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정을 지키는 게 얼마나 힘든지 / Day 8

8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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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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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Day Vipassana Meditation Course│Day 8





2019년 3월 28일 목요일

벌레 혐오 이겨내기




 어젯밤에는 방에 벌레가 들어와 있어서 평정심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두 마리는 휴지와 컵으로 가두고 안심하고 자려니 커튼 쪽에서 세 마리가 웅웅 날개소리를 내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내 방 현관 위에만 전등이 있어 해가 지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벌레들의 집결지가 되고 만다. 일주일 동안 그래도 평화로웠는데 드디어 방 안에 전쟁의 불씨가 생겨나고 말았다. 첫 번째 조치. 침낭 속에 몸 전체를 넣고 머리 위의 입구를 최대한 조였다.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켜야 하니 최선을 다해 벌레를 피할 수밖에. 몸이 편하게 쉬고 있으면 감각이 예민하게 깨어 있어도 괜찮다는 고엔카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벌레 때문에 잠에 빨리 못 들어도 편하게 누워 있으니 괜찮을 거야. 주의 집중 회전을 하며 벌레들의 날갯짓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자 침낭 속 공기가 부족해지고 뜨겁게 데워지기 시작했다. 숨 쉬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스웨터와 기모 바지를 잠옷으로 입었던 까닭에 몸에서는 열기가 펄펄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잠을 청하는 건 불가능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벌레 혐오에 대한 상카라를 정화해보기로 했다. 저 벌레들이 얼굴에 떨어지는 상상을 하면서 예상되는 혐오감에 감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처음에는 소름이 돋았지만 그들이 불빛이 비치는 창가로 날아가 오랜 시간 그곳에만 머물거라고 상상해보았다. 가까이서 날갯짓 소리가 들려도 반응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조금씩 긴장감이 풀리면서 곧 단잠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벌레가 떨어져 옆에 있다거나 하는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침과 낮




벌써 여덟째 날 아침이라니. 160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다. 남은 시간은 75시간. 일요일 날 처음 시간을 세어보았을 때는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 70시간을 지내고 난 뒤였다. 지금은 거의 그때만큼의 시간만 더 지나면 된다. 오늘은 새벽부터 계속 비가 내렸다. 점심 무렵이 되어 그치긴 했지만 여전히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점심으로 밥에 콩이 들어간 수프와 찐 단호박, 찐 고구마, 브로콜리·두부 무침, 비트루트를 카모마일 티와 함께 먹는다. 후식으로 나온 베지테리언 케이크도 맛있다. 비가 묻어 있는 숲을 걷고 방으로 돌아간다.


 오늘 아침 단체 명상 때에는 한 시간 대부분을 다른 생각을 하는 데 쓰고 말았다.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지만 내적언어를 사용하지 않아 주의 집중이 어려웠다. 정수리에서 시작한 주의 집중을 대칭적으로 몸 아래로 흘려보내는 연습을 충분히 해내야 한다. 양 어깨에서 양 손끝으로 내려가는 것은 그나마 수월하지만 양 골반에서 양 무릎 끝으로, 다시 양 발끝까지 가는 건 답답할 정도로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 지점에서 길게는 1분 정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니 그제야 감각이 슬그머니 나타난다. 초 단위로 시간을 세면서 기다리면 더 초조해져서 지금은 침묵 속에 감각을 기다린다. 사실 급할 게 하나도 없었다. 명상을 빨리 끝내는 게 목표가 아니라 한 시간을 충실히 보내는 게 목적이니 속도에 대해서는 집착할 필요가 없다. 바닥을 드러내는 인내심 때문에 그냥 확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은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비파사나 명상 수련은 내일이면 끝이다. 마지막 날인 10일째에는 노블 사일런스가 해제되고 그동안 부정적인 상카라를 뽑아내느라 고생한 마음에 연고를 발라줄 수 있는 새로운 명상을 배운다. 11일째 아침에 코스가 끝나는 이유는 '충격 완화 장치'랄까, 갑자기 세상을 마주하게 되면 쇼크를 받을 수 있으므로 이곳에서 한 숨 자고 나가는 것이다. 요가로 말하자면 마지막 휴식인 사바사나(송장 자세, Savasana)를 취하는 것과 비슷하다. 노블 사일런스가 무척 마음에 들었기에 나는 오히려 수다로 가득 찰 이곳 풍경이 두렵다. 첫날 얼마나 시끄러웠고, 그 속에서 대화를 하고 있지 않으면 얼마나 어색한지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뻘쭘함 또한 나의 묵은 상카라일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이 오든 평정심을 잃지 말자.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메디테이션 홀에서 자율 명상을 마치고 방으로 가는 길이다. 분무기로 뿌리는 것 같은 보슬비가 내린다. 상쾌하고 청정하고 고요한 기분이 좋다. 이런 공간이 사람들의 이야깃소리로만 가득 차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100명 가까이 되는 이곳에서 노블 사일런스가 있기에 불가능할 것 같은 고요한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2시반-3시반 단체 명상이 끝나고 쉬는 시간까지 계속 명상하다가 4시쯤 방으로 간다. 자율 명상 중간에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화장실도 북적이지 않고 좀 더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든다. 평정심이 많이 길러진 것 같은 게, 점점 '현실'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명상이 시작되어도 '그래, 시작하는구나' 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임한다. 명상에 너무 무덤덤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심한 기분마저 든다. 그래도 이런 무심함이 명상에서 추구하는 바일 것 같다는 확신도 생긴다.






 저녁 무렵이 되니까 너무나 지치고 힘이 없다. 차와 과일을 먹어도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다. 단체 명상이 시작되기 전에 잠이나 자 둬야겠다. 명상이 이렇게 체력 소모가 심할 줄 몰랐다.


 드디어 여덟째 날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남은 건 이틀 밤. 오늘은 복부에 가스가 너무 많이 차서 저녁 강론 이후의 명상은 포기하고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가스를 속 시원하게 배출할 수 없으니 하루 동안 축적이 되어서 쌓일 대로 쌓인 모양이다. 단체 생활의 곤란함이란! 방에 가서 실컷 빼내면 된다는 생각으로 3시간을 버텼다.


 오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감이 듬뿍 솟는 날이었는데 <사적인 파라다이스>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글 쓸 것들, 그림 그릴 것들, 공간화하고 싶은 것들, 색감들, 공간 운영 방식이라든가, 그곳에 어울릴 음악들, 나의 태도들, 끝도 없었다. 이곳에서 배운 것들도 녹여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젯밤의 벌레 사태에 대비해서 오늘은 커튼을 현관 앞에 빼놓고 저녁 일정을 시작했다. 방에 들어오기 전에 충분히 탈탈 털면 붙어 있던 벌레들이 도망가는 틈을 타 방으로 들어가면 된다. 결과는 대성공! 쾌적한 잠을 청할 일만 남았다.



계속 깨어있기 / ⓒchaelinjane, 2019


<오늘의 메모>: 과거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억하는 것, 미래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상상하는 것뿐이다. 현재,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감각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감각에 완전히 깨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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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 기록

Day 0
Day 1
Day 2
Day 3
Day 4
Day 5
Day 6
Day 7








│by @chaelinjane


여행지 정보
● Dhamma Medini Vipassana Meditation Centre Burnside Road, Makarau, New Zealand



평정을 지키는 게 얼마나 힘든지 / Day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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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에서 득도하는 길은 쉽지 않죠. 제가 지금까지 저질러온 살생을 생각하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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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요 ㅠ 공포감을 이기지 못해 살생을 저지르고 말았죠.... ㅠㅠㅠ 그 공포감도 오랜 습관이라 생각을 바꿔보려 노력한답니다. :) 모든 혐오스러운 것들도 생각하기 나름..이겠죠? ㅎㅎㅎㅎ

파도에 대한 공포감은 생각만으로 바꾸기 쉽지 않더라고요 ㅠㅠㅠㅠ 어흑 ㅠㅠㅠㅠ 소프트 서프에 대한 책임감을 안고 더 달려들어보겠습니다 ㅠ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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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잔잔할 때, 물이 빠지는 간조시간에 맞춰서 소프트(스펀지)보드로 입문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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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네-! 이번에 발리에 있을 때 파도가 너무 세서 제대로 들어가질 못했어요 ㅠㅠ 한국에서 다시 도전해야겠네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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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파도가 아주 꿀이랍니다!!! :) 꿀파도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