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상카라를 마주하는 일 / Day 7

9개월 전





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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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Day Vipassana Meditation Course│Day 7




둥둥 떠오르는 상카라들 / ⓒchaelinjane, 2019





2019년 3월 27일 수요일

새벽과 아침




 중간에 깨지도 않고 힘든 꿈도 없었다. 통잠을 제대로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아디따나를 오래 유지한 흔적이 몸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어깨, 척추, 허리가 모두 뻐근하다. 스트레칭을 하고 새벽 자율 명상을 방에서 시작한다.


 호흡을 시작하고 주의 집중을 몸으로 옮기고 있으니 조금씩 상카라 덩어리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잊고 지냈지만 깊은 상처가 되었던 순간들과 감미로웠던 순간들이 불쑥불쑥 순서 없이 떠오른다. 어떤 기억에 대해서는 인상을 찌푸리며 '아, 싫어!' 하는 혼잣말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다. 혐오스럽고 자존감이 무너졌던 순간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정신을 차리고 '반응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지만 집중이 자꾸 흩어진다. 호흡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워 마지막 30분은 그냥 잠을 청하고 만다. 새벽 6시, 저릿한 피로가 느껴진다. 아침을 먹고 메디테이션 홀로 올라간다.


 아침 단체 명상을 끝낸 후 테레즈 지도자 선생님과 간단한 소규모 면담을 한다. 아침 명상은 새벽 때보다 성과가 좋다. 어제는 아디따나 자세를 견디기 위해 강한 호흡을 써야 해서 몸에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통증도 이겨내야 하고 주의를 회전하는 것에도 집중해야 했기에 강한 호흡과 함께 엄청난 내적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자, 시작해보자. 얼굴, 목, 목, … 목. 잘 안 느껴지네. 다음 어깨, 팔꿈치, …' 이렇게 한 시간 내내 내 의식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마음에 대고 쉴 새없이 떠들었다. 오늘은 강한 호흡에서 원래의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되돌아간다. 처음 집중할 때는 감각이 너무나 여리게 느껴졌지만 계속하다 보니 강한 호흡을 할 때만큼이나 분명한 감각이 느껴진다. 어제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에도 마음의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되었다.


 메디테이션 홀 앞 전깃줄 위에 참새 크기 정도 되는 작고 예쁜 검은 새가 앉아 있다. 며칠 전에는 사람이 가까이 오면 날아가더니 오늘은 내가 아주 가까이에 서 있는데도 가끔 흘깃흘깃 볼 뿐 깃털을 정리하는 데 여념이 없다. 목에는 노란 털이 스카프처럼 둘러져 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사람들이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메디테이션 홀로 올라가는 길에는 아주 많은 꽃들이 작은 만두 같은 봉오리를 하늘로 들어 올리고 있다. 내일이나 내일모레면 꽃이 활짝 필테지.


 머리가 정말 많이 길었다. 그리고 이 정도 길이면 머리 끝이 다 갈라져 엉망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오늘보니 머리카락 끝에 있어야 할 끊어진 하얀 마디들이 거의 없다. 언제 이렇게 건강해진 걸까? 이곳에서 먹는 베지테리안 음식이 이렇게나 몸에 좋단 말인가! 나중에 한국에 가서도 베지테리언 음식에 대해 계속 연구를 해봐야겠다. 이건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까.



오후




 오늘 점심 때는 흥미로운 메뉴가 보인다. 위에는 하얀 으깬 감자, 아래에는 라자냐 소스가 있는… 뭐랄까 파스타 같기도 하고 밥 같기도 한데 케이크처럼 되어 있다. 베지테리언 음식에는 이런 식의 기묘한 퓨전이 많다! 밥 두 국자에 삶은 브로콜리와 삶은 컬리플라워, 샐러드를 타임 티와 함께 맛있게 먹는다.

이제 4.5일이 남았다. 어제 이 시간보다는 마음이 상당히 평화로워진 것 같다. 여전히 순간순간 이곳을 떠나고 싶은 답답한 마음이 올라오지만 그때마다 불 같은 감정을 가라 앉히고 평정심을 지키려 노력해본다. 흐르는 강물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인도의 어느 사람들처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흐르는 시간을 강물 보듯이 지켜보는 것이다. 235시간 중 139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율 명상 때는 진주 강가요가원에서 배운 골반 교정 자세로 아디따나를 시도하고 있다. 어제는 왼쪽, 오늘은 오른쪽. 상당히 고통스럽지만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오후 단체 명상 때 또다시 왼쪽 다리에 격렬한 통증을 느낀다. 심지어 다리를 바꾸어도 계속해서 통증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운 좋게 잘 앉으면 극심한 통증 없이 아디따나 자세가 1시간 동안 유지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20분도 지나지 않아 고통을 참느라 진땀이 난다. 여기서 어렴풋이 나의 또 다른 상카라가 느껴진다. <할 수 있는 한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는 것. 자율 명상 때 미리 자세를 교정하는 이유도 최대한 통증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상처 받을 것 같은 일은 피하고 보자는 생각을 하며 지내왔던 것이다. 용기 내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우려했던 결과가 나타나면 '거봐, 내가 이렇지 뭐.' 하며 스스로에게 상처를 더하곤 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때 느끼던 불 같은 답답함, 바로 이 느낌이었다. 온몸에 열기가 꽉 차다가 화를 내거나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렸던 기억이 고통과 함께 떠오른다.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어떻게든 참아내는 동안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편적으로 느껴왔던 감각이라는 걸 깨닫는다.


 내가 이 상카라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었구나. 애간장이 끓도록 고통을 참아본다. 통증을 지켜보려고 노력한다. '점심 먹고 운동을 괜히 했네. 운동하지 말라는 이유가 다 있는데 말이야. 배도 벌써 다 꺼지고 다리랑 허리는 이렇게 아픈데 허기나 들고. 운동해서 근육이 더 자극되었나봐. 에휴!' 하는 후회도 든다. 아, 새로운 상카라를 만들어내서든 안 된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돌려본다.


'운동과 이 통증은 관계 없을 수도 있어. 배가 고픈 건 이따 차 휴식 때 밀크티를 한 잔 더 마시면 되고. 다시 격렬해진 통증 덕분에 나의 묵은 화들이 느껴진 거야. 이건 화낼 일이 아니야.'


 그때 고엔카 선생님의 "아니짜, 아니짜."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7일 만에 해탈할 일이었으면 세상 사람 모두가 다 성인군자가 되었게.



저녁




숲에는 산 것만큼 죽은 것들이 많다. 주위를 둘러보면 절반은 죽어서 썩어가고 있다. 야자수 잎은 목숨이 다하면 몸을 고이 접어 새 잎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자신은 나무줄기를 감싸는 외투가 된다. 그래서 오래된 야자수 나무는 두꺼운 코트를 어깨 위에 걸치고 있다. 숲은 고요하고 성스러운 무덤이다.


 숏컷을 한 빨간 머리의 여인이 차 휴식 때 난간에 앉아 있다가 눈물을 훔친다. 발코니가 보이는 창문 바로 앞에 앉아 달리 할 것도 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 짧은 순간을 똑똑히 목격했다. 여인은 고개를 흔들더니 남아 있는 눈물을 마저 훔친다. 일곱째 날은 피로가 더욱 쌓여 육체적인 괴로움이 몇 배가 된다. 하루 종일 허리와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것도 아직은 습관이 되지 않아 에너지 소모가 상당하다. 익숙하지 않은 자세를 오래 유지하려면 호흡도 편안하지 않다. 오랜 세월 동안 이리저리 휘어진 척추가 단 며칠 만에 되돌아올 수는 없다. 꾸준히 아디따나 자세로 명상하면서 정신뿐만 아니라 몸의 건강도 되찾아야지. 오늘은 두꺼운 구름에 휩싸여 햇볕 한 줌 볼 수 없다. 우울과 한숨이 생각을 압도하기 쉬운 날이다.


 마지막 단체 명상 시간이다. 왼쪽 다리의 통증은 35분쯤 지나서 맹렬히 시작된다. 가쁜 호흡을 이어가며 체감상 15분 정도 되는 전기고문을 참아낸다. 피가 나지 않을 뿐이지 치과에서 치석 제거를 할 때의 고통과 비슷한 것도 같다! 정말 몸이 덜덜 떨린다. 입술도, 두 뺨도, 두피까지도 얼얼하다. 조금씩 천천히 통증이 잦아 들고 호흡도 원래대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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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 기록

Day 0
Day 1
Day 2
Day 3
Day 4
Day 5
Day 6








│by @chaelinjane


여행지 정보
● Dhamma Medini Vipassana Meditation Centre Burnside Road, Makarau, New Zealand



묵은 상카라를 마주하는 일 / Day 7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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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사나를 처음접하시면서 중간중간 이런 감각들이나 온갇 감정들을 기록으로 남기신건 정말 대단하신 겁니다. 스팀잇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두리님에 경험을 간접적으로 옆볼수 있는건 명상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마무시한 도움이 될겁니다. ..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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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님의 댓글이 언제나 제 글에 가치를 더욱 더해주신답니다..! :-) 잘 봐주셔서 정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