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귀해지고 종교가 거듭나는 시간

2개월 전
in kr

인간이 귀해지고 종교가 거듭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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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얘기해준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은 6세기 중반 발병 후 약 200년 동안 지역적인 유행을 되풀이하다가 8세기 중반, 즉 서기 750년의 유행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말이 200년이지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고 보면 거의 7대에 걸쳐 그 무서운 감염병을 직간접으로 경험했다는 얘기야. 그로부터 오랫동안 유럽 사람들은 페스트의 공포에서 벗어나 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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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늘어나고 생산력은 증가했다. 11세기에는 유럽 대륙에서 인구 5000명 이상의 도시가 드물었어. 하지만 14세기에 이르면 독일에만 인구 1만명 이상의 도시가 14개였고, 몇몇 대도시는 10만 이상의 인구를 보유하기에 이르렀지. 즉 사람들이 밀집해 살며 인구밀도가 높아졌다는 뜻이야. 그 인구를 소화할 상하수도 시설이나 위생 관념은 최악이었고, 사람들은 극도로 불결한 환경 위에서 일상을 영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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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족인 몽골 사람들은 농경민들의 삶을 경멸하며 이런 표현을 썼지. “제 똥 위에서 구르고 사는 족속들!” 유목민으로서 가축이 먹을 풀을 찾아 초원을 누비는 그들로서는 사람과 짐승들의 똥 더미와 함께 살아가는 정착민들의 삶이 역겨웠던 거야. 하지만 13세기, 말 위에서 세계를 정복한 몽골인들은 곧 말에서 내려 세계를 통치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태평양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을 묶은 ‘팍스 몽골리카(몽골제국 치하의 평화)’를 구가하게 돼. “몽골의 치세 아래 그 누구든 어떠한 폭행도 당하지 않은 채 황금 쟁반을 자기 머리에 이고 해가 뜨는 땅에서 해 지는 곳까지 여행할 수 있다”라고 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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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때껏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계화’였어. 그러나 몽골이 이룩한 세계화는 그 악명 높은 페스트 유행을 다시 불러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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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페스트는 몽골제국의 영토를 가로질러 유럽 대륙까지 삽시간에 퍼져나갔어. 페스트는 단순히 전염력만 강한 게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시간도 가히 상상 이상이었지. 페스트를 피해 시골로 달아난 남녀 10명이 각각 10개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서술된, 근대소설의 효시라 할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는 이 상황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아주 건강한 젊은이도 아침에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저세상에서 조상들과 만찬을 했다.” 페스트는 이후 17세기 중반까지 수시로 유행하며 사람들에게 페스트와의 일상을 강요했지. 페스트 이전 시대는 결코 페스트 이후의 세상과 같지 않았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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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상다리가 부러지면 진수성찬도 쓸모없고, 소작인이 없는 지주는 굶어 죽는 법이야. 죽음의 역병 페스트는 역설적으로 ‘사람값’을 귀하게 만들어줬단다. 1340년대 초, 즉 페스트가 덮치기 이전 영국의 옥스퍼드셔 장원에서 일하던 농부는 겨우 2실링을 받았지만, 10년쯤 뒤에는 10실링 6펜스를 임금으로 챙겼다고 기록돼 있어. 그만큼 ‘귀해진’ 농민들은 “아담이 경작하고 이브가 길쌈할 때, 귀족과 평민이 있었을까?(농민들 편에 선 성직자 존 불의 설교)”라고 외치며 귀족들에게 저항할 수 있게 됐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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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영주뿐만 아니라 유럽의 중세를 지배한 교회도 힘이 빠졌어. 처음 재앙이 닥쳤을 때, 신자들은 교회에 재물을 바치며 페스트를 물리쳐주십사 기도했으나 알다시피 모든 기도는 헛되었지. “믿음으로 코로나를 극복하자”라고 외치던 한국 교회들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것처럼 말이야. 성직자들도 당연히 엄청나게 죽었어. 프란시스코파 수도회에서만 수도사 12만5000여 명이 희생됐다고 발표했을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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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해봐도 효험이 없으니 교회에 대한 불신이 쌓여갔고, 환자 곁을 떠나지 않은 신실한 성직자들이 무더기로 죽어가는 참사로(사망률이 가장 높은 직군 중 하나가 사제였다고 해) 자질도 인덕도 갖추지 못한 날치기 성직자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돈이면 사제도 되고 주교도 되고 교황도 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러니 교회가 부패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최주훈, 〈뉴스앤조이〉, ‘루터가 남긴 종교개혁의 유산’)”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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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교회를 향한 반발 속에서 루터는 교황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며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어올린다. 루터는 라틴어로만 쓰여 있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하는데 이건 실로 대담한 행동이었어. 루터가 종교개혁을 주창한 바로 그해인 1517년, 영국에서는 주기도문을 영어로 번역해 아이들에게 가르쳤다가 온 가족 일곱 명이 화형을 당한 일이 있었다면 그 의미를 짐작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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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럽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은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를 통해 유럽의 대중에게 퍼졌단다. 중세 천 년 동안 성경의 해석자는 라틴어를 읽고 쓰는 사제들뿐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든 글자만 깨치면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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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여 페스트가 이른바 ‘대항해 시대’를 앞당겼다는 주장도 있어.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항상 위험한 일이었지만 사망률이 높은 전염병이 내륙에 창궐하자, 사람들은 장거리 항해에 나섰다(〈BBC 코리아〉 2020년 3월22일)”라는 것이지. 그렇게 습득한 기술과 정보를 바탕으로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발을 디뎠고 말이야. 독일 신문 〈빌트〉는 서기 1000년에서 2000년까지 천 년 동안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구텐베르크를 1위, 콜럼버스를 2위, 루터를 3위로 뽑았다(〈동아일보〉 1999년 1월7일). 이 셋 모두 ‘페스트의 소산’이라고 말하면 억지스러울지 모르지만 ‘불완전한 진실’ 정도는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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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되풀이되지만 재연되진 않는다고 했어. 리바이벌은 가능하지만 복사되지는 않는다는 뜻이야. 페스트 이후 사람값이 귀해졌다고 해도, 임금 상승은 결코 쉽게 이뤄진 것이 아니었어. 위에 얘기했던 영국 농민반란 때 영국 왕 리처드 2세는 농민들에게 이렇게 일갈하며 피의 진압을 지휘했으니까. “너희는 농노였고 앞으로도 영원히 농노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때까지 지켜온 특권을 한사코 지키려 했다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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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아빠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코로나 이후 언택트니 재택근무니 하는 개념이 생기면서 “노동자가 지금처럼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회사가 알아버렸다”라는 얄미운 발언들이 나오고 있지. 그런데 그 ‘필요 없는’ 노동자들이 경제력을 잃으면 과연 그 회사는 누구에게 그 물건을 팔 수 있을까. 일 시킬 농노를 잃어버린 영주의 신세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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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뉴노멀’에서 우리가 필사적으로 고수해야 하는 것은 휴머니즘이라는 생각이 들어.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는 결과만 만들 것이다. 타인이 없으면 나도 살아남을 수 없다. 두려움의 문화야말로 가장 거대한 바이러스다(안희경 외, 〈오늘부터의 세계〉).” 이 말은 페스트의 시대였던 중세나,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오늘날이나 공통적으로 적용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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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가 휩쓸던 유럽에서 사람들은 병에 대한 공포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증오로 폭발시켰다. 셀 수 없는 유대인들이 찔려 죽고, 타 죽고, 맞아 죽었지.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공포가 혐오로 전이되는’ 현상을 수시로 목격하고 있다. 페스트의 희생을 거치면서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고 좀 더 많은 인간에게 권리를 주는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됐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코로나로 인한 희생과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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