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을 쓰는 것 만큼의 여행

지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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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지하에는 무인환전기가 설치되어 있다는 소식을 몇 달 전에 접했다. 11개국의 동전과 16개국의 지폐를 상품권으로 교환 가능한 획기적인 기계이다. 여행을 하고 나면 남는 외화 특히 동전은 바꿀 길이 없어 집안에 가득 쌓여있던 터라 반가운 소식이었다. 집에 있는 외국 동전들을 전부 꺼내어 늘어놓았더니 어림잡아도 백 개는 되어 보였다. 짤랑이는 외국 동전을 만지작 만지작거리다 보니 각 나라로 순식간에 공간이동을 하게 된다. 환전 사기를 당했던 프라하의 후미진 골목의 환전소, 맨날 잔돈이 없다고 시치미 떼는 인도 릭샤꾼들로 늘 주머니가 두둑할 수 밖에 없었던 델리, 맥주를 살 때 병 값 15센트가 무조건 붙어 쓸 일도 없는 작은 돈이 급속도로 불어만가던 베를린, 동전에는 여행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일렬로 줄지은 동전을 전부 들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용산 이마트에 갔다. 일본 엔화, 유로, 달러 등등을 차례로 기계에 넣었다. 환율을 적용하고 부족한 돈은 현금으로 채워 넣으면 된다. 나라별로도 아주 소액은 취급하지 않고 일부 동전만 환전이 가능해 고작 6개 나라의 돈 15개만을 넣어 “2,460원”을 얻을 수 있었다. 모자란 금액은 카드를 긁어 상품권을 받았다. 환율은 50%정도 쳐줘서 형편없지만 쓰지 않을 동전을 가지고 있는 것 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동전이 생기는 게 싫어 무조건 1,000원 단위로 맞추어 물건을 산다. 1,200원 짜리 커피가 먹고 싶어도 동전이 갖기 싫어 1,000원 짜리 커피를 고른다든가 1,200원 짜리에 800원 짜리 껌을 산다는 가 하는. 바지 주머니와 자켓 주머니에서 짤랑짤랑 거리는 소리도 그 묵직함도 못 견디게 싫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끔찍하게 싫은 동전이지만 해외 여행에서만큼은 그 짤랑거림이 싫지 않고 용서가 된다. 낯선 나라의 동전들을 손에 쥐고 거리를 활보하고 아끼는 것이 습관인 여행에서 동전들은 최대한 오랫동안 주머니에서 짤랑 거리다 슈퍼에서 노점에서 카페에서 사용되곤 하니까. 돈의 단위가 헷갈려서 손에 한 가득 동전을 꺼내놓고 머뭇머뭇 거리고 있으면 내가 지불해야하는 만큼의 돈을 쏙 골라가는 친절한 건지 성격이 급한건지 모를 점원을 만나기도 인내심 있게 내가 돈을 고르는 걸 기다려 주는 점원을 만나기도 한다. 여행 중에 동전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귀찮고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과연 이 동전들은 내 여행을 어떤 소소한 행복으로 채워줄까?’ 하는 기대감으로 가득 찬 청아한 짤랑거림이다. 현금 없이도 카드로 모든 것을 해결 가능한 우리나라에서는 동전은 쓸 일이 더 없기에 동전을 쓴다는 것 자체가 해외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과도 마찬가지의 말이기도 하다.

동전은 우리가 어딘가를 여행할 때 굉장히 초반에 손에 쥐게 되는 것이고, 유로와 같은 공통 통화가 아닌 이상에야 그 나라의 상징성을 가장 고스란히 담아 보여준다. 살면서 인도 여행을 가장 많이 했기에 한 가득 쌓인 동전 중에 가장 많은 동전은 루피이다. 다양한 루피 중 난 마치 엄지 척 따봉을 하는 1루피와 승리를 표시하는 브이를 하는 손 모양인 2루피가 좋았다. 1루피는 15원 2루피는 고작 30원 정도에 불과해 이걸로 뭘 살 수는 없지만 이걸 주고 받을 때면 서로 ‘칭찬’을 주고 받거나 ‘승리’를 빌어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반대편 면에는 인도 국가를 대표하는 엠블렘인 사자가 있다.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 왕이 사르나트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세운 4마리의 사자상이라고 한다. 아랍에미레이트의 동전 1디르함 뒤에는 아랍식 전통 물주전자가 새겨져 있다. 아랍은 사막지형이라 물이 귀해서 중요한 물을 담을 수 있는 주전자를 동전에 넣지 않았나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역사 속 인물, 나라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동전에 새기는 걸 생각하면 좀 엉뚱해 보인다. 뭐 그만큼 그 물 주전자가 중요하다는 얘기겠지만. 내가 가진 동전 중에서는 어느 나라의 돈인지 감조차 오지 않는 것들도 많이 있다. 분명 내가 여행한 곳 일텐데 말이다. 아무리 빤히 봐도 낯선 얼굴, 해독이 불가능한 낯선 문자라 알아낼 수 없다. 이 시국에 이런 동전들을 하나하나 구경하고 정리하며 새겨진 얼굴의 인물이 누군지, 건축물이 어딘지를 인터넷에서 찾아 보는 것도 하나의 ‘랜선 여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마트 환전 기계에 나라 별로 동전을 하나하나 넣으면서 동전을 쓰려고 애썼던 여행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단 하나의 동전은 추억으로 남지만 수 십 개의 동전은 짐이 되기에 번번히 아등바등 사용하려고 했던 기억이다. 액수가 크지 않아 가장 소소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샀는데 술을 마시려고 여행을 하는 술꾼답게 처음에는 맥주나 전퉁 술을 고르고 그러고도 남으면 과자나 음료수, 초콜릿 같은 걸로 점점 작아지곤 했다. 카드를 잃어버려 거지였던 탓에 공항 가는 길에 무임 승차 각오하고 동전 털어 사먹은 프랑크푸르트 애플 바인 한잔의 그 실망스런 맛과 델리 공항에서 있는 돈 전부 털어 샀던 히말라야 화장품도 잊히지 않는 여행 마지막 순간의 기억이다. 무인 환전기가 있는 걸 알았으면 ‘그렇게 기어코 바꾸려고 하지 말고 그냥 들고 올걸.’ 이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공항 면세점에서 이 돈을 어떻게 잘 활용해 최고의 쇼핑을 할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그 물건을 사는 걸로 늘 그 여행이 마무리 되었던 걸로 생각하면 그 마지막 쇼핑이 없는 여행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마지막 동전을 털고 나서야 그 여행이 마침내 끝났음을 실감했으니 동전을 터는 건 여행의 마침표와 다름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외국 동전 2,460원을 보태 바꾼 얼마의 5,000원의 상품권으로 스페인과 미국 나파 밸리의 와인을 사는데 보탰다. 이 와인을 입안에 가득 머금고 호로록 호로록 그 맛과 향을 음미하며 스페인과 미국을 각각 여행을 해야지. 해외로 갈 수 없기에 대체안으로서 '간접 여행'을 끊임없이 찾는 건 코로나 시대를 사는 여행자로서 어쩔 수 없는 새로운 버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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