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역사] 튤립 열풍 얘기는 대부분 구라 - 런던 킹스 칼리지 역사 교수가 들려주는 진실

2년 전



바로 지금 비트코인도 거품이라는 얘기가 한창입니다. 하지만 과거 우리는 닷컴 주식, 1929 년 대공황, 19세기의 철도 및 1720년의 사우스시 거품을 겪었습니다.

이 모든 거품의 시대에 살던 이들은 당시의 거품을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 일어났던 튤립 구근 투기 열풍인 "튤립 열풍(tulip mania)"과 비교하곤 했습니다.

오늘날의 일부 회의론자들은 비트코인을 “튤립 열풍 2.0”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튤립 열풍에 계속해서 집착하는 것일까요?

튤립 열풍은 분명히 흥미진진한 얘기이며, 정신 나간 시장을 일컫는 대명사입니다. 이런 면이 끊임없이 반복돼 오고 있습니다. 평범한 트위터든,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같은 유명인사가 펴낸 고전 경제 교과서든 마찬가지입니다.

튤립 열풍은 비이성적이었다고들 합니다. 튤립 열풍은 광란이었다고들 합니다. 굴뚝 청소부에서 귀족에 이르기까지 네덜란드 모든 이들이 뛰어들었다고들 합니다. 같은 튤립 구근 또는 튤립 선물이 어떤 경우 하루에 10배나 가격이 뛰곤 했다고들 합니다.

진짜 튤립 구근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직 거래를 통한 수익을 원할 뿐이었다고들 합니다. 순전히 탐욕의 현상이었다고들 합니다. 튤립은 미친 가격(집 한 채 가격)으로 팔렸고, 이런 행운은 찾아 왔다가 곧 사라져 버렸다고들 합니다.

1637년 2월에 튤립 열풍을 붕괴시키기 시작한 것은 시장에 새로 참여한 이들의 어리석음이었다고들 합니다. 절망에 빠진 파산자들은 운하에 몸을 던져졌다고들 합니다. 마침내 정부가 나섰고, 거래를 중단시켰지만, 네덜란드 경제를 구해내지 못했다고들 합니다.

흥미진진한 얘기 맞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수년간 연구 조사를 통해, “Tulipmania: Money, Honor and Knowledge in the Dutch Golden Age”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다른 얘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분명 얘기는 달랐습니다.

  • 이 글을 쓴 “Anne Goldgar”가 바로 위 책의 저자입니다. 현재 영국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근대 역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영화 “Wall Street: Money Never Sleeps”에서 튤립에 대해 말하고 있는 고든 게코>

튤립 열풍은 비이성적이지 않았습니다. 부와 무역망을 급속히 넓혀나가고 있던 네덜란드에서 튤립은 새로운 명품이자 사치품이었습니다. 이 명품을 살만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튤립은 아름답고, 이국적이며, 향기가 좋았기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은 상인층의 장식품으로 애호되었습니다. 많은 이들 튤립을 구입하는 한편, 그림도 구입했으며, 조개껍질 같은 희귀품을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가격은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줄무늬 또는 얼룩무늬 꽃잎의 튤립이 특히 인기가 높았습니다. 이런 튤립을 재배해 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을 손에 넣기 위해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얻기 위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을 비이성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튤립 열풍은 광란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튤립 구근 거래의 상당 부분은 증권 거래소보다는 주점에서 그리고 이웃들 간에 비교적 조용히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기업들이 다양한 지역에서 튤립 구근의 재배, 구입 및 판매를 시작하고, 전문가들의 위원회가 조직되어 거래를 감독하게 되자 거래는 점점 더 조직화되었습니다.

튤립 구근이 고작해야 5번 이상 손을 거쳤다는 얘기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수백 번 거래되었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서너 번 이하로 손을 거친 것이었습니다.



<Michiel Jansz van Mierevelt, 'Double portrait with tulip, bulb, and shell', 1606>

그리고 튤립 열풍에 대한 허황된 전염병 효과도 없었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1636년 동안 전염병이 발생하긴 했지만, 가장 최대의 가격 상승은 1637년 1월 일어났습니다. 이 시기는 전염병이 쇠미해가고 있던 때였습니다. 아마도 재산을 상속받은 일부가 튤립 구근을 사려고 돈을 조금 떼놓은 정도였을 것입니다.

가격이 높았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비싼 튤립 구근의 가격이 약 5,000길더(잘 꾸며놓은 집 한 채 가격)였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튤립 구근을 사는데 300길더(숙련공의 대략 1년 치 임금) 이상을 쓴 사람은 단 37명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의 구근이 훨씬 저렴했습니다. 한두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상위 구매자들은 부유한 상인층 출신이었기 때문에 구근을 살만한 여유가 있었습니다.

구근 거래에 굴뚝 청소부나 직공 등 모든 이들이 뛰어들었다는 것도 사실과 거리가 먼 얘기입니다. 숫자도 비교적 작았을 뿐만 아니라 주로 상인층과 숙련된 예술가 계층이었습니다. 구매자와 판매자 대부분은 서로 혈연, 종교 또는 이웃으로 연결되어있었습니다. 판매자는 주로 아는 이들에게 팔았던 것입니다.

시장이 붕괴된 것은 순박하고 잘 모르는 이들이 시장에 들어와서가 아니라, 공급 과잉과 1637년 들어서 첫 5주 동안 크게 상승했던 가격이 지속 불가능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구할 수 있는 구근도 없었습니다. 전부 땅속에서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또 5월 또는 6월경에 구근이 인도될 수 있을 때까지 자금이 교환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2월의 시장 붕괴로 자금 손실을 본 이들도 단지 개념적으로만 그러했습니다. 나중에 돈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1636년 여름이후 장부상으로 튤립을 구매하고 판매했던 이들 누구도 손실을 보지 않았습니다. 지불을 기다리던 사람들만 곤란에 빠졌고, 이들마저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Hans Bollongier, 'Floral still life', 1639>

운하 몸을 던져 목숨을 버린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튤립 열풍으로 치명적인 재정적 손실을 입어 파산했다는 사람을 단 한 명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만일 튤립 구매자와 판매자가 파산 기록에 오르려면, 이들이 그로 인한 파산으로 다른 이들에게 보유 주택과 물품을 매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록이 없다는 것은 여전히 쓰고 살만한 돈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네덜란드 경제도 완전히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정부"(연방 네덜란드 공화국이었으므로 적절한 용어는 아님)는 거래를 중단시키지 않았고, 실제로 분쟁을 해결해 달라는 일부 거래자들과 시의회 요구에 천천히 그리고 망설이듯 반응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지방 법원은 이들에게 스스로 대화를 통해 해결해 볼 것을 권유했고, 법원은 관여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정부 규제 같은 건 없었던 셈입니다.



<Jan Brueghel the Younger, 'Satire on Tulip Mania', c1640>

그렇다면 왜 이런 신화 같은 얘기가 지금까지 이어진 걸까요?

몇 명의 작가와 이들이 펴낸 베스트셀러 탓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장이 붕괴된 후인 1637년, 풍자적인 노래를 즐기는 네덜란드 전통상 이 얘기를 풍자한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고, 여기에 참여한 이들을 조롱하는 그림이 나돌았습니다.

이런 내용이 17세기 후반 작가들에 의해, 그리고 이어 18세기 후반 독일 역사 작가들에 의해 개작되었고, 그런 글들이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자, 다시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영어로 번역된 책이 바로 찰스 맥케이(Charles Mackay)가 1841년 펴낸 “Extraordinary Popular Delusions and the Madness of Crowds(번역서: 대중의 미망과 광기)”였습니다. 이 책 역시 엄청난 인기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맥케이가 튤립 열풍에 대해 말한 내용 중 상당 부분은 1637년 당시의 풍자 노래에 바로 그대로 나온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 내용들이 금융 관련 웹 사이트, 블로그, 트위터 및 “A Random Walk down Wall Street(번역서: 시장 변화를 이기는 투자)”같은 인기 금융 서적에서 그대로 끊임없이 반복 인용되게 됩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듣고 있는 내용은 17세기 상황에 대한 17세기 사람들의 공포를 들려주는 것뿐입니다.

실제로 시장을 붕괴시킨 것은 시장에 새로 온 사람들 때문이라거나, 튤립 구근을 거래하던 이들의 어리석음과 탐욕이 과도해서 때문이라고 다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점과, 부의 분배의 거대한 변화로 인해 나타난 사회적 및 문화적 변동은 당시에도 두려움이었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두려움입니다.

투자자들에게 어리석은 짓하지 말라고 경고하거나, 누군가 좋은 것이라고 떠드는 곳에는 다가가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한 수단으로 튤립 열풍이 계속해서 거론될 것입니다.

하지만 튤립 열풍은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봐야 할 역사적인 사건이지, 비트코인을 “튤립 열풍 2.0”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출처: The Conversation, "Tulip mania: the classic story of a Dutch financial bubble is mostly w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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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또한 사료와 다른 학술자료를 찾아본 결과 튤립 거품은 있었지만 그것으로 네덜란드의 경제가 폭망했다는 결론까지는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튤립에 대한 투자는 네덜란드의 당시 상업, 금융, 무역적 특수성에 힘입어 새로운 투자 가치 상품을 발굴해낸 자본가들에 의해 주도된 것이고, 거기에 따른 투기과열양상을 서민들의 본격적인 진입이 야기한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더군요.
다만 그 사건으로 인해 네덜란드가 유럽의 무역과 금융 주도권에서 밀린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생각했던 것처럼 네덜란드가 알거지가 되어서 몇 세대에 걸쳐 경제 부흥을 다시 해야했다는 기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없었습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얘기와는 많이 달랐어요.
south sea의 경우에도 과욕을 부린건 투자자들이 아니라 The South Sea Company의 헛된 과욕이 원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구요.
또 한가지, 사람들은 튤립 광풍이 꺼진 이후로 네덜란드 전역에 튤립이 쫙 깔려 진정한 튤립의 나라가 된 것을 알면서도 간과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처음에는 여러 주위 사람에게 말해주다가, 정보에 제대로 접근하려고 하지 않고 단편적인 것만 흡수하고 판단하려는 군중심리상, 그런 것들에 세세하게 사람들에게 얘기해봤자...
언론급의 전파 능력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얘기해도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기에 그냥 차라리 입다물고 저만 알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

본문과 oprth님의 댓글을 읽고 나니 튤립 버블이란 것에 대해 시야가 넓어졌네요~~~ㅎㅎㅎ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

저 또한 많이 배우고 갑니다. 팔로우하고 업보트하고 갑니다. 감사드립니다.

·

기존의 "튤립 열풍"은 "튤립 혁명"으로 직시해야되겠네요~

두분 모두께 보팅하고 갑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pius.pius님 안녕하세요. 모찌 입니다. @joeuhw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튤립열풍이 꺼지고 네덜란드에게 진짜로 남은 건 고부가가치의 원예사업이라는 걸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요... 네덜란드가 화훼 수출이 세계 52%에 달합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

이게 버블의 핵심인것같아요
튤립버블은 네덜란드에 원예사업을 남기고
철도버블은 철도를 남기고
닷컴버블은 it기업들을 남겼죠

정말 좋은 포스팅입니다. 보는 시각이 넓어진 느낌입니다.
포스팅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와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ㅎㅎㅎ
17세기의 FUD 네요 !

재밌게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오호... 튤립 버블이라는게 그런 뒷배경이 있었군요.

와 몰랐네요!!!!!! 역시 아는게 힘입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됐네요...^^ 번역 감사드립니다. 자주 놀러오겠습니다.

역시 피우스님 ! 새로운 사실을 알고 가네요 결국 튤립버블은 있었지만 감당할만한 것이였고 확대 해석한 내용이였군요

역시 사람들은 자신이 유리한 이야기만 편향시켜서 말하는 경향이 있네요 @홍보해

잘 봤습니다.

뻑하면 튤립얘기하는 인간들한테 똥이나 한바가지 싸주고 싶군요.

11giphy.gif

·

ㄷㄷㄷㄷㄷ

감사합니다, 매번 상식을 깨는 이야기를 올려주시네요

좋은 이야기 너무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저녁 되시길 바래요

가상화폐 얘기할때마다 튤립이니 뭐니 하는 친구들에게 아무리 얘기해도 통하질 않았는데 그 튤립버블 자체가 거짓이었군요... 다음에 만나면 강의하듯 줄줄 읊어줘야겠습니다 ㅎㅎ

아~~~ 지금까지 튤립 버블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잘못된 상식이었다니 정말 놀랍네요~~~!!!!! 좋은글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포마케팅은 공공연한 수단이 되었지요.
튤립버블이니 뭐니 하지만 실체가 없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좋은정보 감사합니다.

매우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제 선배이신 유시민 작가님께 이글을 보여드리고 싶네요.
리팔보댓합니다.

사람들이 인식이 빨리 바뀌어야 할텐데요

nice post, follow ajaa23 share steemit

감사합니다. 지금 좀 바빠서 쑥 한번 훑어 보고 갑니다만 시간을 내서 찬찬히 읽어 보겠습니다. 보팅하고 리스팀 하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2년 전

튤립 얘기 나올 때마다 깝깝하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상식’은 상식이 아닌 것이 많습니다.

언젠가는 사실이 알려지겠네요.
모르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알고있던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이군요 그게 허구였다니...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깔끔한 글을 보니 더 좋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상당 부분 사실과는 다르군요?
생각해보면 지금처럼 거래할 수 있는 곳이 다양하지도 않았을 거고요
네덜란드 사람들은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네요 ㅎㅎ

·

그 사건에서 튤립이 유통된 핵심을 알아야 하는데요, 증권의 성격이 아닌 현물에 대한 미래를 걸고 하는 도박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거래소가 없었고, 술집처럼 당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거래와 중개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현물이 있을 필요도 없었죠. 개화시기는 일년에 단 한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계약서상으로만 구근과 재산을 걸고 거래하는 특이한 상황이 된거구요.
튤립 광풍이 문제가 되자 그제서야 네덜란드 정부도 그 시장을 정부에서 통제해야 된다는 걸 깨닫고 적극적인 규제를 시행했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선물시장입니다. 튤립광풍은 몇백년 전에 꺼졌지만 선물시장은 지금도 남아있죠.

과장된 억측 이야기가 살에 살을 더하면서 부풀려진 것들이 상당히 많았군요.

튤립버블에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흥미롭네요. 잘 읽었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팔로우하고 업보트하고 갑니다.

많은 안목이 돗보이는 글 이네요^^ 팔로우 합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네요.
자세한 소개 고맙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암호화폐를 부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드는 예죠. 주변 사람들에게도 지겹게 들었습니다. ㅎㅎ 그나저나 저 역시 튤립=투기의 대명사라는 인식이 박혀있었는데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는 전혀 몰랐네요. 잘 보고 갑니다!

오~~~~ 정확한 자료들을 통해 꼼꼼하게 알려주져서 감사합니다!

그놈의 뇌피셜과 소설이 문제네요.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인디언 추장의 편지 같은 것도 전부 소설이라죠. 학교다닐때 언어 지문으로도 보고, 책중에 '나는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같은 책도 나오고 했었는데요. 그게 다 뻥이라죠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팔로우하고가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인기를 끌자 튜립 투기를 광풍으로 설명하면서 폭락할 것이니 투자/투기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과 글을 들은적 있습니다.
그런데 몰랐던 내용이 설명되어 재미있네요.

사실(fact)가 뭔지 더 공부해 보기로 했어요/

에르메스, 샤넬, 구찌....
20세기로부터 수십 년에 걸쳐 핸드백 하나가 노동자 수년치 월급에 거래되는 것은 튤립버블 1.5인가요?
17세기 당시 식민제국주의 시대의 주요 무역대상은 차, 곡물, 향료, 담배, 대마, 아편 등 농산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해외 농산물 쟁탈전의 시대였죠.
이 벌키(Bulky)한 재화를 실어 나를 효율을 연구한 끝에 그 무렵 얼마 지나지 않아 증기기관이 생겨난 것이구요.
현미경도 발명되기 이전이니 생물학은 철학이나 미신에 가까운 수준이었겠죠.
유전학이 시작되기 약 200년 전인 이 시절, 새로운 품종의 꽃은 기적의 증표이며 하이테크의 경이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다른 풍토와 기후 조건 하에서 어떤 농작물이던 대량제배 자체가 불가능했고 유전학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만의 하나’식 식물교배는 수많은 실험을 요했고 성공은 과학적 계산에 의하기보다는 우연의 산물일 정도였습니다.
1602년 아메리카 대륙으로 처음 이주한 청교도 Pilgrim Fathers들이 영국에서 가져간 종자로는 작황이 전혀 없어 원주민들의 구호에 의존하여 살아 남았던 사례에서 당시의 농업기술이 어떤 수준이었는지 잘 알 수 있죠.
당연히 중산층이 태동하고 종교적 이상보다는 현세의 행복이 중시되던 르네상스의 절정기였던 당시, 명화, 고예술품, 튤립 등 부의 상징물(지금의 명품 핸드백이나 슈퍼카)에 대한 수요대비 공급은 절대 부족이니 가격이 천정부지였던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죠.
그냥 단순히 고전경제학의 기초이론인 수요와 공급 상 불균형의 결과였던 겁니다.
특히, 튤립 구근 수요는 시들어 사멸하는 시효적 소비재인 꽃이 대상이 아니라 이를 묘종하면 지속적으로 대량 작황을 기대할 법도 한 생산재로서의 투자대상이었던 겁니다.
그냥 꽃 한송이 값이 아닌거죠.
더우기 튤립은 파종한지 6~7년이 지나야 꽃을 피웁니다. 이 튤립의 재배가 얼마나 하이테크인지 아래 두산백과에서 참조한 튤립의 재배법을 대충 읽어 보시죠...

[네이버 지식백과] 튤립의 재배 (두산백과)

번식은 종자를 9월에 파종하면 6∼7년이 지나야 꽃이 피므로 주로 알뿌리나누기로한다. 절화를 재배할 때에는 큰 구(球:11∼14cm)를 쓰는 것이 좋다.

① 보통재배:토질은 점질양토가 좋으며 배수가 잘 되지 않는 곳에서는 썩는다. 건조하고 유기물이 부족한 곳에서는 정상적으로 자라지 않으며, 바이러스에감염되기 쉽다. 10월에 노지에 비늘줄기를 심는데, 재식거리 15∼18cm, 깊이 6∼9cm가 알맞다. 유기물을 충분히 주어야 하며 심은 뒤에는 피복을 하는 것이좋다. 빠른 것은 3월, 늦은 것은 5월에 꽃이 피는데, 보통 한국 기후에서는 비늘줄기를 다시 쓸 수 있게 키우는 것은 힘들며 겨울이 춥지 않고 습기가 많아야한다.

② 촉성재배:꽃이 피게 하는 시기에 따라 촉성과 반촉성으로 나누는데, 낮은 온도에민감한 품종을 써야 한다. 비늘줄기는 충실한 것을 소독하여 냉장처리를 하고, 처리가 끝나면 곧 심는다. 촉성재배일 때는 온실 베드의 전후작 관계로 얕은 상자에심는 것이 좋으며 10∼12cm 간격으로 비늘줄기의 머리가 흙 위로 약간 올라오게한다. 심은 뒤에는 서늘하고 그늘진 곳으로 옮기고 가끔 물을 주며, 온실에 넣은뒤에는 9cm 정도로 자랄 때까지 15℃ 정도의 온도를 유지한다. 촉성재배에 알맞은품종은 다윈계의 윌리엄 피트·레드와 멘델계의 아슬리트, 코티지계의 골든하베스트 등이다.

읽어보셔서 감 잡으셨겠지만 튤립 열품이 시든 것은 튤립에 대한 광기 즉, 버블이 폭발해서가 아니라.... 생각보다 튤립이 재배가 어려웠고 작황이 투자에 비해 나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성공 확률이 오늘날 우리가 늘상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고 있는 바이오 관련 기술과 투자에 비해서는 훨신 높았을텐데도 말입니다.

조선에 이앙법이 시작된 것이 그 무렵입니다.
그 200년 전에는 문익점이 목화씨를 밀수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당시의 신농법과 신품종은 지금의 A.I.나 로봇에 버금가는 경이와 공포의 대상이었던 시절이며 누군가는 그 신기술을 위해 목숨 값을 치뤘던 시절의 얘기입니다.

절대로 버블로 괄시할 만한 역사가 아니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