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의 시작 / Day 0

9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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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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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Day Vipassana Meditation Course│Day 0




입소




 카이파라 코스트 하이웨이 16번 국도를 달린다. 길은 산중으로 펼쳐져 있다. 마카라우 로드를 지나 번사이드 로드로 들어서자 비포장 도로의 자갈이 요란한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내가 살던 세상과 더욱 멀어졌다는 신호 같다. 곧 작은 푯말이 보인다. '담마 메디니 메디테이션 센터 Dhamma Medini Meditation Center.' 주차장 너머로 약간 경사진 오르막길 위에 규모가 큰 나무 건물들이 평화로운 숲 속에서 아늑한 조명을 밝히고 있다. 이곳에서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의 마지막 13일 중 11일을 비파사나Vipassana 명상을 배우며 지낼 예정이다. 작년 11월에 신청했는데 인원이 다 차서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다가 한 달 후에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을 견학할 수 있는 마지막 티켓을 손에 쥔 찰리가 된 기분이었다. 사실 비파사나 명상은 두두가 제대 후 인도로 여행을 갔을 때 먼저 경험했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몇 순간이 있다면 바로 그때'라는 말을 듣고서 나도 호기심이 생겼다. 마침 뉴질랜드에도 비파사나 명상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어 신청을 해본 것이다.


 오는 길 내내 긴장감으로 배가 쓰리고 아팠다. 기간이 조금 더 짧았면 이렇게까지 긴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명상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데크에 짐을 내려놓고 화장실로 달려가서 속을 깨끗하게 비웠다. 이제 제대로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다. 두두가 잘하고 오라는 응원의 미소를 보내주고는 주차장 너머로 사라진다. 이제 내 앞의 시간들은 홀로 감내해야 한다. 휴우우우-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등록을 하기 위해 2층으로 걸음을 옮긴다. 2층 공간은 성별이 철저하게 구분되어 있다. 여성 전용 공간으로 들어가 신규 수련생용 양식을 집어 드니 수련생 매니저인 로라가 환하게 웃으며 안내책자도 함께 챙겨준다. 접수 시간은 오후 2시부터 5시까지인데 오픈 시간을 조금 넘기고 도착한 탓인지 사람들이 거의 없다. 나무 책상에 앉아 등록서를 작성한다. 기본 정보 외에 간단하게 바이오그래피를 쓰는 칸이 있고 가족과의 관계는 어떤지, 이 명상 코스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적는 칸이 있다. 나는 내면의 용기를 얻고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다고 적는다.




마음이 조급한 것도 명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까.



 이곳에 오기 전날 이렇게 일기에 썼다. 쉽게 긴장하고 불안해지는 게 힘들어 스무 살 무렵부터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 기도를 하고, 심리학 서적을 읽고, 내면을 연구하고,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취향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지만 이런 행위들은 '사후 약 처방'과 비슷하달까. 긴장이 일어나고 불안해지는 그 강렬한 순간은 늘 뜨겁고, 뒤늦게야 데인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일련의 처방전들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이미 나뿐만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뒤였다. 긴장과 불안은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든다. 분명히 마음의 어느 지점에 이 과정들이 전 생애에 걸쳐 알고리즘으로 기록되어 있을 텐데 지금의 나로서는 이것들을 투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근본적인 마음의 수술이 필요하다. 그런데 스스로 집도의가 되어야 한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다.




새로운 공간




 내가 지금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곳은 다이닝 홀이다. 오늘 저녁을 먹는 시간은 오후 6시. 그리고 오후 7시부터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그 이후에 첫 명상을 시작하게 된다. 저녁 시간까지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어서 배정받은 개인실에 짐을 풀기로 한다. 내 방은 여자 기숙사 첫 번째 빌딩에 있는 맨 끝방이다. 기숙사는 전부 1인실이고 의자가 없는 책상과 거기에 바로 붙은 침대가 전부다. 발을 사용해 방의 길이를 재어봤는데 가로로 9발, 세로로 12발이다. 작은 공간이지만 천장 높은 곳에 유리창문이 있고 유리 출입문 바로 옆으로 커다란 창문이 있어서 답답한 기분이 별로 들지 않는다. 건너편에는 울창한 숲이 있다. 만약 이곳이 작업실이었으면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고 온종일 집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구조다. 가져온 백팩을 책상 밑에 두고 항상 챙겨 다니는 상의-하의-속옷 가방을 책상 위에 둘까 하다가 첫날은 깔끔한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기로 한다.


 이곳에 오기 전 마지막 식사로 밥과 함께 고기 케밥을 먹었는데 소화가 안 되어서 산책을 나선다. 내 방 바로 앞에 숲길로 들어서는 입구가 있다. 빠르게 걸으니 왕복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작은 산책로다. 명상 코스 동안에는 운동도 금지되어 있어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걷기가 전부다. 깊은 숲 속에서 매일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양치를 한 번 더 하고 방으로 와서 저녁 시간까지 글을 쓰며 쉬기로 한다. 역시나 긴장감이 풀리지 않아 소변이 자주 마렵다.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낯선 환경도 익숙해지겠지. 오후 5시가 다되어가니 사람들이 많아져 여기저기 떠드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수련이 시작되면 노블 사일런스 Noble Silence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몸과 말, 마음의 침묵을 뜻하는데 어떤 형태의 커뮤니케이션도 금지된다. 지도자 선생님과의 개인 면담 시간은 5분, 이마저도 선착순으로 이름을 올려야 가능하고 생활에 필요한 부분들만 봉사자들에게 최소한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모든 수련생들은 철저한 고독 속에서 침묵의 감각을 길러내야 한다.




첫 저녁 식사




 오후 6시가 되자 봉사자가 종을 울린다. 6시가 되기 5분 전부터 대기하고 있던 터라 이른 순서로 저녁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제공되는 음식은 전부 베지테리언. 파슬리를 얹어 오븐에 구운 토스트 한 조각과 양파, 당근, 샐러리 등으로 만든 수프 한 그릇이 오늘의 저녁 메뉴다. 접시를 가지고 빈자리에 앉았고 곧 다른 세 사람도 테이블의 빈자리를 채운다. 5분 정도 말없이 어색하게 식사를 하다가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이전에 명상 코스를 경험한 적이 있느냐'는 진부한 질문을 던지고 나니 비로소 모두의 말문이 열린다. 다들 며칠씩 어딘가에 머물며 명상을 하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단연 '노블 사일런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의사 전달은 어떻게 해야 할지 다들 막막해한다. 노블 사일런스 이후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하나씩 선보이며 한 바탕 신나게 웃는다.

먹은 걸 정리하고 오리엔테이션까지 15분이 남아서 다른 코스로 혼자 산책을 하러 나선다. 입구를 지나서야 나무 기둥에 male only라고 적힌 종이가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이 이 길로는 마지막 산책인 것이다. 다이닝 홀에서 떠드는 소리가 숲에 울려 퍼진다. 노블 사일런스는 무슨! 한두 명 빼고는 무리를 지어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듯하다. 무척 엄숙한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역시 첫날은 첫날인가 보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이 가까워져 다이닝 홀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한다. 아까 함께 밥을 먹은 뉴욕 출신의 여성 한 분이 내 옆자리에 앉아서 인사를 나눈다.

"저기, 노블 사일런스 들어가기 전에 이름 물어봐도 될까요?"
"오, 물론이죠! 저는 카피아예요. 그냥 케이라고 불러요. 만나서 반가워요! 그리고 먼저 말 걸어줘서 고마워요."

우린 조심스럽게 웃고서 다시 침묵을 지킨다.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한 봉사자는 우리와 별다른 상호작용도 없이 종이에 쓰인 안내문을 건조하게 읽어 내려간다. 그러고는 안내 방송이 나오는 테이프를 튼다. 아까 받은 안내책자에 적힌 내용 거의 그대로다. 새로 온 수련생들은 남녀 합쳐서 60명은 되어 보이는 것 같다. 다들 앞으로의 10일을 어떻게 보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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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파사나(Vipassana)는 존재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으로, 인도의 가장 오래된 명상 기법 중 하나입니다. 이 명상은 자기 관찰을 통한 자기 정화의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수련자는 마음에 집중하기 위해 자연스러운 호흡을 지켜보는 것으로 시작해 날카로워진 의식으로 몸과 마음의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모든 것은 변한다는 보편 진리와 고통, 이타성을 경험합니다. 2,500여 년 전 붓다 고타마가 비파사나 명상을 재발견해 수련의 전 과정을 담마(Dhamma)라고 부르며 보편적인 괴로움에 대한 보편적인 해결 방법을 새롭게 제시했습니다. 보편적인 자연의 법칙을 따르기에 종교나 종파주의와 관련이 없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자신의 인종, 사회나 종교와 갈등 없이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비파사나 명상은 개인의 총체적인 자유(total liberation)와 완전한 깨달음(full enlightenment)을 목표로 합니다.


비파사나는,

  • 맹목적인 신념에 근거한 제사나 의식 같은 것이 아닙니다.

  • 지적·철학적 유희가 아닙니다.

  • 휴식 요법, 휴가, 사교를 위한 기회가 아닙니다.

  • 매일의 고난과 역경에서 도망가는 것이 아닙니다.



비파사나는,

  • 고통을 뿌리 뽑는 기술입니다.

  • 수련자가 대면할 인생의 긴장과 문제를 고요하고 균형 잡힌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정신 정화의 과정입니다.

  • 수련자가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삶의 예술(Art of Livin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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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명상을 시작하다




 오후 8시가 되자 종소리가 숲을 에워싼다. 산 너머로 흐릿한 달빛이 새어 나온다. 메디테이션 홀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수련생 매니저 로라가 호명하는 순서대로 한 명씩 메디테이션 홀로 들어간다. 꼿꼿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무척 엄숙하다. 각자의 이름이 인쇄된 종이가 방석 위에 놓여 있다. 'Chaelin Park'이라고 쓰인 내 이름이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진다. 첫 명상은 S.N. 고엔카 선생님의 찬팅으로 시작한다. 여기 계시는 게 아니라 녹음된 음성 파일이다...! 앞에는 남자 지도자님과 여자 지도자님이 석상처럼 앉아 계신다. 살짝 당황스럽다. 어차피 명상할 때 눈을 감아야 해서 선생님이 눈 앞에 실재하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고엔카 선생님은 명상에 앞서 비파사나를 다시 한번 소개하며 '실라(Sila, moral conduct)'라고 부르는, 수련생이 지켜야 할 계율을 하나씩 말씀하신다. 따라 말해보라고 하기에 눈을 감고 다 같이 복창을 한다. 기본적인 다섯 가지 계율은 다음과 같다.


 수련 기간 동안 나는,

  1. 살아 있는 생명체를 살생하지 않겠다.
  2.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겠다.
  3. 모든 성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다.
  4.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
  5. 술이나 담배, 마약을 즐기지 않겠다.



이미 수련을 경험한 적 있는 수련생들은 여기에 세 가지 계율을 더 지켜야 한단다.

  1. 정오가 지나면 먹지 않겠다.
  2. 감각적인 즐거움을 누리지 않고 신체 치장을 하지 않겠다.
  3. 높거나 화려한 침대를 사용하지 않겠다.



 그밖에도 수련생이 명상 센터 안에서 지켜야 할 여러 가지 것들이 있다. 음식도 이곳에서 제공되는 것만 먹어야 하고 세탁은 손빨래만 가능하다. 성별에 상관없이 어떠한 방식으로도 타인과 신체가 닿아서는 안 되며 요가나 운동을 할 수 없다. 금지되는 약물에는 수면제도 포함되며 의사의 처방에 따라 꼭 복용해야 하는 약은 지도자에게 알려야 한다. 다른 건 다 지킬 수 있는데 내가 이번 수련에서 딱 하나 어길 수밖에 없는 항목이 있다.


악기 연주, 라디오 듣기, 읽기와 글쓰기는 허용되지 않는다.



 비파사나 명상으로 변화하는 내 모습을 관찰하고 이를 숨김 없이, 생생하게 소개하고 싶어서 나의 일기장과 필통을 몰래 들이고 말았다. 도대체 비파사나 명상이 어떤 것인지, 거기서 무얼 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휴식을 할애하며 충실히 쓰는 것도 내가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이 될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 규율 하나를 어기고 말았지만 그 외 시간은 온 마음을 다해 수련에 임하기로 다짐한다.


 첫 명상은 단연 호흡 연습부터 시작이다. 코끝과 코 안쪽 벽에 닿는 공기를 계속 인지한다. 언제까지? 한 시간 내내! 자세를 바꾸는 동안에는 잠시 호흡을 멈추고 자세를 고친 뒤 다시 호흡을 시작해야 의식의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10분이 지나자 다리가 심각하게 저려 오기 시작한다. 이 고통을 참아내는 것도 명상의 일부인 것 같아 최대한 몸의 감각에 집중한 채로 시간을 보낸다. 어느덧 오후 9시 20분이 되어 하루 일과를 종료한다. 귀뚜라미 소리의 일정한 간격을 자장가로 삼으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긴다. 다른 걸 할 수 없으니 호흡에 집중하다가 자연스럽게 잠이 든다. 낯선 곳에서의 하루가 이렇게 저문다. ●


여행지 정보
● Dhamma Medini Vipassana Meditation Centre Burnside Road, Makarau, New Zealand



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의 시작 / Day 0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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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글을 여기에 가만 두고 보기가 너무 아깝습니다. 타당한 댓가와 대우를 받아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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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해요 퐁당님 -! 이 콘텐츠 시리즈는 차곡차곡 잘 모아보려고 해요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 생생한 말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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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석님,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