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게 부수어내기 / Day 9

9개월 전





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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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Day Vipassana Meditation Course│Day 9





 금요일, 그리고 아홉째 날 아침이다. 상당히 피곤한 채로 일어났는데 몸살 기운이 더해졌는지 재채기와 콧물이 계속 나온다. 새벽 명상은 방에서 한다. 눈과 목이 마른 느낌이 들어 30분 정도 자고 일어났더니 조금 낫다. 내일은 새로운 명상을 배우게 되니 오늘이 집중해서 비파사나 명상을 수련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이곳에서의 186시간이 흐르고 있다.


 아침 단체 명상을 마치고 나니 고엔카 선생님께서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신다. 비파사나 명상의 마지막 기법은 Dissolve, '용해'의 과정이다. 이제는 주의 집중을 신체 어느 곳으로든 옮긴다.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방향이든 옮기는 연습을 한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의 움직임처럼 주의 집중을 다루는 단계다. 충분히 수련이 되면 숨 한 번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주의를 감지하는 'SWEEP EN MASSE(스윕 엔 마스)'가 가능해진다. 주의 집중을 한 번에 휩쓸고 나면 그다음에는 처음 배울 때처럼 다시 신체의 부분 부분을 나눠서 주의를 감지한다. 대충 건너뛰는 신체 부위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 중에 몸에서 고통이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을 통해 내면 깊이 각인된 오랜 상카라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을 인식하고 온몸을 관통하는 주의집중의 자극을 통해 상카라를 갈기갈기 분해하는 것인데, 불씨가 보이는 곳에 곧바로 소화기를 뿌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번 단계는 지금까지 배웠던 것 중에 가장 관념적인 이야기라 마음속에 물음표가 생긴다. 정말 그렇게 된다고? 화가 나기 전에 그 화가 마음속에서 다 흩어져 버린다고? 용해에 이르기까지는 오랜 수련이 필요할 것 같다. 아직 나에게는 마법 같은 이야기다.









 수련 중에 눈을 감고 오랫동안 감각을 인지하고 있으면 불현듯 균형이 깨져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좀 더 탐색하고 나니 내 몸이 왼쪽으로 많이 기울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왼쪽 다리만 유독 아팠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내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왼쪽을 향해 있어서 억지로 오른쪽으로 주의를 돌려 균형을 맞춘다. 아디따나 자세를 할 때 양팔을 무게추로 이용했기에 이번에는 왼팔을 중앙으로, 오른팔을 오른쪽 무릎 위에 두고서 한동안 자세를 유지한다. 이러고 나니 눈을 감아도 평형감각이 어색하지 않다. 왼쪽 다리의 통증도 한결 수그러든다. 다리 통증이 해결되니 척추 쪽에 좀 더 섬세한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중간 뼈 오른쪽 아래 지점이 몇 년 전부터 아팠다. 그곳을 통해 나의 상카라를 기다리면서 SWEEP EN MASSE를 연습하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 꽤 시간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척추 통증이 사라져 있었다. 정말로 사라졌거나, 내가 더 이상 그걸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어깨를 펴고 척추를 곧게 세우는 것이 그동안 의기소침하고 약하게 지냈던 나를 떠나보내는 일이라 생각해 명상 시간 중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바른 자세로 있으려고 애쓴다. 여전히 어깨를 완전히 펴면 호흡이 불편하지만 이 또한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질 일이다.



 혀, 식도, 폐, 위, 심장, 내장, 자궁 같은 부위를 인식하며 지도를 그리는 데에 힘을 쓴다. 신기하게도 주의를 심장에 집중하면 온몸으로 박동이 느껴지다가 다른 부위로 옮겨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하다. 의식을 몸 앞에서 뒤로 통과하는 게 쉽지 않다. 매일 조금씩 수련을 이어가야 한다.


 점심을 먹고 산책 후 간단한 운동을 한 뒤 20분간 단잠을 자고 일어났다. 빠른 걸음으로 산책을 한번 더 다녀왔더니 더욱 쾌적하다. 햇볕이 쨍하다 비가 쏟아지더니 두 날씨가 동시에 진행된다. 어떤 수련생들은 햇볕에 반짝이는 빗줄기 속을 산책한다. 내일은 마지막 점심을 먹을 테고 마지막 산책을 나서겠지. 오늘 자율 명상은 방에서 해야겠다. 온전한 시간을 흡수하면서.



KEEP ON DEVELOPING WISDOM.
(계속해서 지혜를 계발하세요.)



 오후 2시 20분부터 4시 20분까지 쉬지 않고 명상을 한다. 힘이 들어서 얼른 휴식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데 고엔카 선생님이 했던 말씀을 또 하시고, 문장만 바꿔서 또 하시는 바람에 문득 화가 치밀어 오른다. 오늘이 비파사나 명상의 마지막 날이니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무척 많으신 모양이다. 그래, 다 우릴 위한 거니까 잘 새겨 들어야지.


 차 휴식 때 숲 산책을 다녀오려 했는데 비가 쏟아져서 양치만 하고 곧바로 방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역시 이 시간이 되니 무척 지친다. 당장이라도 이곳 생활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과 비파사나 명상 코스를 완전하게 마치고 싶은 마음이 서로 충돌하다가 호흡이 차분해진다. 이곳에 와서 태어나 처음으로 감정을 다스리는 공부를 제대로 해볼 기회를 얻었다. 숱한 심리학 서적을 읽고 강의를 들어도 본인이 본인의 몸과 정신으로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깨닫기 힘든 지혜다. 이론으로 배운 것과 몸으로 배운 것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이곳을 나가서 내가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내가 항상 두려워하던 관계에 새롭게 대처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미지의 시간으로부터 맑게 빛나는 폭포가 느껴진다. 그 속에 용기와 노력, 깨어있는 정신, 집중력, 그리고 지혜가 콸콸 쏟아지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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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위한 수련 기록

Day 0
Day 1
Day 2
Day 3
Day 4
Day 5
Day 6
Day 7
Day 8








│by @chaelinjane


여행지 정보
● Dhamma Medini Vipassana Meditation Centre Burnside Road, Makarau, New Zealand



잘게 부수어내기 / Day 9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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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curating 계정으로 부터 소정의 보팅이 지원될 예정입니다. 포스팅 수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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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ating님 감사합니다 :)

존재에 머무는 기술을 익히시다 보면, 언제가 빛이 빗줄기처럼 내리는 걸 보실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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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석님 댓글은 언제나 자세를 고쳐 앉고 새겨 듣게 됩니다. :-) 좋은 주말 보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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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