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인간에 대한 예의

2개월 전
in kr

인간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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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부대변인이었다는 조상호 변호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몰라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군사 격언이 있습니다. 심지어 당시는 한미연합훈련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함장 지휘관이 폭침으로 침몰되는데도 뭐에 당했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46명의 젊은 목숨을 잃었구요. 근데 함장이 책임이 없나요?” 그리고 함장에게 부하들을 수장시킨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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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천안함 문제를 구구절절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저 말,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몰라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에 대해서는 좀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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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말은 더글러스 맥아더의 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맥아더 원수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건 도시 전설에 가깝습니다. 만약 맥아더가 했다면 이건 처절한 자기비판의 결과일 겁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맥아더는 부하들의 잇단 충고에도 불구하고 경계를 소홀히 하다가 필리핀 내 미국 공군력을 단 한 번의 기습으로 말아먹은 전력이 있지요. 또 6.25 때에도 중공군에 대한 경계를 아예 없는 셈 치다가 큰코를 다쳤으니 경계에 실패한 것으로 따지면 가장 부끄러운 쪽으로 셋째 가라면 서러울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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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맥아더의 말은 아니더라도 이 말은 맞는 것 아니냐. 아닙니다. 틀린 말입니다. 규정대로 경계를 철저히 하고, 각자 책임을 다했는데도 기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기습을 당한 것을 경계의 실패로 보고 ‘경계 소홀’의 책임을 묻는다면 남아나는 장군도, 장교도, 사병도 아무도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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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침몰했다면 그건 기습의 성공이지 경계의 실패가 아닙니다. 잠수함에게 어뢰 두들겨 맞았다고 함장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는 1차, 2차 세계대전사에 없었습니다. 함장이 술 취해서 근무지를 이탈했다거나 규정된 경계 태세에서 벗어났다는 증거가 없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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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전쟁 중 일본 잠수함에 피격됐다고 해서 경계 소홀로 처벌받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태평양 전쟁이 끝나갈 무렵 일본군 잠수함에 의해 침몰된 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 호였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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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는 비밀리에 원자폭탄을 싣고 온 배였습니다. 그 임무가 비밀이었기에 귀항 과정도 비밀이었고 배의 침몰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며칠을 구명보트와 그에 매달려 떠다니던 생존자들에게 상어떼가 달려들었고 다 끝난 전쟁에서 수백 명이 전사하는 참극을 빚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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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전쟁은 거의 끝났고 이제 집에 돌아올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 가족이 상어밥이 됐다니 누가 책임자냐! 하는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여기서 미 해군은 비겁하게도 함장에게 책임을 미루고 인디애나폴리스 호의 맥베이 함장을 군법회의에 회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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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이는 애타게 물었지요. “그렇게 구조 요청을 보냈는데 왜 응하지 않았습니까.” 해군측의 공식 답변은 ‘구조 요청 없었음’이었습니다. 애초에 군법회의 회부에 반대했던 니미츠 사령관은 맥베이를 원상복귀시키고 제독으로까지 승진시켰습니다. 하지만 수백 명 젊은이들을 상어밥으로 만들었다는 대중의 비난은 계속 그를 괴롭혔고 맥베이는 자살하고 말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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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죠스>에서 상어잡이 어부로 등장한 로버트 쇼는 인디애나폴리스 호의 선원으로 설정돼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한 소년이 인디애나폴리스 호 사건에 대한 조사에 나섰고 그 결과 인디애나폴리스 호 함장의 무고함이 밝혀집니다. 당시 인디애나폴리스 호를 공격했던 일본군 잠수함 함장의 증언은 이랬죠. “그가 경계태세를 소홀히 했다는 유죄 이유도 납득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인디애나폴리스는 어떤 기동을 하든 격침이 가능했던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2000년 클린턴 대통령은 맥베이 함장의 무죄를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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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함장과 승무원들이 ‘어뢰에 맞았다면’ 경계에 소홀했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인디애나폴리스 호가 어쨌든 어뢰에 맞았고 경계에 소홀해서 수병들을 상어밥 만들었다고 희생양으로 만든 것만큼이나 비겁한 행위입니다. 또 ‘한미 합동 훈련 중 어떻게 어뢰를 맞느냐’는 주장은 한미 합동 훈련이 백령도 앞바다가 아니라 170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충남 격렬비열도에서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거나 무시한 처사로서 인디애나폴리스의 구조 요청을 없는 것으로 치부했던 미 해군의 무책임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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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클린턴 대통령이 맥베이 함장의 무죄를 선언한 후 인디애나폴리스 호의 생존자들은 맥베이 함장의 무덤에 찾아가 눈물의 경례를 붙이며 옛 상관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적어도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라면, 그리고 자칭 진보이거나 최소한 수구꼴통들에 맞서는 진영에 서 있다고 한다면, 인간에 대한 예의 정도는 갖춰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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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소홀히 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는 이에게 “부하들을 수장시킨 책임”을 묻는 것은 잔인할뿐더러 비겁합니다. 더구나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어불성설 출처불명의 이야기까지 끌어들여 한 사람을 몰아붙이는 것은 차마 해서는 안될 일일 겁니다. 천안함 46 용사의 명복을 빕니다.
이 얘기는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영상으로도 정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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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호 전 부대변인에 대한 징계가 유야무야됐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부당합니다. 그는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고 그냥 넘어간다면 어떤 망언이 제한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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