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의 탄생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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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의 탄생

취재차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처마마다 뚝뚝 떨어지는 경향 각지의 흉가들을 답사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귀신들은 대구 근처의 한 산기슭, 지금은 현대식 병원으로 탈바꿈한 옛 공장 터에 출몰한다는 이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똑똑히 안다. 그들이 나타났다는 옛 공장 터 뒤편에는 오래 전 폐광된 코발트 광산의 갱도 안에서 나는 그 귀신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동굴 안에는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수백 구의 백골들이 작은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백골들의 주인은 낙동강 전선의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는 가운데 이 골짜기로 끌려 왔던, "좌익으로 판정된" 보도연맹 소속 민간인들이었다.

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 61년이다. 귀신들은 이미 힘이 빠졌고 흉가들은 머지않아 포크레인 삽날에 부서져 나갈 것이지만, 그 섬뜩했던 전쟁의 논리는 과연 사라졌을까. 유감스럽지만 대답은 아니오이다. 바로 한국전쟁보다도 먼저, 1948년 12월 1일 탄생했고, 끔찍했던 그날 허공 위를 떠돌며 학살을 독려했던 국가보안법이라는 귀신의 송곳니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가운데에서도 그 악명이 드높은 제 7조는 “국가의 존립 ·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 고무 · 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 · 선동한 자”를 처벌한다고 선언한다. 누군가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치자. 그런데 그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재간이 없는 다음에야, “국가의 존립과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를 어떻게 판단한단 말인가. 결국 이놈의 법은 집행하는 자의 주관적 판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대구의 코발트 광산 동굴 속에서 수천 명의 사람이 죽어야 했던 이유가 “저들은 위험할 수 있다.”는 예단이었던 것처럼.

전쟁 때나 그렇지 21세기 대명천지에 그런 일이 또 있겠느냐며 손사래를 치는 분들께는 2005년께에 불거졌던 교육청의 ‘전시(戰時) 학도호국단 운영 계획’이라는 문건 한 구절을 읽어 드리는 게 좋겠다. 이 문건은 “좌경학생에 대한 특별지도를 실시하고 교원 및 교직단체에 대하여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며...... 순화가 곤란한 학생은 관계기관과 협조하여 격리 조치해야 한다.......”고 똑똑히 기록하고 있다. 전시에 행해지는 특단의 대책은 무엇이며, 학생이 좌경인지 아닌지는 또 어떻게 되며, 격리조치의 근거는 무엇일까. 필시 ‘그날’이 오면 교육청이 끌어올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국가보안법 외에 따로 없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의 귀신은 항상 이런 식으로 우리의 등 뒤에 도사리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수십 년에 걸친 야만과 저항의 시대, 국가보안법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파괴했다.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를 인정해 주었다는(또는 남한 정부가 그렇다고 우기는) UN이 이제 그런 법은 버려도 된다고 충고해도, 심지어 미국 정부가 흉을 보아도, 수천 명의 청춘과 목숨을 걸고 악법 폐지를 절규했어도 국가보안법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이 쇠심줄 같은 국가보안법의 생명력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 요체는 김종필의 능글맞은 질문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싶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불편한 사람 있느냐?”

있으면 손 한 번 들고 나와 보라, 얼굴 한 번 보자고 들이미는 저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태연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들의 역사였다. ‘불편’한 자는 곧 ‘불온’한 자의 동의어였고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딱지는 “네 생존이 의심스러울 수 있다”는 협박이었기 때문이다. 즉 공포는 국가보안법의 존립 근거이자 생존 방식이자 공수겸용 무기였다. 심지어 국가보안법의 희생자가 되어 사형대에 목이 매달릴 뻔했던 이가 대통령이 되었어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슬래셔 무비의 잔인함은 줄어들지 않았다. 하키 마스크를 쓴 제이슨 국보법은 무시무시한 도끼를 들고 히죽히죽 웃으며 거리를 누볐다. “너 나 무섭니?” 그리고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수는 전직 사형수의 정권 때에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지금도 공중파 방송사가 명절마다 틀어주는 영화 <실미도>에서는 극장에서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었던 ‘적기가’를 엉뚱한 음악으로 덮어 버린다. 이적단체를 고무 찬양한다는 시비를 피하기 위해서다.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우리는 역대 흥행 기록 몇 위를 자랑하는 영화를 원판 그대로 관람하지 못한다.

법정에서 김장군 만세를 부르짖는 사람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를 처벌하고 그 생각을 가둔다고 그런 부류가 없어진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 못해 절망적이다. 맞아 죽고 불에 타 죽고 사자에 뜯겨 죽는다고 기독교가 수그러들었던가. 사이비 종교에 빠진 이들이 부모가 쇠사슬로 묶어 놓아도 그걸 질질 끌면서 자기가 섬기는 사기꾼들의 품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지도 못했던가. 사람의 머리가 법이라는 자물쇠로 채워지는 사립문 같은 존재였던가.

“그들을 아예 북한으로 보내 버려야 한다.”고 흥분하거나 “전쟁 나면 우리 뒤통수를 칠 놈들”이라면서 죽여 버려야 한다고 이를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의 쇠귀신이 히죽거리는 모습을 본다. 인간의 본원적 가치의 간을 꺼내고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찢어 죽이는 흉악한 귀신. 그 귀신은 아직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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