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랄 리포트 춘자 _ 12 내가 보여요?

지난달


너무 묵혀 두고 있는 것 같아 일단 간단하게 남겼던 메모를 옮겨둡니다. 아스트랄 리포트는 계속 씁니다.

20200331

잠은 올 때만 잔다. 잠은 제멋대로 찾아온다. 그래서 찾아올 때 충분히 챙겨두어야 한다. 엉망진창처럼 들리겠지만, 그 안에는 제법 질서라 부를 만한 흐름도 있다. 다만 눈을 감기 전에 들던 생각은 꿈에서도 이어지기 때문에 꿈에서도 일하고, 꿈에서도 사랑하고, 꿈에서도 살 뿐이다. 근래에는 생각이 유난히도 끊이지를 않았다. 나와 대화를 나눈 이들은 퍽 답답했을 것이다. 이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있는 건지, 여기에 있기는 한 건지 헷갈렸을 테니까. 나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게 만들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정신이 자리를 떠버리는 일을 막을 수가 없다.

그날 이른 아침에도 기다리다 지친 몸이 먼저 잠에 빠져들려는 참이었다. 진동이 느껴졌고 어두운 방 한구석에 갈라진 틈새가 보였다. 희끄무레한 빛이 새어 나왔고 저길 통과해서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몸에서 빠져나왔는데 빛의 틈새가 사라졌다. 그건 어디로 향하는 문이었을까? 일어나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가만히 손을 보고, 거울을 보고, 거실로 나갔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엄마가 보였고, 그 옆을 지나쳤고, 그대로 현관으로 나가 계단을 내려가는데 밑에서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꼬마가 보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는 그 애를 통과해서 지나갔다. 다시 익숙한 우리 동네 골목길이 나타났고, 바로 도움닫기를 해서 둥실 떠올랐다. 이번엔 몸을 똑바로 세운 채로 위로 솟아올랐다. 로켓처럼.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전봇대를 연결한 전깃줄들이 거미줄처럼 보였다. 건물들이 점점 작아지는데 이렇게 계속 위로 솟아오르면 구름을 통과해서 지구 밖으로 갈 수도 있겠다 싶으니까 어쩐지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올라갈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한 번에 다시 내려왔다. 군용 트럭들이 잔뜩 보였다. 커다란 트럭들 사이를 날아다니며 여긴 어디지 생각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다가가니까 티베트 승려가 조금씩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의 앞에 다가가 섰다. 그가 몸을 떨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 모습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가 경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경계에 선 이 승려도 지금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그를 지켜보다가 꿈으로 진입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꿈에서 깨어났다. 그 승려는 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는 나를 보고 기뻤을까? 나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그리워했던 것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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