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을 터득하기 위한 고된 시간/ Day 6

9개월 전





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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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Day Vipassana Meditation Course│Day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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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assana Meditation Course Day 6 / ⓒchaelinjane, 2019





새벽과 아침




 왜 자꾸 이상하고 답답한 꿈을 꾸는지 모르겠다. 공포영화에 등장할 법한 장면들도 자꾸 떠오른다. 예전 같았으면 '에이 무서워, 얼른 다른 평화로운 생각을 떠올리자!' 했을 텐데 지금은 나의 상카라를 바꿔 보기로 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무서운 감각을 수용하지 않겠다.' 그리고는 섬뜩하지만 그 무서운 장면을 얼마간 피하지 않고 지켜본다. 공포에 대한 무반응 연습.


 오늘도 새벽 4시 20분이 훌쩍 넘어서야 일어났다. 명상 시작 시간이 다 된 것 같아 허겁지겁 침낭을 바닥으로 내려서 곧바로 명상을 시작한다. 잠이 완전히 깬 상태가 아니라 집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도 머리에서 발끝으로, 발끝에서 머리로 주의 집중을 회전하는 작업에 최선을 다한다. 양방향 회전 한 번에 20분씩 걸리다가 시간이 조금씩 줄어든다. 아디따나 자세를 유지한 채로 양방향 회전 한번, 다리를 쭉 펴고 양방향 회전 한 번을 반복한다. 오전 5시 35분부터는 회전을 두 번으로 늘렸다. 거의 30분이 걸리는데 온갖 답답함, 다리 저림의 고통, 물을 마시고 싶은 갈망도 함께 달려든다. 이것들을 모두 참는 연습이다. 다리가 저릴 때부터는 묵직하고 두꺼운, 아주 속이 터질 것 같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답답함을 참아야 한다. 자율 명상 때는 주의 집중을 회전시키는 것보다는 직면하는 고통의 감각들에 대해 참아내고 지켜보는 연습을 하고, 단체 명상 때는 온 힘을 다해 비파사나까지 골고루 집중하는 연습을 해보자. 처음에는 힘든 고통들도 나중에는 더욱 편한 호흡으로 내려올 수 있을까. 아나빠나 명상 수련을 할 때부터 아디따나 자세를 유지하고 호흡 연습을 했었다면 좀 더 수월했을 것 같다. 나는 신나서 이것저것 상상을 펼치고 있었는데 사실 딴생각으로 흘러가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명상은 고요히 앉아서 생각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다.
고요함을 터득하기 위한 고된 수련의 과정일 뿐.



 아침 단체 명상은 고통 속에 끝난다. 45분은 잘 견뎠는데 15분 동안 격렬한 통증이 찾아온다. 내가 겪는 고통을 관찰해보니 척추를 곧게 세우면 엉덩이와 허벅지 관절, 근육에 심각한 무리가 가고 허리를 조금 구부리면 척추에 고통이 찾아온다. 처음부터 강한 힘을 주어 곧게 편 상태를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등이 점점 굽는다. 이걸 연습하려면 아디따나를 하루 종일 해야 한다는 말인데,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섯째 날이 고비라는 말을 들었다. 이 길을 먼저 걸어간 수련생들도 지금의 나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홀에서 개인실로 내려오는 동안 무릎에서 부드득부드득 소리가 난다. 이 자세로 인해 새로운 상카라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평정심을 유지하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자세에서 '100숨만 참자' 생각하고 120번째 숨에 다리를 푼다. 오전 10시 20분이니 1시간 정도 지났다.


 오늘 점심은 카레와 샐러드, 그리고 후식으로 당근이 들어간 도넛이 나온다. 처음으로 끼니에 별 감흥이 없다. 밥을 먹는 만족도 느끼지 말자고 다짐한 까닭일까. 그저 허기가 사라져서 다행이다. 5.5일이 지나고 있다. 손톱이 아주 많이 자랐는데 자르고 싶다.



오후




 이곳을 찾는 그 어떤 야생동물과도 교류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만 머리에 예쁜 깃을 단 처음 보는 새 가족 무리와 자기가 완전히 숨은 줄 착각하는 족제비를 바라보는 것은 침묵의 생활 중에 환한 기쁨이 된다. 우리 기준에서 동물들은 조심성도 배려도 없고 그저 자기 멋대로 군다. 메디테이션 홀에서 명상을 하며 침묵을 지키는 우리 머리 위로 새들이 지붕을 쾅쾅 밟고 이곳저곳에서 저마다의 울음소리로 실컷 운다. 우리는 소리를 내는 대신 자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자연은 모든 생명을 그저 편견 없이 받아들여오고 있었다. 가냘픈 짐승이든 육중한 짐승이든 조용한 짐승이든 사나운 짐승이든. 심지어는 자연을 파헤치는 인간들까지도 받아들였다. 문득 영겁으로 쌓인 자연의 거대한 침묵을 느낀다. 고요히 침잠해 있는 자연의 법칙을 인지하는 법을 이곳에서 배우는 중이다.


 2시 반-3시 반 단체 명상은 엉망이었다. 방에서 침낭 하나 바닥에 깔고 할 때는 무리 없던 아디따나 자세가 홀에서 하면 30분 만에 무너지고 만다. 고통을 참느라 손과 발에서 땀이나 축축하다. 왼쪽 다리가 문제다. 척추나 골반 둘 중 하나가, 아니면 둘 다 휘어지기는 한 모양이다. 고엔카 선생님은 늘 "No reaction!(반응하지 마세요)"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도저히 반응을 안 할 수가 없다. 예전부터 많이 걷거나 무리한 하체 운동을 하면 왼쪽 무릎이 욱신거리고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계속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보니 고통이 한 단계 더 진행된다. 주의를 회전하는 비파사나 명상을 할 욕심은 내려놓고 한 시간 동안 이 자세로 잘 버티기나 해 보자고 다짐한다. 더는 못 참겠다 싶은 지점부터 100 숨을 쉬었는데 이게 10번이나 반복되어 1000 숨 정도를 더 쉬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명상의 끝을 알리는 고엔카 선생님의 찬팅은 들리지 않는다. 몸도 말을 안 듣고 명상도 제자리걸음이다. 답답한 마음이 치솟아 오른다. 잘하겠다는 마음도 집착이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성과에 대한 생각을 잊기로 한다. 아플 수도 있지 뭐. 못 할 수도 있지 뭐!



저녁




 오후 5시 36분. 차와 과일을 먹고 다이닝 홀을 나선다. 지겨울 정도로 단순한 일상의 반복. 숲 산책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는데 양치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도 몸이 숲 쪽으로 자꾸 향한다. 습관이 마음을 이긴 걸까, 산책하기 싫다는 게 그저 지겨움에서 파생된 나의 착각이었을까. 결국 산책길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민소매 옷을 입고 있지만 이제 벌레 물릴 걱정은 안 한다. 숲에 있는 모기들도 우리들을 물어뜯는 걸 포기한 것 같다. 이곳에서 자연을 해치지 않고 조용히 살고 있으니 적이라기 보다는 동료에 가깝다고 여긴 걸지도 모른다. 곁에서 윙윙 거리지만 몸에 붙지는 않으니 신기하다. 나무들은 어두워진 숲에서 다들 탁월한 명상가들처럼 보인다. 어쩜 저렇게 고요하지. 어쩜 저렇게 서로 어지럽게 얽혀 있으면서도 그 위치가 꼭 맞는 자기 자리인 마냥 공존할 수 있는 거지. 고된 여섯째 날도 거의 끝나간다. 이제 마지막 아디따나 시간이다. 두렵지만 직면할 고통을 정면으로 돌파하자.


 와, 믿기지 않지만 드디어 9시간의 지난한 노력 끝에 오후의 마지막 단체 명상은 아디따나 자세로 완벽하게 성공했다! 갑자기 격렬한 통증이 예고 없이 시작되지는 않을까 긴장했지만 한참을 집중하고 있으니 "아니짜- 아니짜-"하는 고엔카 선생님의 음성이 들렸다. 다리가 조금 저리기는 했지만 거의 통증이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다. 다리가 마비된 느낌이 오면, '그래, 다리는 이렇게 무거운 납 덩어리처럼 가라앉게 두고 나는 주의 집중을 계속 움직여 보자.'라고 생각했다. 주의 집중 회전을 9번이나 성공했다. 고엔카 선생님은 늘 찬팅의 마지막에 "바바뚜 사바 만겔랑(Bhavatu Sabba mangalang, 모든 만물이 행복하기를 빕니다)"를 세 번 반복하시는데 이에 제자들은 "사두, 사두, 사두(Sadhu, sadhu, sadhu, 우리도 그 소망을 나눕니다)" 하고 답한다. 오늘 나는 진정으로 기뻐서 웃음을 머금고 "사두, 사두, 사두!"를 외쳤다. 화장실로 내려가는 내내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이게 되다니! 고통을 감지하는 것을 건너뛸 수 있구나. 이렇게 상카라를 하나씩 지워가는 거구나. 별안간 너무 들뜨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평정심을 가지고 일곱째 날을 맞이해야지.

내일부터는 오른쪽, 왼쪽을 나누어 주의집중을 옮기는 게 아니라 양쪽으로 동시에 대칭적으로 옮기는 훈련을 시작한다. 집중력이 더욱 요구되는 수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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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 기록

Day 0
Day 1
Day 2
Day 3
Day 4
Day 5








│by @chaelinjane


여행지 정보
● Dhamma Medini Vipassana Meditation Centre Burnside Road, Makarau, New Zealand



고요함을 터득하기 위한 고된 시간/ Day 6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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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을 준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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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불안을 떨치고 평정심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 ! ㅎㅎㅎㅎ 수련이 습관이 되려면 아직 멀고도 먼 것 같습니다 ㅎㅎㅎ

앉는게 불편허시면 고관절을 풀어주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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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인석님 ^^ 그때 코칭해주신 대로 다리를 뒤로 해서 탁탁 치는 걸로 요즘은 풀고 있어요. :-) 이 기록은 3월 26일날 썼던 거라 도움말을 얻지 못한 상태였네요 ㅠㅠ 고관절 푸는 법도 명상 센터에서 알려줬으면 좋았을 것을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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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실 기회가 있을 거예요. 질문을 갖고 계시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