 부분이 각자 다르다는 것은 내가 이토록 댓글관리(?)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댓글만 봐도 사람이 얼마나 다른지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의 보잘 것 없는 생각을 이토록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개 같은 다양한 관점으로 멋지게 표현해주니 나같은 평범하다 못해 초라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으로써는 정말 감개무량할 뿐이다.

이토록 다채로운 우리.

살면서 간혹 크고 작게 투닥거리는 사람들간의 소통도 모두 우리의 다채로운 무지개 같은 매력의 발현이다. 그것을 부담스럽게 바라보지 말고

‘참 매력적이구나...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개를 맘껏 발산시키고 있어..!!@_@’
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는 그 무지개를 보고 맘껏 감상하면 그만이다.

책에서 본 멋진 구절을 공유하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선 뿐만 아니라 악도 전체를 이루는 총체성 속에서 <필수적인> 제자리를 차지한다.”

-헤라클레이토스-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TEEMKR.COM IS SPONSORED BY
ADVERTISEMENT
Sort Order:  trending

완전 저의 옛날의 추억을 돋게 해주는 포스팅이네요^^
나우누리, 천리안, 별밤...

한메일이 좀 잘만 했으면 우리나라를 완전 장악했을텐데
엄청난 뻘짓으로 모든 사용자를 다 떠나가게 했었죠.

저는 사실 채팅에 큰 메리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게 영 어색해서요...
사실 저는 지금도 카톡이니 문자니 잘 안합니다.
친구에게 카톡오면... 좀 보다가 바로 전화하죠 ㅎㅎ
아무래도 노인네인가 봅니다. ㅋㅋ

‘멋진여자’라는 대화명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 생각으로는 유지태를 욕 보인게 확실하다고 봅니다!!

제가 어렸던 시절 '악'은 정말 완전히 쳐 부수어야 할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악'이 내게도 있구나를 알게되었죠.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은 한나아렌트가 속아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정치의 여야도 마찬가지죠.
국민의 힘... 저에게는 '악'으로 느껴져왔고
단 한번도 그들의 정당에 투표한 적은 없지만
그들에게'만' 투표하는 많은 국민들이 '악'은 아니죠...

역사의 아이러니이지만 우리가 '미얀마'가 될 수도 있었는데
현재 이 모습의 대한민국으로 서있을수 있었던 것이
그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습니다...

언론의 발전, 정치의 발전, 대한민국의 발전
오늘도 그저 작은 힘을 보태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