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넓다> 넓고도 깊다

2개월 전
in kr

#산하의_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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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넓다> 넓고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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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후 관찰할 기록을 많이 남겼다. 언젠가 그런 류의 기록들을 읽으면서 흘낏 기억 주머니에 넣은 얘기가 있다. “조선도 사투리가 심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말은 통한다. 전라남도 해안가 사람이 함경북도 두만강 근처 사람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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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을 읽으며 ‘일본인들은 큐슈 사람들과 홋카이도 사람들은 말귀를 못알아먹나?’하는 궁금함이 일었는데 언젠가 일본에 오래 살았던 친구에게 물으니 대체로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덧붙인 대답. “일본은 길다. 부산을 생각해 봐라. 대신동 친구가 반송을 알겠나. 해운대 사람이 엄궁을 알겠나.” 그는 부산 출신이었다. 나 또한 바로 이해가 갔다. 아하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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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도를 놓고 보면 흡사 ‘뚱뚱한 일본’ 모양이다. 동서가 긴데다 산투성이에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좀 떨어진 동네에 갈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학군이 다르면 섞일 기회도 별로 없었다. 다른 동네에 가더라도 버스에 실려 용무만 보고 돌아왔을 뿐, 부산에서 초중고를 보냈어도 부산진구나 동래구 밖의 동네는 구덕운동장과 남포동 극장가, 해운대와 광안리,송정 등 해수욕장 일대를 제외하면 나와는 완전히 무관한, 낯선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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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고향도 부산이 아닌 터라, 롯데 자이언츠의 지박령 팬인 것을 제외하면 부산에 친척도 없고 애착도 별로 없고 서울살이 30년에 친구들과의 교류도 거의 끊겼다. 명절이 되면 부모님 계신 부산으로 가지만 방콕이 고작이고 고향의 느낌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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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부산은 매우 재미있는 동네다. 태종대의 푸른 바닷물 너머로는 아득히 대마도가 보이고 돌아서면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데 서울 촌놈들 보면 입을 벌릴만큼 기나긴 산복도로가 가르며 돌아가고 좁아터진 평지에서 넘쳐난 집들은 거의 산중턱까지 쌓여 있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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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부산은 개항 이후 식민과 분단이 얼키설키 둘러쳐진 한국 현대사가 낳은 최대의 도시다. 두툼하면서 길쭉한 구부러진 고구마 모양의 이 도시는 여기서 12년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볼때마다 새롭고 갈때마다 진기한 풍경들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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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 24 헌책방에 들렀다가 뜻밖의 충동구매로 사게 된 <부산은 넓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 사모(?)의 정은 더해간다. 홀연 부산이 그리워 충동이 인 것은 아니었다. 뒤적이다보니 문장이 범상치 않았고 내용의 깊이가 수박 겉핥기식의 지역 기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용카드가 나도 모르게 지갑에서 툭 튀어나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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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쓴 사람은 탁월한 역사서라 할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의 저자 유승훈이었다. 본디 부산 사람은 아닌 듯한데 2000년대 초반에 부산에 내려와 역사민속학자로서 부산 지역에 대한 웅숭깊은 ‘썰’을 풀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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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장담할 게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타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부산 사람들도 이 말을 한 열 번쯤은 토해 낼 것이다. “진짜가?” 위에 언급했다시피 부산 사람들은 자기 동네를 벗어나면 마치 다른 지방에라도 온 듯 낯설어할 때가 많았다. (대학 시절 한 부산 친구가 부산이 해운대에 둘러싸인 줄 아는 서울내기들에게 자기는 해운대 안가 봤다고 화내는 걸 본 적이 있다.) 풍경조차 그런데 무심히 지나는 풍경의 주춧돌과 밑바닥에 이끼처럼 깔려 있는 역사와 사연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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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에 제주도 해녀들이 집단으로 이주해서 ‘물질’을 시작한 이래 ‘영도 인구 가운데 23%가 제주 출신이며 제주도민회관이 있고 ‘제주은행’이 들어서서 다른 은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영업하고 있다는 사실을 영도구민과 그 인근 사람들 외의 부산 시민들은 거의 모를 것이다. 게가 싸기로 유명해서 종종 가족들과 식사하러 갔던 기장에 그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이어가고 있는 ‘동해안 별신굿’이 유지되고 있다는 걸 아는 부산시민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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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자살바위는 워낙 유명하지만 영도다리도 자살의 명소로서 수도 없는 사람들이 뛰어내렸다. 거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1950년대, 영도 다리에 있던 검문소에 근무하던 박을룡 순경이라는 이가 투신자살자가 나올 때마다 그 시커먼 바닷물에 뛰어들어 “10여년 동안 무려 248명의 투신자를 구했으며 그의 소원은 파도가 거센 날에도 재빨리 투신자를 구할 수 있는 쾌속정 하나”였다는 무협지같은 사실을 얘기해 주면 제아무리 토박이 부산 사람들도 “진짜가?”를 부르짖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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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부산의 유명 관광지가 된 감천 문화마을이 왕년의 ‘태극도’라는 종교단체 신도들의 터전이었다는 것을 아는체하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그 종교 내부에서 신파와 구파간 갈등이 생겼고 이 종교개혁(?) 와중에 갈라져나온 신파가 오늘날 저 이름 높은 대순진리교라는 사실에는 또 한 번 진짜가? 탄식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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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좀 긴 휴가가 난다면 걷기 좋아하는 아내랑 부산을 한 1주일 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1주일도 모자랄 것 같다. 영화 촬영지 순례만 해도 3박 4일이 부족할 듯 싶고 범어사로 해서 금정산성 올라 산성막걸리에 취해 내려왔다가 동래 파전으로 마무리하고 해장으로 밀면을 먹는 식도락 기행도 3박 4일은 걸리고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그대로 동네 터를 잡은 아미동, ‘한국의 산토리니’라는 별명 붙은 문화마을 등 부산의 오랜 동네를 샅샅이 돌고 국제시장통에서 완당 한그릇 하는 역사 기행도 3박 4일도 모자랄 것이니 한 보름은 필요하겠는데 그럴 수는 없으니 천상 제대(?)하고 가야 하나 싶기도 하다. 아내가 남편이랑 재미없어 안간다면 친구들을 몰고라도 다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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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꼭 가 봐야겠다고 생각이 든 곳은 영화 <1번가의 기적>에 나오는 철거촌의 현실태인 물만골 마을이다. 윤제균 감독의 영화가 용두사미와 맥락탈출을 즐겨한다고 보아서 그리 선호하지는 않는 편인데 사실 영화 <1번가의 기적>도 그랬다. 하지만 윤제균 감독이 ‘명장면’을 창조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는 바, 나는 그 영화만큼 ‘철거 투쟁’이 리얼하게 그려진 영화를 보지 못했다. 동시에 철거촌에 ‘작업’하러 들어온 깡패 임창정이 동네가 망가지는 것을 보고 울부짖는 아이들에게 ‘뒤로 돌아!’를 시킨 후 억지로 노래를 시키며 참담해하는 장면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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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저 동네가 어디일까 했는데 아 글쎄 이 책이 어렸을 때 황령산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만났을 그 허름한 동네 물만골이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 영화를 찍을 때 벌어진 가슴 아픈 실제 사연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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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물만골 주민들은 ‘물만골 공동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뭉쳤고 관에서까지 나서서 ‘도시생태마을 만들기 사업’의 모범 사례로 지원했지만 운영상 문제점들이 불거지면서 주민들 사이에 불신이 생겨나서 그 동력을 상당부분 잃었다. 그 이유 가운데에는 “<1번가의 기적> 촬영지로 물만골을 선정하면서 주민들의 이끌어내지 못했던 문제점”도 있었고 “이 사업을 주도했던 운영위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결국 지병이 악화돼 사망하는” 아픔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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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산동네에서 가파른 삶의 고통을 이겨낸 것이 기적이라면 모를까 산동네 주민들에게는 삶의 기적보다는 일상을 억압하는 가난의 피로가 계속됐다.”는 저자의 지적마냥 그곳을 ‘볼거리’로 돌아드는 교만함에 대해서는 미리 엎드려 반성한다 해도, 나는 그 ‘가파른 삶의 고통을 이겨낸’ 기적을 목도하고 부산 사람들이 이기든 지든 살아내야 했던 세월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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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부산에 좀 진득하게 가고 싶다. 이 책이 그 마음에 불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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