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앤 뷰티풀

2개월 전

4년 전에 썼던 퍼스 여행기를 올린다. 이것을 올리게 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있는데,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어제부터 갑자기 썸씽 앱 깔고 노래 엄청 부름.
  2. 오늘 낮에 q님의 퍼스 사진을 봄.
  3. 저녁에 집에 와서 썸씽에서 라나 델 레이의 영 앤 뷰티풀 열창.
  4. 숨이 차서 중간에 관둠.
  5. 근황에 관해 쓰려고 글쓰기 창을 염.
  6. 근황의 내용이 너무 많다? 막막함을 느낌.
  7. 전에 써둔 퍼스 여행기가 생각남.
  8. 그래, 이거야!

요즘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를 모르겠다. 시간을 하루 단위로 끊어 생각해도 이렇게나 숨이 찬데 하물며 나의 일주일 그리고 보름의 시간이란! 지난 겨울은 얼마나 고요했던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마법사님의 <개새끼소년>과 정면승부 중이다. 원래 100개의 에피가 있었는데, 춘자 에디션으로 일부 추려서 엮는 것으로 계획이 수정되었다. 그래서 다시 편집 중이고 맨날 정수리에서 김이 난다. 아마 4월에는 책이 나올 것이다. 내 책은 표지 작업에 들어갔고, 5월에는 피터님의 <배낭영성>, 젠젠님의 <어쩌다, 크루즈>, 그리고 고물님이 2년 전 종이책으로 출간한 < Mi Cubano >까지 전자책으로 낼 계획이다. 계약서 들고 고물님 동네까지 찾아가서 탕수육을 얻어 먹... 아, 그리고 여름에는 소수점님을 내레이터로 모시고 <배낭영성> 오디오북을 만들어볼까 한다. 이렇게 날마다 일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하루가 그렇게 가는 것이다.

다음 근황 토크는 좀 더 재미나게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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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지글거리는 동안 모래밭을 뒹굴거리던 사람들은 하늘빛이 어두워지자 하나둘 사라졌다. 1950년대 미국의 한껏 멋을 부린 도시 아가씨와 같은 차림을 하고 있던 중국 여인들도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챙 넓은 모자에 양산까지 쓰고 해변을 거닐고 있었는데, 몸짓 하나하나가 주변의 그 무엇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지금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 견디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조금 당황했던 것이 아닐까? ‘한낮의 해변’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모래밭 위를 사뿐거리며 걷는 그들을 바라보며 숨겨놓은 맥주를 꺼내 들이켜다가 - 하지만 호주에서 야외 음주는 불법이다 - 어쩐지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한낮의 해변’에는 반드시 맥주가 필요한 법이니까. 해변의 열기에 미지근해진 맥주라도 상관은 없지만 예쁜 라벨을 보고 대충 고른 맥주에서 동전 맛이 난다면 조금 곤란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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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 여행에서의 두 번째 숙소는 프리맨틀과 퍼스 시내의 중간쯤에 위치한 곳으로 프리맨틀까지 가려면 30분 정도 버스를 타야 했다. 퍼스에 도착하고 며칠을 시내에 위치한 호스텔에서 지냈지만, 조금이라도 바다 가까이에 살고 싶은 마음에 에어비앤비를 뒤지다 찾아낸 루크와 카일리네 집. 퍼스 시내를 들락거리기에도, 프리맨틀의 저녁을 여유 있게 즐기기에도 영 불편한 어정쩡한 거리에다가, 버스에 내려서도 한참이나 걸어 들어가야 하는, 그러니까 여행자가 머무르기에는 매우 애매한 위치에 있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선택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뒷마당에서 키우는 닭이 낳는 신선한 달걀을 매일 먹을 수 있다'는 주인장의 설명 때문이었다. 신선한 먹거리에 대한 로망(?) 따위를 갖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밥 해 먹는 일을 귀찮게 여기는, 그런 우리 성향을 잠시 잊고 있었다. '닭이 갓 낳은 신선한 달걀'이 우릴 그곳으로 이끌었지만 그 이유가 무색하게 그 집에서 밥을 해 먹은 건 단 한 번뿐이었다. 우리가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때면 루크와 카일리 커플은 출근한 후였고, 집에 돌아오면 그들은 이미 자고 있었는데, 잘은 몰라도 그 커플은 우리를 좀 이상한 여자애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퍼스에서 알게 된 몇몇 친구들은 퍼스에 '놀러 왔다'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고 - 퍼스의 젊은 한국 사람은 대부분 워홀러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 어디에 머물고 있냐는 질문에 그 동네 이름을 읊어주면 '도대체 왜 거기까지 갔느냐'는 말을 누구나 빠짐없이 할 정도였으니. 물론 '신선한 달걀' 때문이라고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 동네에서 할 일이라고는 동네 입구에 있는 케밥집에서 케밥을 사 먹는 일뿐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같이 프리맨틀로 나들이를 갔다.

눈을 뜨자마자 비키니 수영복 위에 티셔츠와 반바지를 대충 걸쳐 입고, 퍼스 시내에서 산 커다란 비치 타월을 가방에 쑤셔 넣고는 프리맨틀 행 버스를 탄다. 승객들과 운전기사 아저씨가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인사말을 들으며 괜히 어색해하다가 버스와 함께 흔들거리다 보면 운전기사 아저씨의 뒤통수 너머로 바다 위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거대한 선박들이 몸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버스에서 내릴 순간만을 기다린다. '키야'하고 인도양의 바다 냄새를 실컷 맡고는 거리 위를 나는 듯이 걷는다. 커다란 태양이 머리 위에서 타오르고, 하늘은 눈이 부시다. 타버린 피자가 테이블 위에 놓여도 헤헤 하고 실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싱글벙글하며 주류 판매점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와인과 맥주를 사 들고, 해변으로 향하는 것이다.

찾아다닐 것도 없이 그냥 바닷가 방향으로 대충 걷다 보면 제법 근사한 해변이 나타난다. 타는 태양이 부담스러운 우리는 그늘을 찾아 기어들어 가 비치 타월을 깔고 드러눕는다. 음악을 들으며 하염없이 사람 구경, 바다 구경을 한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얼마간 헤엄을 치다가 차가워진 몸을 뜨거운 모래밭 위에 뉜다. 모래밭에 숨겨 놓은 술을 꺼내 홀짝홀짝 마신다. 하늘빛의 그라데이션을 마음껏 감상한다. 해가 지고 배가 고파 오면 그제야 저녁밥으로는 무엇을 먹을까 궁리하기 시작한다. 그런 낮이 며칠째 반복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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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의상의 중국 여인들을 감상했던 그 날도 그런 날 중의 하루였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지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시작도 끝도 없는 텅 빈 공간에 떠 있는 지구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빙글빙글 돌고 있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속이 울렁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무심하게 잘도 살고 있는 것이다. 낮과 밤의 의미를 잊은 채로, 어지러움에도 무뎌진 채로 말이다. 미동도 하지 않고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풍경이 빠르게 변해갔다. 시간이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지금 내 모습이 아주 청승맞게 느껴졌지만, 조금 취한 김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친구(@snowflower)와 엉엉 울어버리고는, 영원히 젊고, 영원히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배경 음악이 라나 델 레이의 '영 앤 뷰티풀'이었기 때문에 한 생각이다. 그날, 그 소리와 그 색깔과 미지근한 맥주와 엉엉 울고 퉁퉁 부어버린 눈두덩이와 얼굴에 번진 눈물과 그 해변의 모든 풍경은 내 인생에 손꼽는 명장면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우리는 무려 노래방 어플을 받아다가 라나 델 레이의 영 앤 뷰티풀을 열창하고 서로에게 들려주었는데, 바로 그날 라나 델 레이가 새로운 싱글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소름 끼친다며 한참 호들갑을 떨었다. 그녀의 노래 가사에 어김없이 등장한 'young'이라는 단어에 뭉클해하며. 그 어떤 꿈을 그려도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어떤 희망을 품어도 허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속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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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프리맨틀 찾으셨나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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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님 덕분에 사진 속 길 걷다가 피자도 먹고 플랫화이트도 한잔 하고 왔습니다. 히히.

제가 인도양에는 아직 발을 담궈보지 못했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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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답니다. :-)

당신의 꿈이 계속되기를...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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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잡고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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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쌰!

오늘은 동글님 대신에 영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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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들어도 설레는 말이잖아요! :-)

어? 언제 가셨었나요
저도 14년에 워홀 갔었는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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꺅 택슨님이 바로 퍼스 워홀러였군요!? 저는 14년 2월 3월에 있었어요. 퍼스 너무너무 그리워요. 그나저나 잘 지냈어요? 조만간 연락해서 안부 물어야지. 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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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지나가다 봤었을수도 있겠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