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의 시간, 난민의 기다림

4개월 전

난민의 시간은 우리들과는 다르게 흐른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국가의 '국민' 혹은 "시민권자"로서의 우리이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한국 국적을 지녔고 부모님도 한국인이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지내왔고 대충 계산해보아도 일본에서 산 날이 더 많아 보인다. 이러면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을 법도 하지만 어렸을 적에 매 제삿날마다 족보를 보며 우리집안의 역사를 들어왔던 나는 당연히 "한국인"임에 의심해본 적도 없었고 국적과 아이덴티티는 나에게 있어서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당연시 하고 있는 이 "국적"은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일본에는 여전히 "조선"이라는 국적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무국적자인 이들도 많거니와 1970년대에 일본으로 흘러 들어온 난민의 후손은 부모님의 고향인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국적자가 된 이들도 많다. 국제기준으로서의 "여권"이라는 것이 생기고 국적이라는 것을 명시하게 된 것이 고작해야 100년이 될까 말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국적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국적이 없는 이들은 굉장히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치부한다. 국적과 다른 나라에 허락없이 입국하면, 즉 "불법체류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그저, "합법적인 절차 없이" 다른 나라에 와있는 것 뿐인데, 엄청난 법을 어긴 것 처럼 소스라치게 놀라고, "난민"과 "무국적자"가 자신의 나라에 들어오면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고 하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먹는다.

다람살라에서 조사를 하며 만나는 여행객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 있었다.

"이 곳에 있는 티베트인들은 난민같지가 않아요. 모두가 행복해보이고 돈도 많아 보여요. 난민이라고 다 힘든건 아닌가봐요."

수업에서도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난민들이 나름대로 경제활동도 하고 그들만의 문화를 영유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면 난민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열심히 사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들이 얼마나 사치인지 알게 되었다고 토로한다. 어디를 가나 난민은 불쌍하고 돈도 없는 사람들로 비춰진다. 그건 미디어의 잘못이 크다. 난민을 하나의 인격체로 묘사하지 않고 사람들의 지원과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즉 수동적인 존재로만 그리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다람살라에서 만날 수 있는 티베트 난민의 모습이 사뭇 낯설게 느껴지는 것일 테다.

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이다.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은 로힝야 난민이나 시리아 난민들조차도 난민캠프 안에 도시가 형성되고 교역이 확발하게 이루어지며 경제활동이 이루어진다. 그들이 고향에서 향유하던 전통과 문화를 영유하고, 그들의 언어를 후손에게 가르치려 한다. 하물며 티베트 난민은 발생한지 60년이 지났다. 그들은 달라이라마라는 종교적 지도자도 있고 해외로부터의 경제적 지원도 넉넉하다. 티베트 디아스포라는 전세계에 뻗어있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티베트 난민은 다른 어떤 난민보다도 힘이 있고, 스스로도 그걸 자부한다.

하지만 국적의 유무는 시간의 흐름을 바꾸어 버린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다람살라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nothing is permanent"였다. 물론 세상만사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 모두가 안다. 하지만 그걸 언제나 인식하며 살지는 않는다. 그러나 티베인과 일상을 함께 하다보면 기억에 남을만큼 자주 듣게 되었다. 달라이 라마가 자주 말하는 문구라서 일까. 그리고 이것이 모든 티베트인들이 버릇이 아니라 특히 티베트 난민들이 말버릇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언제나 불확실성과 함께한다. 인도 정부가 언제 갑자기 정책을 바꿀 지 모를 일이다. 갑자기 인도에서 나가라고 할 수도 있으며 어떤 나라에도 입국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보호해줄 "나라"가 없으며 국적이 없다는 것은 이동의 자유뿐만 아니라 안전의 유무또한 결정짓는다. 인도는 관료제가 지독하기 이를데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인맥이 없는 낮은 카스트의 사람들과 특히 힘없는 여인들은 공무원으로부터 서명 하나 받지 못하여 울고 불며 지내는 날이 허다하다. 그 서명 하나로 그들이 받을 수 있는 배급식량이 달라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들에게 기다림은 전혀 "미학"이 아니며, 생존과 결부된다. 티베트 난민은 법적으로 어떠한 안정과 확실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 날, 그 때, 당신이 우연히 본 그들이 즐거워 보여도 그들의 시간과 우리들의 시간은 같을 수가 없다. 인도 내에서 그들의 시간이 자유로워 보일지라도 그것은 제도에 의해 강요된 게으름이고, 강요된 기다림이다. 그들이 인도를 못벗어나는 이유는 국적이 없어서 신분증을 발급 못받아서 일 수도 있고, 그 신분증에 필요한 비자의 스탬프를 받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해외에서 보내주는 서류 한 장이 부족해서 일 수도 있고 고작 "여권"하나 받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코로나로 인해 나라의 정책이 바뀌기를, 이동을 위해 필요한 서류가 적어지기를 기원하는 나날이다. 2020년dms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동하지 못했던 해였다. 나 또한 이동하지 못함이 얼마나 사람을 옭아매고 답답하게 하는지 처절하게 느꼈다. 지난 달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지불한 비용과 제출한 서류의 양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종류의 이동이었다. 그와 동시에 이 기다림의 시간이 난민들에게는 일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당연시 하게 생각하는 국적도 없고 여권도 없다. 여권이 없으니 비자발급 또한 굉장히 어렵다. 운이 좋아 비자가 발급되고 비행기에 탑승 할 수 있었다고 해도 목적지 공항에서 몇 시간이나 구류 되는 것은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이다.이동의 자유가 얼마나 특권인지를 보통은 인지하지 못한다. 나는 원할때 나가고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들은 불가능했다.

그들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결코 같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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몆년전 인도 입국 심사로 학을 뗀적 있는데
ㆍㆍㆍㆍ사치일 뿐이네요ㅅㅅ

어떤 의미에서는 조선적 사람들은 (다른 난민과 비교해본다면 상대적으로) 자발적 난민의 길을 택한 것이고, 그 가운데에는 정체성의 문제가 혼재하는 것이다보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뿌리에 대한 관념이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더 강할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요된 게으름, 이라는 표현이 너무 와닿는데 재미도 없는 카드게임을, 심지어 본인들도 그리 재밌어하지 않는 것 같은데, 매일매일 몇 시간이고 하고 있던 그 모습이 생각나서 피식하다가 결국 좀 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