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데스노트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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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썸데이TV - 우리 현대사의 데스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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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정신병의 증상 가운데 '쓰레기 수집'도 있어요. 대관절 사람의 뇌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열이든 강박이든 어떤 원인에 의해 그 회로에 이상이 생기면 세상의 모든 쓰레기들이 다 아까와 보이고, 심지어 음식 쓰레기까지도 애지중지 모아 두게 된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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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머니에 대한 제보가 왔어요. 무슨 피난민처럼 머리에 장대한 봇짐을 이고 등에는 잡동사니 그득한 배낭을 메고 시장을 쏘다니며 구걸도 하고 냉이(?)도 판다는 할머니였어요. 아니 할머니도 아니지 법적으로는 2007년 당시 예순 둘 밖에 안되었으니니까.
할머니를 따라다니다가 그 집에 갔을 때 나는 괴기 영화 세트와 맞닥뜨려야 했어요. 문을 연 순간 망연했던 게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만큼 쓰레기가 들어차 있고 오징어 썩는 냄새 비슷한 역한 냄새가 코를 유린하고 들어오더군요. 형광등 줄 끝에는 작은 인형이 달려 있었는데 그 인형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괴물 거미 쉴롭의 거미줄에 칭칭 감겨진 프로도 베긴스처럼 거미줄에 빈틈없이 싸여 있었어요. 집이 좁으니 쓰레기 양은 다른 곳보다 적을 수 있었지만 쓰레기 밀도(?)는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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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 가건물 올리고 사는 며느리는 사연 얘기를 하며 실실 웃어요. "아무리 말려도 어머니가 안들으시니까.. 호호.... 저희도 치워 봤는데 호호..... 노다지 다시 쌓아놓으시니까 포기했죠 호호....." 이상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해서 한 마디 던져 봤어요. "그래도 잘 웃으시네요." 그러자 며느리의 눈에선 바로 닭똥같은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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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라도 안하면 바로 미쳐 버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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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주버니네, 즉 큰아들네는 이미 할머니 때문에 이혼한 상황이었고 어머니를 끼고 사는 둘째 아들네도 형편이 어려웠어요.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사는 상황인데다 할머니 때문에 친정과는 발 끊고 살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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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병원에 모시려고 해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처지에 엄두가 안나고, 부양 가족이 있으니 의료 혜택을 받기도 무망했던 겁니다. 할머니가 모아오는 쓰레기를 버리기도 하고 쌈박질도 하고 악도 써 봤지만 헛수고일 뿐, 1층 할머니의 방은 쓰레기천지가 되어 갔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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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랬는가. 들으니 기구하고 거듭 새기자니 처량합니다. 어려서 식모 살이를 했던 어머니는 일종의 결혼 사기를 당했습니다. 버젓이 애 있는 홀아비가 총각 행세를 했던 거지요. 그래 놓고는 두들겨 패기를 다반사로 했고 아들의 기억으로는 생활비를 주지 않아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직장을 찾아간 어머니를 아버지가 각목으로 머리를 때려서 그 자리에서 실신해서 병원에 실려가기도 한 적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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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은 그때부터 이상해진 거 같다는 말을 하더군요. 이혼을 하고 혼자서 두 아들을 키워가던 어머니는 악을 써서 돈을 모았고 변변치는 않지만 집도 두어 채 장만했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아버지 다른 여동생이 그만 이 두 집을 홀랑 사기쳐 먹고 말았다지요. 어머니는 방안에 틀어박혀 누구에겐지 모를 욕설을 퍼부으며, 며칠을 뒹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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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둘 먹여 살리느라 악착같이 살아가던 어머니는 그 과정 속에서 점차 이상해졌대요. 자꾸 뭔가를 모아 오고, 아무리 봐도 쓸데가 없어 뵈는 물건들을 주워서 쌓아놓더라는 거지요. 언젠가 쓸모 있을 것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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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꾸 개입하고 만류하니까 홀연 할머니가 사라지셨어요. 아직은 추운 겨울인데 행여 어디 가서 얼어죽지나 않을까 걱정이 백두산이었지요.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 본들 바람같이 오가는 할머니가 어디에 있는지는 국정원도 모를 거 같더라고요. 그때 아들이 고향 얘기를 했어요. 좀체 안가시기는 하는데 가끔 고향에 움막같은 곳에서 발견되기도 했다는 거예요. 득달같이 달려갔더니 할머니가 그곳에 계시긴 하더군요. 간 김에 할머니의 과거를 물어 봤어요. 아들들이 모르는 과거...... 거기서 뜻밖의 얘기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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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버지가 보도연맹으로 죽었어요. 큰집에서 크다가 나이 열댓 먹었을 때 대처 식모로 보내뿠지요. 불쌍한 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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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의 동네였습니다. 전황이 국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낙동강 전선이 형성되기 전, 후퇴하는 국군과 경찰은 왕년의 좌익 혐의자는 물론 그 언저리를 모아 묶어 세웠던 보도연맹원들을 학살했습니다. 그 수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아마 영원히 모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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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부모 잃고 식모로 보내져 버린, 살겠다고 아득바득 살아보다가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고 핏줄에게 배신당한 채 쓰레기를 살림으로 굳게 믿어 버리게 된 할머니. 그래서 끝내 자신의 불행을 아들들에게 유전시키고 있던 할머니..... 할머니의 사주팔자가 궁금해지지 않나요. 어떻게 이렇게 기구할 수가 있단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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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으로 모시려고 할머니를 설득했을 때 할머니는 완강했습니다. 나를 때리려고도 했고 자식에게는 호통도 쳤지요. 도무지 설득이 먹혀들지를 않았어요. 물론 설득이 통할 정도면 그 지경이 안됐겠지만. 별 수 없이 강제로 모실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앰뷸런스가 도착하고 이송 요원들이 할머니 앞에 이르렀을 때 전혀 황당한 일이 벌어졌어요. 할머니의 표정과 말투가 돌변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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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돌변했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궁금하시면 잠깐 동영상을 보시고 돌아오십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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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얘기하면서 할머니는 서럽게 울었어요. 그 울음을 들으며 내 머리 속도 참 많이 헝클어지더군요. 민간인 학살은 히틀러만 한 것이 아니고 좌익 빨갱이들만이 한 것도 아니며, 정통성 있다고 자부하고 "UN에 의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인정받은 정부에 의해서도 자행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제는 까마득해 져 버린 듯한 과거가 이렇게 오늘의 비극과 맥이 닿아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범상할 수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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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거 하나는 기억해 둬야 할 거 같아요. 일본 제국주의가 학살의 형태로 죽였던 조선인들의 수...... 그러니까 의병 전쟁과 3.1운동 진압과 간토 대지진과 경신대참변 등에서 죽여없앤 조선인들의 수보다 더 많다고 추정되는 사람들이 6.25가 시작되고 한 달 사이에 죽어갔다는 사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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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중인 군인도 아니었고 반 대한민국 봉기를 일으킨 것도 아니었고, 이적행위의 현행범도 아닌 사람들이, 재판도 없이 변호도 없이 꾸역꾸역 실려와서 차례차례 죽어가서 차곡차곡 쌓여져서 두리뭉실 처리되었다는 거예요. 빨갱이들이 그만큼 지독했으니 그런 거 아니냐는 소리 하지 마세요. 빨갱이들이 지독했다는 것이 우리가 악마가 된 사실을 합리화하지는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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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범죄의 시발인 '국민보도연맹'이 1949년 6월 5일 ...... 설립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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