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장하는 동시에 썩어간다 / Day 3

9개월 전





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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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Day Vipassana Meditation Course│Day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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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장하는 동시에 썩어간다 / ⓒchaelinjane, 2019




새벽과 아침




 어제도 돌연 환한 달이 창문으로 비쳤다. 잠결에 흐린 눈으로 달빛을 느끼면서 '지금이 아니면 더 이상 만월이 아닐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것은 역시나 힘들다. 일어나 환한 하늘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자다 깬 기분이 든다. 그래도 깜깜한 새벽을 뚜벅뚜벅 걸어 메디테이션 홀에 있는 내 자리로 간다. 사실 새벽 명상은 자율이라 개인실에서 해도 된다. '한 시간만 여기서 하고 한 시간은 그냥 자러 갈까?' 하는 유혹의 속삭임이 피어오른다. 나가고 싶은 마음 반, 수련으로 이 기분을 이겨내고 싶은 마음 반이다. 수면실 같은 고요 속에 두 지도자 선생님이 들어오시는 걸 보니 1시간이 지난 것 같다. 20분 정도 남기고 남기고 고엔카 선생님의 찬팅이 시작된다. 찬팅이 들리면 명상 시간이 끝나간다는 신호다. 거의 다 해냈다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어제보다 덜 졸았고 메디테이션 홀에 대한 어색함이 훨씬 줄었다. 보상으로 아침을 아주 든든하게 먹기로 한다.


 목요일 아침에 나온 대추와 계피, 건포도가 혼합된 수프가 준비되어 있다. 잘 몰라서 목요일에는 차로 마셨는데, 사실 끓인 오트밀에 미지근한 요거트를 얹고 이 수프를 부어 먹으면 되는 거였다. 씨앗과 시리얼도 푸짐하게 얹는다. 오늘은 바나나 대신 키위를 고른다. 작고 얇은 보겔 토스트가 아닌 크고 두꺼운 파킨 세이브 토스트를 두 개 구워 버터를 듬뿍 담는다. 그리고 처음으로 밀크티를 만들어 마셨는데 찻물만 마실 때보다 훨씬 친숙한 기분이 든다. 방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아침에 들은 고엔카 스승님의 찬팅이 머릿속에 울렸고(맨 마지막에 제자들이 따라 부르는 파트는 거의 축제 분위기다!) 하마터면 샤워를 하면서 흥얼거릴 뻔한다. 산에 깔린 안개에 아침 빛이 살짝 스민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8시-9시 아침 단체 명상을 맑은 정신으로 마치고 여자 지도자님과 짧은 면담을 한다. 트라이앵글 구역(코 안쪽-코 끝- 윗입술) 안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있는지, 그게 어떤 느낌인지 물어보신다. 나는 공기의 흐름, 건조함, 촉촉함, 간지러움 등을 느낀다고 말한다. 아주 좋으니 꾸준하게 감각을 느껴보라고 하신다. 방으로 돌아오니 오전 10시 15분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깊은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불건전하고 나에게 해를 끼치는 생각들로부터는 달아나서 나의 호흡을 꼭 붙잡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계속 <사적인 파라다이스>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들이 생각나 그쪽으로 상상이 진행될 때에는 호흡과 함께 더 깊이 나아가려 애쓴다. 명상을 하다가 내가 침묵을 좋아하긴 하지만 따사롭고 영감을 주는 사회적 관계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오늘 명상은 무언가 밝고 쾌적하다. 비파사나 명상이 앞으로 나에게 가져다 줄 긍정적인 영향력들이 환한 빛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 같다.


 새벽부터 계속 트라이앵글 외부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관찰하고 반응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자궁에 콕콕 쑤시는 통증, 몸의 어느 부위가 갑자기 가려워지는 것 등등을 최대한 참아내보고 있다.






 오전 11시 50분, 점심을 먹고 숲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다. 오늘도 역시 처음 맛보는 베지테리안 식사에 감동 또 감동이다. 리코타 치즈, 시금치와 밥을 함께 반죽해 위에는 바삭한 페스츄리가 얹어진 케이크를 담는다. 밥도 두 주걱 가득 그릇에 담고 걸쭉한 버섯 소스를 부어 삶은 당근, 샐러드와 곁들어 먹는다. 버섯 향기와 로즈메리 티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이런 향긋한 식사가 다 있다니...! 고기의 세계와는 또 다른 맛을 이곳에서 제대로 알아간다. 채식으로만 이어지는 식사가 이렇게 높은 포만감을 안겨주는지 꿈에도 몰랐다.


 오후 4시 45분, 차 휴식을 15분 남기고 메디테이션 홀에서 방으로 내려온다. 뜨겁던 태양이 누그러지고 홀 안으로 바람이 불어오던 느낌이 참 좋았다. 이제 웬만하면 홀에서 명상을 하고 방에는 쉬러 오거나 글을 쓸 때만 들어와야겠다고 다짐한다. 이 모든 게 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진짜 수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녁




 오후 5시 41분. 쐐기풀 차와 바나나 하나, 초록 사과 하나를 먹고 숲 산책을 오래 하다 왔다. 날이 더워 이마에 땀이 맺힌다. 사과가 너무 시어서 평소보다 더 늦게 먹고 말았다. 떫고 신맛을 참아내느라 혼이 났지만 내게 주어진 유일한 음식이니 군말 않고 감사히 다 먹는다. 이렇게 셋째날도 거의 다 지나갔다. 몇 번 더 반복하다 보면 이곳을 떠나는 날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호흡으로 돌아오려 애를 쓴다. 숲에 홀로 앉아 약간은 슬픈 표정으로 차를 마시던 동료 수련생을 보고 마음이 조금 울적해진다.


 저녁 단체 명상을 끝내고 아주 집중해서 강론을 들었다. "우리는 성장하는 동시에 썩어간다." 오늘 저녁 강의 때 들은 가장 강력한 말이다. 우리 몸의 세포는 끊임 없이 죽고 새로 태어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 세포들의 집합체인 우리 또한 매일 죽고 새로 태어나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와 다섯 살 때의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몸에서 일어나는 수 천 수 억 가지의 변화를 일일이 다 지켜볼 수 없기에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연속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로 쪼개어보자면 일생은 순간순간이 이어 붙여진 기다란 띠에 불과하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고 매일 조금씩 썩어서 사라져 가는 중이다.


#### <비파사나 명상의 세 가지 훈련>


Sila(실라)Samadhi(사마디)Panna(빠냐)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는 훈련호흡으로 마음을 집중하는 훈련통찰의 지혜로 마음을 정화시키는 훈련
Day 0 - Day 10Day 0 - Day 3Day 4 - Day 10



Day 4인 내일 오후 3시에 빠냐 훈련을 처음으로 시작하기 전까지는 사마디를 계발하는 일에 정진해야 한다. 코 안쪽과 코 끝, 윗입술이 만드는 삼각형 구역을 더욱 좁혀 코 끝과 코 입구, 윗입술의 작은 삼각형 내에서 감각을 느끼는 연습이다. 이 구역을 벗어난 감각에 대해서는 반응하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자연스럽고 미세한 숨에도 감각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예민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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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 기록

Day 0
Day 1
Day 2




여행지 정보
● Dhamma Medini Vipassana Meditation Centre Burnside Road, Makarau, New Zealand



우리는 성장하는 동시에 썩어간다 / Day 3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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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이다와 핑갈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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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식견이 좁아 검색해보았습니다 ㅎㅎㅎㅎㅎ 의도치 않게 꽈배기 이미지가 맞아떨어졌네요! ㅎㅎㅎ 그림 그릴 때 성장하고 썩어가는 것의 영원한 반복을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

우리는 성장하는 동시에 썩어간다. 명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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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기억에 강하게 남은 말이었답니다. :))

명상은 유혹이 떠난적이 없었습니다. 유혹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될만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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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느것 하나 쉬운 게 없네요. 심지어 가만히 있는 것 조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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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두질 않는 인간의 쓸데없는 생각들요. 저는 자전거 타면서 명상을 하기도 한답니다. 자전거는 집중의 운동이어서 조금 허튼 생각에 사고로 연결 될수 있어서 자연스레 집중과 명상이 됩니다, 자전거를 생각으로 타다보면 행동이 늦어지거든요.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전거를 타면서 많은 부분이 긍정적으로 바뀌지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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