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잡기 20-19 ]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지난달
in zz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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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 두 아이를 데리고 서울에 있는 전시회에 관람을 간 적이 있다.
시골 사람이 서울 가면 엄청 버벅대는지라 절친이 안내를 자처해서 즐겁게 관람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차표를 끊고 기다리던 중,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한다. 차 시간은 5분 정도 남았고 당시만 해도 2시간 30분 이상 걸리던 노선이라 무조건 아이 손을 잡고 화장실을 찾아 뛰었다.

아뿔사, 화장실 안은 발디딜 틈이 없고 줄이 밖에까지 늘어 있었다. 두리번 거리다가 장애인 화장실에 시선이 멈췄다. 거기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안쪽이나 바깥쪽을 둘러 보아도 장애인은 없었다. 그리로 돌진했다. 그 때 여러 사람들의 시선이 내 등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

지금도 난 그때 내 행동이 잘못된 건지 잘 모르겠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당시에 읽었던 어떤 컬럼에서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일반인이 이용하는 것이 잘못인가? 이것 역시 선을 긋고 넘어가면 안된다는 차별 아닌가 하는 내용에 공감했던 터라 더 용감하게 장애인용 화장실로 돌진했던 것 같다.

2020년 우리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 여성, 남성, 장애인 여성, 장애인 남성, 성적소수자 여성, 성적소수자 남성을 위한 화장실 6곳을 구분해서 지어야 할 것 같다. 아동들까지 계산하면 숫자는 훨씬 더 늘어 난다. 무척 급한 사람이나 기동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은 어디로 들어가야 할 지 몰라 아찔할 것도 같다.

화장실을 한 곳으로 통일 시킬 수 없을까? 집 안에서는 구분이 없잖은가. 그러기에는 세상이 너무 험하다. 화장실 다녀 오다 처음보는 사람에게 살해를 당할 지경이면. 여자들에게 분노를 느꼈다고? 평균적으로 여성 월급이 훨씬 적고 가사 노동까지 합치면 사회 구조는 여전히 여성에게 불리한데 남성들은 왜 그리 역차별을 주장하며 억울해 할까.

우리 안에 있는 차별 심리, 참 오래고 줄기차다.
많은 것이 불평등에서 유래했음에도 '억울하면 너도 출세해'라고 거만하게 말한다. 가난한 집 아이가 어떻게 노력하면 부모의 지지 속에 학원이나 과외를 받으며 높은 성적을 유지하는 아이와 겨뤄서 유망한 대학, 더 취업이 잘 되는 학과에 진학할 수 있을까.

부자로 태어나지 그랬어?
남자로 태어나지 그랬어?

문득 아이도 여자도 장애인도 없는 부자 남자들만 있는 사회를 상상해 봤다. 아오....
구조적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나는 차별하지 않는다고 믿으면서도 퀴어 축제가 싫고, 장애인들의 집회가 짜증난다면 당신은 '선량한 차별주의자'다.
남을 왕따 시킨 적은 없는지,
나보다 가난하다고 무시한 적은 없는지,
장애인을 거부한 적은 없는지,
성적 소수자들을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매도 한적은 없는지,
이주노동자들을 우습게 보진 않았는지,
늘 돌아볼 일이다.

김지혜 / 창비 /2020/15,000원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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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읽고 싶은 책이네요
화장실의 기억은 충분히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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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들러 주셨네요. 휴일 잘 보내셨지요?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네요. 책 소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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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도잠님 책을 다양하게 읽으시는군요!

책 후기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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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다음 주도 도전했습니다. ^^

저도 두 영유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한 적이 꽤 있어요. 잘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싶진 않지만, 정말 대안이 없는 상황이 많았어요. 게다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 둘(여아도 있는데다)을 번잡한 화장실로 데려가기도 힘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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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동행은 약간 전투적일 필요가 있지요. ㅎㅎㅎ

전에 아이들 과외를 많이 하던 때, 착하고 성실한 아이를 좀 편애한 적이 있습니다..ㅋ
반성해야겠어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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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들 마음은 다 똑같아요. 착하고 성실한 아이를 이뻐하는 것은 당연해요. 사람 마음이 그런걸요. ㅎㅎ

독서량이 어마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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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말씀을요. 주로 얇은 책들로... ㅋㅋ