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말피 해안과 아말피

9개월 전

아찔한 절벽과 푸른 지중해가 만들어 낸 절경의 아말피 해안.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명소’로 내셔널지오그라픽 등 많은 언론들이 1순위로 선정하는 유명한 여행지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고 글로 기록해 놓았을까? 아말피 해안을 직접 돌아 본 여행자라면 아마 그렇게 수긍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1807년, 나폴리의 왕 조제프 보나파르트도 아말피 해안을 방문하고 그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반하게 된다. 당시 해안가 마을들은 배가 아니면 노새를 타고 들어 가거나 걸어서 가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왕은 아말피, 나폴리, 소렌토, 포지타노 등을 잇는 해안도로를 건설하라는 명을 내린다. 공사는 다음 왕인 조아생 뮈라에 의해서도 계속되어 47년만인 1854년에 도로가 완성됐다. 그 이전에도 길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해안도로의 역사는 750년으로 전해져 내려 오고 있다. 아말피가 관광 명소로 알려진 것은 19세기 유럽의 예술가와 작가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면서였다. 괴테, 존 스타인 벡, 버지니아 울프, 바그너, 바이런, 찰스 디킨스 그리고 헨리크 입센이 이곳을 다녀 갔다. 1879년 발표된 ‘인형의 집’은 입센이 이곳을 방문하면서 작품을 완성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말피 해안에서 서쪽으로는 ‘포지타노’, 동쪽으로는 ‘비에트리 술 마레’까지 이어지는 13개의 마을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은 포지타노, 라벨로 그리고 아말피를 꼽는다. 아말피는 아말피 해안가에서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교도 신인 헤라클레스가 아말피라는 요정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정이 일찍 세상을 떠나서 슬픔에 잠긴 헤라클레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그녀를 묻어주었다. 그 곳이 바로 아말피다. 아말피의 역사는 6세기부터 시작되었고 당시 지중해는 비잔틴 제국이 위세를 떨칠 때였다. 839년에는 나폴리로 부터 분리되어 아말피는 자치도시가 된다.

아말피가 전성을 누린 시기는 10-13세기 사이. 이때 이미 아말피는 화폐를 발행하고 자체 선단으로 소아시아, 북아프리카를 왕래할 정도로 막강했다. 아말피뿐만 아니라 당시 이탈리아는 로마 제국 이래 이탈리아의 제2 전성기를 연 시대였다. 밀라노, 피렌체, 토리노, 파도바 등이 번성의 기초를 닦았고 피사, 제노바, 베네치아 등 해안 도시는 대외무역을 선도했다. 해안 왕국 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있던 도시는 아말피였다. 지금도 이탈리아 해군기는 중세 4대 해상국의 깃발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에 화려했던 4대 해상 세력은 지금도 4년에 한 번씩 모여 보트 경주대회를 경연한다.

이 아름다운 아말피에 재앙이 닥친 것은 1638년. 전염병이 발생하자 인구의 1/3이 사망했고 18세기에는 거의 사람이 살지 않을 정도로 황폐해진 도시가 됐다. 18세기 후반부터 사람들이 들어 가기 시작하면서 현재 아말피에는 5,353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아말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나침판을 개량하고 발전시킨 플라비오 조이아다. 나침판은 지중해 시대를 넘어 탐험의 시대를 연 당시로서는 엄청난 발견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조이아가 언제 태어나고 언제 사망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피렌체 학자가 조이아는 실존 인물이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을 1902년 제기했지만 아말피 시민들은 믿지않는다. 이미 시에서는 플라비오 조이아 광장에 나침판을 들고 있는 그의 동상을 1900년에 세운바 있다.

동상 바로 앞쪽엔 그란데 해변이 있다. 여름에는 피서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다. 멀리 홀로 앉아 있는 여인이 보이고 그녀를 향해 걸어 가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 나는 미소를 머금고 ‘포르타 델라 마리나’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문을 지나면 두오모 광장이 나오는데 광장 주위로 아기자기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광장을 가로 지르는 로렌초 아말피 거리는 아말피에서는 가장 번잡한 골목길이다. 골목에는 레몬 비누, 레몬 사탕, 레몬 쥬스 등을 파는 가게가 많아 코 끝을 스치는 레몬향에 취해 상쾌한 기분이 든다.

아말피의 하이라이트는 계단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 두오모다. 두오모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으로 어부 출신이었던 성 안드레에게 바쳐졌다. 교회는 596년부터 이곳에 있었다. 9세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현재의 두오모는 13세기에 다시 재건한 것이다. 아말피가 성 안드레를 수호성인으로 모신 후 이곳에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 났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1544년 6월 27일에 일어난 ‘붉은수염 해적단’의 아말피 침공이다. 당시 해적단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들 함대가 나타나자 아말피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다. 이때 성 안드레가 나타나 바다가 풍랑을 일으키는 기적을 행하자 해적들을 격퇴시켰다. 지금도 아말피 사람들은 해마다 6월 27일을 기려 아말피가 회생된 축제일로 기념하고 있다. 붉은수염으로 불렸던 ‘하이르 알 딘 바르바로사’는 후에 오스만 제국의 해군제독이 됐다.

두오모 박물관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보물들로 가득차 있는 곳이다. 1297년에 제작된 주교관은 19,330개의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주교관은 교황 또는 추기경이 예식 때 착용하는 높고 뾰족한 모자를 말한다. 그 외에도 박물관에는 아말피 지역의 역사적인 문헌 및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지하 납골당은 성 안드레의 유골이 안치돼 있어 아말피에서는 가장 성스로운 곳이다. 납골당답지 않게 화려함을 자랑하는 이곳은 도메니코 폰타나가 설계했다. 예술가로는 베르카차의 분수(스페인 광장)를 조각한 피에트로 베르니니 등이 참여했다.

아말피의 수호성인 성 안드레는 그리스 파트라스에서 X자형 십자가에 처형됐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십자가에 못 박힐 자격이 없다며 X자형 십자가를 선택한다. 그 후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져 있던 유골을 4차 십자군 원정때 아말피 추기경이 아말피로 가져왔다. 그 유골을 안치하기 위해 세운 성당이 바로 13세기 초에 세운 현재의 아말피 두오모다. 과연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명소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음을 공감하게 된다. 바로 여행의 참 맛이 이런 것이 아닐까? 못내 떠나기 아쉬운 아말피 해안을 뒤로 하고 자동차는 다음 숙박지인 마테라를 향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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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피 두오모 입장료: 3유로
자동차 렌트는 소렌토에서 픽업하고 바리 또는
베네치아 등 다른 도시에서 하면 편안하다.
만약에 자동차가 없으면 SITA 버스를 타면 되는데
버스표(1.8유로)는 타바키(Tabacchi)에서 구입한다.

http://www.autoeurope.com/ (자동차 렌트 정보)

카프리 섬에서는 나폴리 또는 소렌토로 가야 한다,우리는 나폴리에서 카프리 섬으로 들어 가
떠날 때는 소렌토로 나와 아말피로 떠났다. 사진은 소렌토의 페리 정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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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렌토 항구: 부호들의 별장,별 장 앞으로는 부호들의 요트들이 정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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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피 해안의 아름다움은 숨이 멎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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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타노가 바라 보이는 장소에 만든 휴계소 성모마리아 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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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계소에서는 포지타노가 왼편으로 보이고,오른쪽으로는 옥빛의 지중해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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