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후 일주일

3개월 전

IMG_9142.jpg


책을 만들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독립출판, 일인출판에 대한 글을 정말 많이 읽었다. 그 안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이 그 모든 과정에서 책을 만드는 일, 그러니까 초고를 매만져 종이책이라는 실물로 태어나게 하는 과정이 가장 쉬웠다고 회고한다는 점이었다. 한창 책을 만드는 중에는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초고를 읽는 것부터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원고인 <개새끼소년>의 분량은 A4로 거의 500장이었다. 종이책으로 만들면 800페이지 안팎이다. 살면서 800페이지 분량의 책을 읽어 본 일이 단 한 번도 없는 내게는 이 원고를 끝까지 읽어내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A4 500페이지를 양면으로 출력해서 유럽에서 들고 다니며 읽었는데 다 읽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다. <배낭영성>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대부분 살면서 처음 들어 보는 것들이었다. 과연 내가 이걸 책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찌나 막막했는지. 그럴 때마다 스팀시티 글쓰기 유랑단과 힐데가르트 수도원에 갔을 때 들었던 수녀님들의 그레고리안 성가를 찾아 들었다. 나도 디자이너도 태극기도 그릴 줄 모르는 사람인데 어느덧 익숙하게 주역 괘상을 그리고 있었다. 작가, 디자이너, 그리고 편집자 사이에 오고 간 수많은 수정 원고들 사이에서 최종본은 서서히 완성되어 갔다.


인쇄소를 찾는 일은 제법 운명적으로 이루어졌다. 텀블벅에서 <개새끼소년> 출간을 위한 펀딩을 시작했을 때 견적을 받아보라고 메시지를 보내온 인쇄소가 몇 군데 있었다. <배낭영성>의 인쇄와 제본을 맡아 준 예인미술도 그중 하나였다. <배낭영성>의 펀딩이 성공하고 <개새끼소년> 펀딩 때 메시지를 보내온 인쇄소들과 지인에게 추천을 받은 곳, 그리고 검색을 통해 알아낸 몇 개를 더하여 일곱 업체에 인쇄 및 제본의 견적을 의뢰했다. 예인미술의 담당자는 이번에도 제일 먼저 회신을 보내왔다. 지극히 숫자적(?)이고 사무적인 이메일이 오고 가는 와중에 이 메일을 쓴 담당자가 평상시와 다름없이 '복붙'을 했을지언정 그마저도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종류의 느낌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 그 메일을 받고는 운명적으로 '아, 여기구나!'하고 생각했다. 이후 차례로 다른 업체들로부터도 회신을 받을 수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별다른 고민 없이 예인미술을 선택했다. 예인미술 본사는 파주에 있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나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던 담당자는 고맙게도 <개새끼소년>을 기억하고 있었다. 첫 미팅 후 감리를 보러 한 번 더 파주에 갔는데 디자이너 우툰님은 많은 인쇄소를 다녀 봤지만 이렇게 쾌적한 인쇄소는 처음이라며 감탄했다. 처음 만드는 책을 예인미술과 함께 하게 되어 기뻤다.

다음은 서점에서 발주가 들어오면 책을 출고 시켜 줄 배본사와 계약할 차례였다. 마찬가지로 몇 개 업체에 견적을 요청했고 회신을 받았다. 이 역시 인쇄소를 고르는 과정과 비슷했다. 처음부터 나의 마음을 끌었던 업체와 계약했다. 책들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물류창고에 방문해서 직접 보고 싶었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점이기도 했고 대중교통으로는 닿기 힘든 곳이라 가 보지 못했다. 운전면허 따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마침내 최종 파일을 인쇄소로 넘겨야 하는 날이 왔다. 밤을 꼴딱 새우고 아침이 되어서야 이메일 전송 버튼을 클릭했다. 보내 놓고도 한동안 침대에 걸터앉아 손톱을 물어뜯었다. 수백 번의 마감을 경험했지만, 이 마감만큼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덜컥 겁이 났다. 오탈자는 그런 나를 비웃듯 최종 PDF 파일을 열어 볼 때마다 까꿍 하고 눈앞에 나타났다. 괴담처럼 떠돌던 오탈자 자연발생설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리고는 지독한 장마였다. 습도가 높아 종이에 잉크가 잘 먹지 않는 것은 아닐까, 배송 중에 책이 젖는 것은 아닐까, 별별 걱정이 다 들었다. 포털 사이트를 열면 파주에 물난리가 났다는 뉴스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책이 나오는 날, 유통할 물량은 배본사로 가고 텀블벅 후원자에게 보낼 책들은 집으로 왔다. 인쇄도 제본도 무척 깔끔하게 나왔다. 의외로 포장과 배송이 엄청난 육체노동이었는데, 무거운 상자를 옮기다 온몸의 근육이 놀랐는지 허벅지가 아직도 아프다. 몸은 힘들었지만,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상자를 열어 볼 후원자들을 생각하며 덩달아 즐거웠던 작업이었다. 고강도 두뇌 노동을 오래 하다 보면 이런 종류의 단순 반복 노동은 휴식처럼 느껴진다. 재밌기도 하고.

무사히 후원자들에게 배송을 마치고 다음 날에는 피터님을 만나 책을 전달했다. 나를 믿고 원고를 맡겨준 피터님에게 한 권의 번듯한 책으로 탄생한 그의 글을 되돌려 줄 수 있게 되어 정말 뿌듯하고 기뻤다. 우리는 구두로만 계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날 뒤늦은 출판계약서도 함께 썼다.

주요 인터넷 서점들과의 계약은 모두 이메일과 전화 통화로 이루어졌다. 필요한 서류를 출력하여 바리바리 준비해 두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메일로 필요한 서류를 보내고, 공인 인증서로 전자 계약을 했다. 그 과정은 빠르고 쉽고 수월했다. 사실 교보문고 파주 본사에는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피터님으로부터 괘상 이미지에 오류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간만에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며 여유를 부리는 중이었는데 카톡을 보고 진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눈앞이 노래졌다. 다시 그날을 회상하려니까 심장이 벌렁거리려는 참이다. 내상을 세게 입었지만, 회복은 빠르게 했다. 우선 홈페이지에 오류와 수정 사항을 공지했다. 책은 배본사에 가 있고, 당장 며칠 뒤면 서점에서 판매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결국 2쇄에 수정하기로 했다.


서점에 책이 깔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라는 마음으로 지난 일주일 동안 아침에 날아드는 발주서를 확인하고 배본사에 출고 요청을 했다. 초반의 지인빨이든 뭐든 누군가가 이 책 <배낭영성>을 주문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사실 아직 마케팅의 '마'도 시작하지 못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33명의 기자에게 보도자료를 보낸 것이 전부다. 33명의 기자 중 신간 출간 기사를 써준 사람은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을 팔 일만 남았다. 독립출판 혹은 일인출판을 시작한 사람들이 '책을 만드는 일'은 쉽고도 즐거운 일이며, 진짜 고난은 '책을 파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하루에 300종, 일 년에 80,000종 이상의 신간이 출간된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데 읽히기 위해 세상에 나오는 책은 점점 많아진다. 참 희한한 시장이다. 이 희한한 시장에서 도서출판 춘자의 정체성과 방향은 명확하다. 처음 일인출판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관련 업계에 있던 지인은 내게 조언했다. 요즘 책을 사보는 사람은 2, 30대 여성이 대부분이니까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출판시장의 동향을 보았을 때 그녀의 조언에는 일리가 있지만, 동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말이 틀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시점에 A라는 책이 출간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 시점에 그 책을 읽고 싶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봄에, 누군가는 겨울에, 누군가는 20대에, 누군가는 60대에,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그 책을 필요로 할 것이고 만나게 될 것이다. 도서출판 춘자는 독자가 우리의 책을 만나게 될 순간을 기다리려고 한다. 독자가 찾지 않는다고 책을 폐기하거나 절판시키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이 독자의 때를 만나게 될 때까지 버티고 버틸 것이다. 그렇게 버티기 위한 깡과 힘을 기르는 것이 앞으로 2년 동안의 내 목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처음 하는 일이라 부릴 수 있는 기술이나 꼼수가 없다. 오로지 진심을 쏟아부을 뿐이다.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하나 해보려고 한다.


입고 요청 메일을 보낼 독립서점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 요청한다고 다 받아주는 것도 아닌데 요청 메일이야 많이 보내면 보낼수록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추려보고 있다. <배낭영성>을 소중히 여기고 조화롭게 품을 그런 서점을 찾고 싶다.






  • 춘자넷에서 <배낭영성>에서 발견된 오류와 수정 사항을 확인할 수 있어요.
  • 오탈자 및 오류에 대한 제보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소중하게 모아 2쇄에 반영할게요.
  • 피터의 <배낭영성>은 YES24, 교보문고,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점에서 만날 수 있어요.
  • 지역 도서관의 희망도서 신청도 해주시면 언제나 감사합니다. :-)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TEEMKR.COM IS SPONSORED BY
ADVERTISEMENT
Sort Order:  trending

글 읽으면서 고생한 이야기인데 왜 재미있지? 생각했어요. 그건 동글님이 글을 재미있게 잘 쓰시니까요! 2쇄 3쇄 10쇄까지 이어지길, 동글님 책도 세상에 나오길 바라고 있어요 🙏✨

·

꼭 그럴게요! 보얀님 아름다운 사진과 글도 꼭 춘자에서 책으로 만들고 싶어요. 물론 보얀님이 제 프러포즈를 받아주신다면요. :-) 목걸이랑 사진이랑 모든 이쁜 것들 오늘 잘 받았어요. 목에 걸어놓고 자꾸 만지작만지작하고 있어요. 마음에 쏙 들어요!

·
·

프로포즈 영광입니다! 글이 모이면 동글님께 보여 드리고 싶어요^^ 목걸이가 맘에 드셨다니 기뻐요✨✨✨

앞으로 제가 책을 쓴다면, 도서출판 춘자가 있었어서일 것입니다.

·

전에 만났을 때 말씀드렸듯이 소수점님의 글을 기다리고 있어요! 써주세요. 그리고 꼭 함께합시다! 춘자 이즈 뤠디!

이제야 보내요. 이놈의 스팀잇은 구려도 너무구려! 피딩이라도 제때볼수 있으면 좋을것을! 스마트폰으로 보면 pc버전으로 디스플레이되고. 이거참... 느리스팀이라도 합니다.

·

어흑 맞아요! 폰으로 보다가 눈이 멀 것 같아요! 구려도 너무 구려 으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