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대하여

2개월 전
in kr

사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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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순간이다. 그래서 울림이 크다. 사각 프레임 속 사진 한 장이 수천 마디의 웅변을 능가하고 수백 편의 리포트 영상보다 더 깊숙이 사람들의 뇌리에 파고드는 경우는 차고 넘친다. 1987년 부산 문현동에서 찍힌, 태극기 앞에서 웃통 벗고 질주하며 절규하는 청년의 사진만큼 1987년 6월을 압축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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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사태 당시 조준호 당 대표의 머리채를 모질게 잡아채는 통진당 당권파 여성의 악문 입과 눈초리만큼 당시 통진당 사정을 잘 설명하는 사진이 있을까. 몇해전 구의역에서 숨진 ‘김군’을 추모하기 위해 몰려든 젊은이들이 큰절을 올리는 모습을 부감으로 찍었던 사진 한 장은 메마른 내 누선(淚腺)을 홍건히 적시기도 했다. 사진 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말처럼 “사진속에는 현실이 있고 이것은 때때로 진짜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 불가사의한 힘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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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사진은 순간이다. 그래서 맥락이 없다. 순간의 울림은 크지만 맥락이 사장된 순간은 기나긴 오류와 오해의 출발선이 되기도 한다. 방패를 들고 밀어붙이는 이스라엘 경찰에 한 여성이 온몸으로 맞서는 사진이 퓰리처 상을 탄 적이 있다. 처음 이 사진을 본 나는 당연히 이스라엘 공권력에 처참하게 짓밟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떠올렸고 경찰의 방패 앞에서 힘겹게 버티는 팔레스타인 여성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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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녀는 팔레스타인인이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불법 정착촌, 즉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으려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처음에 느낀 감동이 확 가시는 순간. 그런데 어떤 포스팅에서 그 사진이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여성”으로 둔갑하여 쓰이는 걸 봤다. 사진은 그렇게 악용되기 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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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충분히 많은 것을 설명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말해 주지 않기도 한다. ‘순간’의 모습은 충만하게 보여 주지만 그 순간 전후 사정과 맥락은 알 길이 없다. 순간의 강렬함에 빠져드는 것은 어쩔 수 없으되 순간을 온전한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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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때 현장에서 컵라면 먹던 교육부 장관이 잘렸다. 어수선한 현장에서 컵라면 면발을 삼키는 사진이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유가족들도 밥은 먹었을 것이다. 또 정말 무개념한 걸신이 들어앉은 장관이었다면 현장에서 쭈그리고 컵라면 먹을 게 아니라 어디 은밀한 한정식집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 한 장의 위력은 그 모든 맥락을 추방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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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에게 허리를 굽히는 이명박과 고이즈미와 악수할 때 노무현에게 고개를 숙이는 고이즈미를 대비시키며 당당한 노무현과 친일파 이명박을 논하던 풍경도 마찬가지다. 그저 순간을 포착한 사진일 뿐 이명박의 친일성과 노무현의 민족성을 논할 만한 가치는 없었으나 툭하면 그 유력한 ‘증거’로 소환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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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백 마디 말을 한다. 그런데 맥락이 있는 동영상도 ‘편집’에 따라 악마와 천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데 순간의 프레임을 담은 사진의 백 마디가 모두 ‘진실’일 수는 없다. 더욱이 사진을 ‘증거’로 삼자면 더욱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증거 아닌 핑계, 즉 안그래도 그러고 싶은데 그렇게 만들어 주는 구실을 찾는 일에 다름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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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본 보도사진 중 최악의 사진으로는 극단적 선택을 한 청와대 전 감찰반 장레식에서 조선일보가 찍은 백원우 전 비서관의 모습이다.조작한 것이 아니며 분명 현장의 한 순간이 분명하건만 꼭 그 사진을 선택하여 신문에 실은 이들의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사진이랄까. 영정 앞에서 춤이라도 추고 있는 듯한 묘한 이미지를 기어코 잡아낸 조선일보 쓰레기의 향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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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가는 길에 카메라 플래시가 안터지면 서운한 직업이 연예인과 정치인이라고 한다. 이른바 ‘관종’이 몸에 배야 하는 직업이랄까. 그렇다면 그들은 항상 긴장해야 하는 것도 맞다. 언제 어디서 사진 찍힐지 모르는 사람은 그에 대한 대비를 걸맞게 하고 있어야 하고 상황에 따른 ‘연출’을 생활화해야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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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문제가 됐던 대전 수해 뉴스를 배경으로 한 의원들의 사진은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정치적 실패다. 그러나 수해 났다고 의원들이 모임 못가질 것도 아니고 국회의원이 수해현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개인적으로는 그 바쁜 현장에 나가서 브리핑받는 놈들은 한 대 때리고 싶더라)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 사진 한 장으로 푹푹 고아 며칠을 우려먹는 일에는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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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사진일 뿐이다. 그들의 웃음과 엄지척 전에 어떤 진지한 논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들려주지 않으며 그들의 수많았던 시간(?) 중 한 프레임을 담아냈을 뿐이다. 여기서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식견(?)이 적용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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