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지구 반바퀴는 더 돌아야하지만, 어쨌든 건배

4개월 전

마법적인 순간들이 있다.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퍼즐의 조각들이 어느 순간 합쳐져 근사한 그림이 되는 그런 순간. 전혀 예견하지 못한 작은 단서들이 모여 예정된 무언가를 이루는 순간.

'상실에 대한 상처, 마법사님의 제안, 과거로 떠나는 여행, 커티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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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퍼즐들이 맞아 떨어져서 나는 작년 크루즈 여행을 떠났고, 원래의 목표만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지구 반바퀴를 돌았다. 예견하지 못한 작은 단서의 중심에는 단연 '커티샥'이 있다. 그 내용이 궁금하다면 아래의 글을 읽어보시길.

커티샥을 마시고 서쪽으로, 과거로 (feat. 1Q84)
https://steemit.com/kr/@zenzen25/feat-1q83

사실 커티샥은 맛도 연하고 밍밍하거니와 가격도 저렴해서 위스키 애호가들에게는 '천대' 받는 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술의 가치를 떠나서 이런 마법적인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 내가 활동하는 위스키 카페에 위의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러고 몇 주 뒤 나는 바를 운영하시는 분에게 '커티샥'에 대한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고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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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남아 있던 커티샥 12년 : Out by the Cape. Home by the Horn 이었다. 재미나게도 병에는 커티샥 호의 역사적인 행선지가 각 면에 삽화로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난 이 도시들을 곧 크루즈를 타고 가야한다는 운명적인 예감에 사로 잡혔다. 거기에는 내가 이미 크루즈를 탄 도시 상하이도 있었고, 영국 그리니티, 포르투칼 리스본, 남아공 희망봉, 칠레 혼곶 등이 있었다.

"젠젠님, 커티샥 한 잔 합시다."

크루즈 여행에서 돌아온지 1년도 훌쩍 넘었고 코로나로 지구 반바퀴를 더 크루즈로 돌려는 계획이 무기한 연기된 어느 날, 마법사님이 연락을 하셨다.

"좋죠."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커티샥은 '천대' 받는 술이기에 취급하는 위스키바는 거의 없다. 나는 검색을 통해 연희동의 책바를 발견했고 그곳에서 마법사님을 만났다. 작년 여행 중에 마지막으로 뵈었으니 1년 2개월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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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칵테일, 책에 실려있는 칵테일과 위스키 등을 파는 곳이었고 대부분 한 잔 하며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소곤소곤 이야기하라며 몇번이고 주의를 주는 통에 음량을 줄이고 키웠다가 줄이고를 반복하며 힘겹게 대화를 했다. 마법사님은 무사히 여행을 마친 걸 축하해줬고 곧 시작할 스팀시티의 오프라인 플랫폼, 도서출판 춘자의 두 번째 책이 될 크루즈 여행기도 잘 마무리하라고 도닥여줬다. 나는 커티샥 하이볼을 마시며 무사히 여행을 치룬 나를 위해, 원고를 다듬어야할 나를 위해, 또 다시 지구 반바퀴를 돌 나를 위해 건배했다. 그리고 이런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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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색 리코더와 wtiter's tears라는 이름의 위스키를.

두 번째 크루즈 여행의 목적지는 호주의 앨리스 스프링스가 될 것이다. 내가 스팀시티 문학전집에 썼던 짧은 희곡의 마지막 장면이 앨리스 스프링스이기 때문이다. 앨리스 스프리스는 남들이 봤을 때 '말도 안되는 꿈'을 가졌기에 현실과 타협하던 주희가 다시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공간이다.

[모래 바람 소리 들린다. 붉은 조명, 와글 와글 사람들 소리 들리고 이내 멀어진 다. 주희 홀로 등장한다. 주위를 둘러 보는 주희, 더운듯한 옷깃을 당기 며 손을 이마에 덧대 어 그늘을 만든 채 태양을 바라본다. 눈부신 듯. 그러나 도착한 것이 기쁜 듯. 배낭을 땅에 내려 놓고 무릎 꿇고 모래를 둘러 본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찾 더니 그 주변을 빙 영상을 찍는다. 그 영상이 무대 화면에 뒤 스크린에 재생. 그리고 셀카 모드로 다시 바꿔서 자기 모습과 사막을 찍으며 말한다.

주희 : 정말 붉지?

스크린 속에 밝게 웃는 주희의 얼굴이 크게 보인다.
조명 더 강하게 붉어지다 암전.]

앨리스 스프링스를 닮은 붉은색 리코더, 이 리코더를 보자마자 희곡의 마지막 장에 붉은 사막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주희가 리코더를 부는 장면이 머리에 그려졌다. 고쳐야겠다.

[스팀 문학 전집 / 희곡] 앨리스의 리코더 (단편)
https://steemit.com/stimcity/@stimcity-lits/4ace3

19세기와 20세기 초 아일랜드는 맛있는 위스키와 뛰어난 작가들이 활동하는 시대였다.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 사무엘 베게트 등은 자신이 살던 지역의 위스키를 마시며 영감을 얻어 보석같은 문학 작품을 만들어 냈고 아일랜드 증류소 walsh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wtiter's tears라는 위스키를 출시했다고 한다. 나를 만나기 며칠 전 마법사님은 인스타그램에서 이 위스키의 출시 글을 운명처럼 읽고 선물로 준비했다고 하셨다.

당장, wtiter's tears를 홀짝이며 글공장을 오픈해야겠다. 커티샥이 긴 크루즈 여행의 복선이었다면 wtiter's tears는 내가 조금은 괜찮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복선이라고 믿고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결국 꾸준히 써야한다. 계속 쓰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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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맨 춘자, 단발병 춘자, 보부상 춘자 그려주어서 고마워요. 젠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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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 잘 활용하시는 거 보면 뿌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