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절 촛불이란 무엇인가

지난달
in kr

촛불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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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술 한 잔 한 김에 서울대 김영민 교수님의 저명한 칼럼을 대놓고 컨닝하고 그 형식을 차용한 것임
술 몇 잔 먹다가 관심을 끌고 싶은가. 그리고 대충 나이대 비슷하고 최소한 박근혜 불쌍하다는 인간들은 없다 싶은가. 그러면 술 한 잔 쭉 들이키고 말해 보라. “촛불 정신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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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술 먹던 사람들이 잔 내려놓고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당신을 쳐다볼 것이다. 촛불 들고 나온 사람들은 대개 촛불 정신에 대해 고민해 본 적 없다. 촛불 정신이 무엇인지보다는 촛불을 켜는 행위가 내가 싫어하는 누군가를 해롭게 하며, 내가 혐오하는 누군가에게 압박이 될 것이고 나아가 그 사람을 치워 버려야 한다는 당위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희망에 더 충실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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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가 그 좋은 예다. 그는 벤츠 비싼 거 몰고 다니고 물려받은 돈도 수십억이라 평생 직장 가진 거 없이도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 왔다. 그런데 그 차 뒷유리에는 지금도 세월호의 노란 리본이 붙어 있다. 촛불집회 때 주말마다 개근하며 촛불을 들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안산의 집회 때 인사를 나누면서 너는 그의 눈물을 보았다. “이건 아니야. 이건 나라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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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때에도 그랬다. “양심이 있지 어떻게 이런 정권을 그냥 넘어가고 애들한테 물려 주겠어.” 나는 그게 촛불 정신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초보적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누구를, 또 무엇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이것은, 최소한 저놈은 아니라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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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벌써 그 해 촛불 때 그 친구는 떨떠름했다. ‘촛불의 결의’인지 뭔지 누군가 단상에 올라 유려한 목소리로 읽을 때였다. 와아아아 환성을 지르며 촛불은 흔들었으되 그들의 주장이 뭔지 이해하지도 못했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야 박근혜 탄핵하자는데 이재용이 왜 나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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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이재용은 그리 나쁜 놈도 아니었고, 멍청한 마이너스의 손이긴 해도 박근혜 이상 미운 놈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재용 구속이 촛불 정신이라니 의아할 밖에. 이재용이야 그가 아는 사람이었고 가늠할만한 사람이라 그렇지, 다른 ‘촛불 정신’들을 더 정확히 알았으면 기함을 했을 것이다. 그 후 분노했으리라. “아니 촛불이 뭔데 자기들이 촛불 정신을 다 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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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에 대한 질문은 대개 의미가 없다. 즉 역사란 무엇인가? 따위 질문은 무의미한 질문이다. 거기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고 맞고 틀리고를 떠나 답을 내는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개념에 대한 질문은 결국 비슷한 사람들끼리 헤쳐 모이자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그 개념 속에서 사람들은 안심하고, 자기 편 속에서 힘을 얻으며, 같은 개념을 설파하는 사람에 열광하고 다른 개념을 늘어놓는 사람을 배타한다. “너에게 촛불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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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의로운 사람들은 늘 그러했듯 자신들의 개념을 확인하려 들 것이다. 촛불 정신이란 무엇인지, 검찰 개혁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언론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며, 촛불의 의무는 무엇이며 촛불 정신은 무엇을 향해 빛나는지, 촛불에 반하는 이들은 누구이며, 그들이 어떤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지, 촛불의 수호자는 누구이며 계승자는 누구이며, 어떻게 해야 촛불이 승리하는지, 촛불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촛불 정신을 이어받자면 무슨 행동을 벌여야 하는지 아주 꼼꼼히 수시로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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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촛불’은 과거의 촛불이 아니며, 촛불 시민도 과거의 촛불 시민이 아니며, 촛불 연단의 사람들도 과거의 그들이 아니며, 결정적으로 촛불 자체가 산산이 쪼개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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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판에 “촛불 정신 같은 거 집어 치워”라는 시선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당신의 지인이 촛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물어 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 “언론 개혁을 해야 한다”고 물으면 “언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아울러 ‘개혁이란 무엇인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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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지켜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지킨다는 게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적폐 세력을 물리쳐야 한다.”고 하거든 “적폐란 무엇인가.”라고 응답하라. 아울러 물리친다는 게 무엇인가도. 토착왜구를 없애야 한다고 외치는 이에게는 토착왜구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라. 더하여 어떻게 없앨 것인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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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아아 촛불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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